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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공사현장 '친절한 감독님', 어디서 봤다했더니

조회수 2020. 9. 23. 15: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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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우수상 출신 그가 공사 현장에 간 까닭은?

지난 1월 25일, 인천 청라지구 경제자유구역 내 친환경복합단지 공사 현장. 바쁘게 움직여야 할 중장비가 구석에 줄지어 서 있었다. 이날 인천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은 영하 10도. 추위 때문에 공사를 중단한 상황이었다. 적막한 현장 한편에 누군가 측량장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장비를 옮겨가며 거대한 흙무더기의 높이를 재고 있는 듯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인사를 건넸다. 그는 ‘감독’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흰색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출처: jobsN
측량 장비로 공사 진척 사항을 점검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여현주씨

2017년 6월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에 입사한 여현주(24)씨다. 인턴 기간 석 달을 거쳐 지난해 10월 정직원으로 공사 현장 배치를 받았다. ‘현장밥’을 먹은 지 100일 남짓. 고등학교 때부터 품었던 꿈을 이뤘다는 그녀의 LH 입사, 신입 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전국노래자랑 신입’으로 입사 때부터 유명세


여현주씨는 LH 입사 때부터 화제였다. 지난해 6월, 그는 LH 입사 직전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동구편 출연 에일리의 '손대지마'를 불러 우수상을 받았다. 입사 직후 그가 출연한 인천 남동구편이 방송을 탔다. 그의 이름 옆에 붙은 ‘LH직원’이라는 자막을 본 직원들은 그녀를 ‘전국노래자랑 신입’이라고 불렀다.

출처: jobsN
여현주씨는 2017년 7월 방송된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동구 편에 출연해 우수상을 받았다

“입사 전형을 마무리하고 여유가 있을 때 전국노래자랑 ‘왕팬’인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고자 나갔습니다. 녹화 당시엔 아직 입사 전이었으니 출연신청서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썼습니다. 방송이 나가기 전에 최종합격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방송사로 전화를 걸었죠. ‘LH직원’으로 바꿔달라고요. 그 덕에 선배님들께서 저를 많이 알아봐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긴장 없이 춤추며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저를 ‘별종’이라고 불렀어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남과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나요.” 대학에 진학할 때도 남다른 선택을 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건설전문 잡지를 뒤적이다 현장감독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누비는 여성 현장감독 사진 한장이 눈에 확 들어왔죠. 그때 건설현장에서 꼭 일하고 말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의 결심대로 그는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에 진학, 도시시스템공학을 전공했다.


흔한 스펙으로 꿈의 공기업 들어간 비결… 블라인드 채용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현장을 누비며 일하겠다는 그의 꿈은 확고했다. 그녀의 선택은 LH였다. ”일반 건설사에 들어가도 현장엔 갈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일반 건설사는 도로나 교량, 건물처럼 전문적인 영역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업무가 한정적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LH는 이 모든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단위, 그러니까 도시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다양한 현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LH를 선택했습니다.”

출처: jobsN
여현주씨

확고한 신념으로 LH에 지원했지만 막상 경쟁률을 보니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12명 모집에 1만6875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80대1이었다. “‘스펙’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어요. 토목직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토목기사 자격증은 기본이고, 여기에 건설재료기사나 건설안전기사 자격증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전 토목기사 자격증 하나밖에 없었어요. 학점은 4.5점 만점에 3.9점으로 높은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높은 것도 아니었죠. 하지만 LH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잖아요. 일명 ‘스펙’으로 채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잘 준비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지원하는 직무를 얼마나 잘해낼 수 있을지를 증명하는 데 달렸다. “전공서적을 찬찬히 훑어가며 공부했어요. 몇 달간 수능 공부하듯 절실하게 매달렸어요. 열심히 공부한 덕에 취업도 성공했고, 실제로 입사 후에도 그때 공부했던 것들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현장 기술자에 대한 편견 없어졌으면”


여현주씨는 현재 인천 청라지구 내 하천공사현장과 친환경복합단지 공사현장 두 곳을 감독한다. 구체적으로는 시공사가 제대로 공사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공사 진척도에 따라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일이라고 한다. 갓 입사한 ‘신입’이 현장에서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업무가 끝나고 술을 먹는 회식자리가 많을 수 있다거나 현장 근로자들과 기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현장에 오기 전에는 그런 걱정을 했지만 실제 근무해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저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분들이시지만, 무시하는 경우는 없고 오히려 제가 모르는 부분을 잘 가르쳐 주십니다. 오랜 현장경험이 있어야 쌓을 수 있는 비결부터 주의사항까지 꼼꼼히 알려주시죠. 사실 지금 현장에서 가장 힘든 건 사람이 아니라 추운 날씨입니다. 하루 8시간을 꼬박 측량기를 움직이며 서 있을 때도 있는데요,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가락이 얼어 터질 것 같아요.”


춥다고 엄살을 피우는 여현주 감독을 두고 함께 일하는 시공사 관계자들은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독종’이지만, 씩씩하고 친절해서 현장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입을 모았다.

‘친절한 여감독’이 특별히 현장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건설 현장에서 쓰는 용어를 바로 잡는 일이다. “예를 들어 센티미터는 ‘전’이라고 하고, 밀리미터는 ‘리’라고 하는데요, 다른 분들이 ‘3전 5리’라고 말씀하시면, 전 ‘아 3.5센티미터요’라고 말하는 식이죠. 이런 정체모를 용어가 쓰이는 것도 현장기술자에 대한 나쁜 편견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기술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살기 좋은 국토, 행복한 주거’ 라는 LH의 비전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아닐까요?”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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