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먹은 느낌"이병헌이 극찬한'독립영화계의 송강호'

조회수 2020. 9. 23. 15:34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것만이 내 세상〉의 배우 박정민
〈그것만이 내 세상〉의 배우 박정민

배우는 정말 열심히 산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악보도 볼 줄 모르던 사람이 6개월 만에 차이콥스키를 칠 줄 알게 될 정도다. ‘이게 가능한가’ 싶어 바라보니, 배우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일 뿐이라는 담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다. 배우는 어느 날 천재도 되어야 하고, 위인도 되어야 하며, 조폭이 되었다가 경찰이 되기도 해야 한다. 피아니스트를 맡았으니, 피아노를 쳐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피아니스트는 좀 다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진태는 조금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다. 그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의학정보에 따르면 서번트 증후군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소통 능력이 낮다. 여러 뇌기능 장애를 가져서인데 기억이나 암산, 퍼즐이나 음악 등 특정 분야에서는 우수한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 때문에 ‘특별한 자폐증’이라 부른다.


진태가 치는 피아노는 일반인의 그것과 다르다. 그는 피아노를 치다가 감격적인 순간이 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하늘을 본다. 다른 악기들의 협주 부분에서는 일어나서 그 감동을 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은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한 가지 사물을 오랜 시간 바라보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는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자동차 바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퍼즐이기도 하다. 아마 진태에게는 피아노 건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잘해야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톱클래스》 독자들에게 박정민은 ‘특별한’ 배우다. 그는 47개월 동안 ‘언희’라는 칼럼을 연재했다. “글을 말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말을 글로 옮겨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잘해야 하는 일을 더 잘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에 잠시 안녕을 고했다.


그의 약속처럼 그는 잘하는 일을 더 잘하기 시작했다. 〈파수꾼〉과 〈전설의 주먹〉, 〈들개〉에서 박정민은 독보적인 배우였다. ‘내 보석함에 숨겨둔’ 배우이기도 했다. 〈응답하라 1988〉, 〈순정〉, 〈더킹〉 등에서 짧지만 굵은 존재감을 보일 때 ‘남몰래 흐뭇함’을 느끼게 하는 배우이기도 했다. 이후 〈오피스〉와 〈동주〉를 거쳐 그의 비중은 이제 숨길 수 없게 커졌다.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충무로의 주머니를 뚫고 나온 그가 이제 상업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박정민은 이병헌과 나란히 포스터를 차지하고 있다.


“독립영화를 하던 때도 ‘독립영화만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웃음) 아마 대부분의 배우가 그럴 거예요. 상업영화를 하고 싶어 하죠. 그건 인기나 인지도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봐주길 바라서예요. 우리 영화를 보러 오는 분들이 좀 더 편하게 찾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고요.”


처음 〈그것만이 내 세상〉 시나리오가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꼭 하고 싶습니다”를 외쳤다고 했다. 이미 형인 조하 역에 이병헌이 캐스팅된 상태였다. 어머니로는 배우 윤여정이 함께 할 예정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고, 지금도 그러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가는 순간이 기다려졌고, 연기하는 순간이 행복했다. 그건 8할이 ‘두 선배님 덕분’이었다.


“막상 진태를 맡고 나니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고 준비할 시간은 적었어요. 어떻게든 해내야 했죠. 피아노처럼 기술적인 문제는 방에 틀어박혀서 연습하면 돼요. 그 역시 쉽지는 않았지만, 더 고민은 서번트 증후군을 표현하는 일이었어요. 진태가 희화화되거나, 같은 증후군을 앓는 분들에게 혹은 그분들의 가족들이나 교사분들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해하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박정민이 진태를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고 싶었다. 결론은 “나는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다만 이들에게 예의를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몇 번의 봉사활동을 하고, 몇 권의 책을 읽는다고 알아질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어요. 그걸 인정하고 진태를 대하기로 했어요. 그가 사는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분리하지 않으려고 했고요. 진태가 동정의 대상이 아닌 행복한 인물이길 바랐고, 결국 엄마와 형이 화해하게 되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랐거든요.”


〈그것만이 내 세상〉의 감독은 앞서 〈역린〉의 각본을 쓴 최성현 감독이다. 당시 그가 쓴 ‘세밀한 등근육’이라는 여섯 글자를 만들기 위해 현빈이 ‘등을 깎는(?)’ 노력을 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에는 반대였다고 했다. 시나리오에 열린 부분이 많았다. 배우가 채워야 할 부분이었다.


“덕분에 이병헌 선배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워낙 대선배와 함께 하니까 긴장도 되더라고요. 시나리오에 있는 그대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고요. 시간이 흐르니까 선배가 유연하게 던지는 연기를 제가 뻣뻣하게 받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저도 거기에 맞춰서 부드럽게 연기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이 많아요.” 

선배를 긴장하게 하는 배우


이병헌이 〈내부자들〉로 남우주연상을 독식할 당시, 신인상은 〈동주〉의 박정민이 휩쓸었다. 당시 이병헌은 그의 등장을 눈여겨보다가 그가 나왔던 작품들을 찾아 보았다고 했다.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던 그는 현장에서 박정민을 만나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동주〉 이후로 사실 저는 힘들었어요.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스스로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요. 그때 이준익 감독님이 ‘세상 모든 짐을 네가 다 지려고 하지 마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연기는 그냥 취미로 하라’고요.(일동 웃음) 그 말씀에 좀 가벼워졌어요. 그 이후로 다시 현장에 가는 게 즐거워졌고요.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했던 게 맞구나 다시 느꼈어요.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 행복을 다시 느낀 현장이에요.”


그저 연기가 하고 싶어서 달려온 길이다. 막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나니 어리둥절했다. 바닥이 금방 드러날 것 같은 불안과 지금은 다들 나를 찾지만 언젠간 찾지 않는 순간이 오리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했다. 불안했지만 주어진 역할들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몰리면 다시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웃음) 저 스스로 재능이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늘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마 피아노도 그래서 칠 수 있었는지 몰라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진태의 연주는 박정민의 손으로 이뤄진다. 대역이나 CG 없이 직접 연주했다. 그 모든 곡이 그의 손에서 흘러나올 때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한다. 순수한 진태가 피아노를 칠 때 나오는 ‘순연한 감동’이었다.


“피아노라는 친구가 생긴 게 참 좋아요. 가끔 집에 있는 피아노를 두드려보기도 할 것 같아요. 요즘은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포스터를 따라 그리는 건데, 다 잘 못하니까 다 해보는 것 같기도 해요.(일동 웃음)”


박정민은 그 자신에게 후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무서울 정도로 몰아붙인 후 밑바닥에서부터 에너지를 끌어 온다. 그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그럼에도 그가 그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박정민이 선사하는 세상’은, 앞으로도 그렇게 치열할 예정이다.


글 jobsN 유슬기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