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학생들 붙잡고 '꼬치꼬치' 묻는 그녀의 직업은?

조회수 2020. 9. 23. 15:3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사무실에서 아이돌 공부, 퇴근길에 학생들에게 말 거는 그녀
치마 길이 2~3cm로 경쟁
작은 유행까지 좇아야
신입 때부터 다양한 옷 만들수 있는게 장점

13년차 교복디자이너 문유리(34)씨는, 퇴근길에 지나는 학생을 붙잡고 지금 입은 옷에 어떤 점이 아쉬운지 묻는다. 학생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뭇거린다. 그럴 때면 문씨는 자신의 직업을 밝히고 가방에 걸린 아이돌 열쇠고리를 보며 아이돌 이야기를 꺼낸다. 이내 학생들은 “재킷 길이가 길다”, “색이 너무 어둡다”고 말한다. 문씨는 답변을 하나하나 적어 다음 교복 디자인에 참고한다.

출처: 문유리씨 제공
13년차 교복 디자이너 문유리씨

매년 바뀌는 십대들 유행 따라가야 해


- 교복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나?

“교복디자이너는 교복 실루엣(옷의 윤곽)을 주로 디자인한다. 매년 교복 폭, 길이 등을 바꾼다. 변화는 작지만 학생들은 민감하다. 치마 길이 2~3cm 차이로 다른 업체에 고객을 뺏길 수도 있다. 우리 회사는 약 5500개 학교 교복을 만든다. 디자이너 다섯명이 유행 따라 전국 교복을 매년 다시 디자인한다. 옷을 완전히 새로 짜는건 아니고, 모양새를 조금씩 바꾸는 정도다.”


“교복을 사서 유행에 맞게 수선하는 학생도 있다. 교복값에 수선비까지 얹히면 부담이 크다. 애초에 유행에 맞춰 교복을 만들면 그런 일이 줄어든다.”

출처: 스쿨룩스 제공
문유리씨가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만든 카탈로그 교복

- 그럼 교복이 매년 바뀌나?


“교복 대부분이 매년 바뀐다. 2014년엔 허벅지를 반쯤 덮는 짧은 치마가 유행했다. 남학생은 근육이 보일정도로 통이 좁은 바지를 즐겨 입었다. 요즘 치마는 무릎 위 5~6cm쯤 선에 머무른다. 바지통은 2014년에 비해 2~3cm쯤 늘었다. 길이와 통이 해마다 조금씩 늘어서다. 기능도 바뀐다. 요즘은 재킷 안에 핫팩 주머니를 단다. 여학생 재킷엔 입술 화장품(틴트) 주머니도 있다.”


지역마다 담당 디자이너 있어


- 지역마다 유행이 다르다는데


“지역마다 교복도 조금씩 다르다. 내가 입사한 2006년엔 경상도 학생들이 짧은 재킷에 길고 큰 치마를 입었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패션이었다. 지금도 지역마다 유행이 달라 교복을 다르게 디자인한다.”


“일반 의류회사는 대부분 우븐(실을 가로·세로로 교차해 만든 원단)디자이너, 니트(실 하나로 짠 원단)디자이너 등으로 나눈다. 하지만 교복회사는 지역을 나눠 담당 디자이너를 둔다. 서울·중부지역, 충청·대전지역, 호남·광주·제주지역, 부산·대구·경상지역 등이다. 담당 디자이너는 구 단위로 유행을 조사한다. 나는 서울과 광주를 맡고 있다.”

출처: 문유리씨 제공

다른 교복업체에 전화해 디자이너를 지역별로 나누냐고 묻자 “지역마다 즐겨입는 교복이 달라 교복업체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학생 사이 유행 알아야


- 십대 유행은 어떻게 조사하나?


“음악방송을 챙겨본다. 인기 아이돌을 보면 십대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알 수 있다. 유튜브로 십대가 만든 화장·패션 영상도 본다. 십대 옷을 다룬 SNS도 자주 본다. 퇴근길에 학생에게 말을 걸어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 학부모와 학생 취향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학생 의견이 더 중요하다. 친구와 함께 교복을 사는 학생이 늘고 있다. 옷을 잘 입는 학생이 교복을 사면 다른 학생이 따라 사기도 한다. 물론 학부모와 학교 의견도 중요하지만, 학생 의견 비중이 더 높다.”


새로 디자인할 기회가 적은 점은 아쉬워


- 일반 의류회사 디자이너와 다른점은?

“새로운 옷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교복 디자인이 지루할 수도 있다. 학교 규정에 맞추다보면 옷을 창의적으로 짤 기회가 적다. 그나마 카탈로그(홍보책자)에서 모델이 입을 교복을 디자인할 때는 조금 더 자유롭다. 하지만 신입 때부터 옷을 다양하게 디자인할 수 있는건 장점이다. 교복 디자이너는 신입 시절부터 바지, 셔츠, 재킷, 치마, 롱패딩 등을 전부 만든다.”

출처: 스쿨룩스 제공
문유리씨가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만든 카탈로그 교복

실제로 일반 의류회사 디자이너 2년차 조모(27)씨는 “일단 신입 땐 치마처럼 간단한 옷을 맡는게 보통이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하고 8개월째 치마만 디자인하고 있다”며 “하지만 셔츠 등 다른 옷을 디자인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다.


교복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겐 “유니폼 공모전에서 상을 받으면 좋다”고 했다. 문씨는 한국 유니폼 협회 등에서 여는 공모전을 찾아보라 조언했다.


성격이 꼼꼼하면 유리하다고도 말했다. 문씨는 교복을 새로 디자인하는 일을 ‘관리’라고 한다. 담당지역의 바지, 치마, 셔츠, 재킷 등을 매년 ‘관리’하려면, 빈틈이 없을수록 좋다고 했다.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