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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심 처벌 안하고 무인판매대 계속 운영하는 이유

조회수 2020. 9. 23. 15: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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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처럼 우직한 고집으로 만든 '영주 요거트'
동물과 사람이 행복한 호수목장 안일윤 대표

호수목장은 직접 생산한 원유를 발효시켜 수제 요구르트를 만든다. 친환경 목장으로 34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제 요구르트는 무인 판매대에서 판매하고 있다. 목장의 안주인이자 농촌교육장을 운영하는 안일윤 대표는 ‘동물과 사람이 행복한 목장’을 목표로 세웠다. 

경북 영주 시내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변. 너른 잔디에 젖소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호수목장이 있다. 나무와 돌, 연못이 조화롭게 자리한 동화 속 마을 같은 목장은 때때로 ‘음머’ 하는 소 울음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에 이끌려 132㎡(40평) 규모의 가공·체험장으로 들어서니 목장의 안주인이자 농촌교육장인 ‘밀크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안일윤(57) 대표가 온화한 얼굴로 웃으며 반긴다.


호수목장은 1983년 안일윤 대표의 남편인 박성수(62) 공동대표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젖소 2마리를 키우며 시작됐다. 목장 이름도 박성수 대표와 그의 아버지 함자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었다. 1987년 안 원장이 시집을 오며 농장을 함께 키웠다.


“목장의 잡일을 도맡아 했어요. 예전에는 사료용 옥수수를 재배해 소여물을 줬는데, 남편이 옥수수밭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제가 소를 돌봤죠. 제가 소띠 해에 태어나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 쉬지 못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일하는 성격이에요. 집 바로 옆에 외양간이 있어서 소 울음소리만 들려도 달려가 살폈습니다.”


목장에서는 매일 아침 젖소 100여 마리가 3톤의 질 좋은 원유를 안겨준다. 그 옆으로는 150여 마리의 육우가 우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의 평화를 찾기까지 부부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위기를 기회로 

호수목장은 한때 소를 500마리까지 키울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2011년 전국에서 창궐한 구제역이 목장 인근까지 확대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됐다. 다행히 살처분은 피했지만 소 값이 곤두박질했다. 설상가상으로 사료 빚이 6개월 만에 3억 원까지 늘어났다.


“어느 날은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려는데, 커피 값이 3500원이더군요. 당시 송아지가 1만 원이었어요. 커피 석 잔 값이죠. 그만큼 소 값이 바닥을 쳤을 때예요.”


목장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려 해도 암소를 수정하는 데 드는 비용과 10개월을 몸에 품기까지 들어가는 사료나 약 값이 만만치 않았다. 결단이 필요할 때, 안일윤 원장은 과감하게 목장의 규모를 줄이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자식같이 키운 소 200여 마리를 처분하고 부부 손에 쥐어진 돈은 고작 7000만 원. 안 원장은 ‘사는 게 참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더는 좌절할 수만은 없어 부부는 목장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쏟았다.


“구제역이 왜 우리 목장만 비껴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사 주변의 은행나무 잎들이 사료 통으로 자연스럽게 떨어진 걸 젖소들이 깨끗이 먹어치운 게 생각났죠. 우리 목장 젖소가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에서 면역력을 키워왔기 때문이에요. 그때부터 자연과 함께하는 목장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가 줄어든 만큼 우사에도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환기가 잘 돼 자연스럽게 냄새도 줄고, 좁은 공간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줄어 우유 맛도 좋아졌다. 안 대표는 젖소들이 자연을 느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목장 주변에 나무와 돌을 심어 조경을 가꿨다. 또 매일 클래식 음악으로 목장의 분위기를 바꿨다. 이러한 노력으로 호수목장은 낙농육우협회가 선정한 ‘전국 아름다운 목장대상’과 영주시의 농업대상 명소 부문을 수상했다. 또 2016년에는 영주시가 주최한 친환경 축산농장 음악회가 호수목장에서 열릴 만큼 아름다운 목장으로 소문이 났다.


“우리 목장은 동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요. 소가 행복해야 사람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아름답고 깨끗한 목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친환경 젖소목장을 운영해온 이들 부부에게 다시 닥쳐온 시련은 정부의 ‘우유 쿼터제’ 시행이었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원유 수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생산량 할당제를 시행하면서 남은 우유를 그대로 버리게 될 처지였다. 그때 안 원장이 생각한 게 유가공이었다.


“우리나라도 유제품 소비량이 원유 생산량보다 100만 톤은 더 많은데 우유가 남아돈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결국, 가공이 해답이라고 봤습니다.”


안 대표는 2004년부터 유가공에 관심을 두고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과 순천대학교에서 유가공 이론과 실기를 체계적으로 익혔다. 식문화사, 유제품가공사 등 관련 분야 자격증도 10여 개 취득했다. 한국벤처농업대학과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에도 등록해 앞으로 어떤 비전을 품고 목장을 이끌어갈지를 고심했다. 

“피가 나 봐야 내 안에 흐르는 피가 붉다는 걸 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10여 년의 노력 끝에 안일윤 대표는 2015년 자체 상표인 ‘영주 요거트’를 세상에 내놓았다. 목장에서 갓 짜낸 원유를 직접 발효해 만든 수제 요구르트다. 유산균 함량이 높으면서도 식약처의 햇섭(HACCP) 기준에 맞춰 철저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믿고 마실 수 있는 가공식품이다.


“제품 개발을 위해 매일 20kg 발효 통으로 요구르트를 만들었어요. 제맛을 찾을 때까지 3톤의 우유를 사용했죠. 맛을 찾기까지 3~4년이 걸렸습니다.”


요구르트를 한 모금 마시면 고소한 우유 향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달지 않으면서도 깊은 풍미가 특징이다. 안 대표가 귀띔하기를 요구르트 맛의 비밀은 ‘사랑’에 있다고 한다.


“한번은 발효가 다 된 20kg짜리 통을 들고 옮기면서 무겁다고 불평한 적이 있어요. 낮에도 일했는데 밤에도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 싶어 한탄하면서 바닥에 쾅 하고 내려놨는데, 발효는 잘됐는데 맛은 엉망이었죠. 그때 알았어요. 모든 미생물에도 생명이 있다고. 신랑하고 싸웠거나 마음이 불편한 날, 몸에 열이 날 때는 절대 발효 통을 안 만집니다.”


옛 어르신들이 장 담그기 전에 집을 안팎으로 청소하고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고 말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연이 어우러진 환경에서 담근 장이 맛있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잊지 않았다. 이를 고스란히 요구르트 만드는 데 접목했다.


요구르트는 매일 아침 짠 신선한 우유로 살균, 냉각, 발효 과정을 거쳐 12시간 안에 만든다. 2주에 3회 정도 만드는데, 한 번에 300kg, 30만 리터의 우유를 쓴다. 1000mL의 대용량뿐 아니라 150·300mL 등 소용량으로도 판매한다. 한 해 판매하는 요구르트는 약 4만 병. 영주농협 파머스마켓과 인근 봉화지역의 로컬푸드 직매장, 서울에 있는 영주 농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출하한다. 수익금 일부는 지역에 장학금으로 환원하고 있다.


영주 요거트를 인기 상품으로 끌어올린 데는 무인 판매대가 큰 몫을 했다. 요구르트를 만들고 판로를 고민하던 중 SNS에서 소쿠리에 1만 원짜리를 넣고 사과를 가져가게끔 만든 무인판매대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이를 응용해 목장 앞에 수제 요구르트가 든 냉장고와 거스름돈 통을 두고 24시간 누구든 살 수 있게 했다. 한 달에 100만 원어치나 팔릴 정도로 큰 성공이었다. 물론 무인 판매대에 양심적인 손님만 다녀간 건 아니다.


“무인 판매대가 방송에 소개되고 유명해지던 차에, 보름 동안 냉장고의 요구르트를 몽땅 도둑맞은 적이 있어요. CCTV도 없었죠. 마냥 속상해하고 있는데 하루는 부모가 아이에게 1만 원을 주며 요구르트를 사고 잔돈을 거슬러 오라고 하더군요. 아이가 가서 돈을 넣고 직접 잔돈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또 하나의 교육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인성교육도 되고요.”


이후에 CCTV를 설치하긴 했지만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처벌하지도 않았다. 스스로가 나쁜 짓이라 느꼈으면 양심으로 안다는 것. 그래도 아직은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진심이 통했을까. 무인 판매대를 통해 수제 요구르트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호수목장은 2016년 12월 한국소비자협회 주관 대한민국 소비자 대상에서 대한민국 명가·명품대상에서 가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안일윤 대표는 영주 요거트를 출시하면서 더불어 농촌체험 및 교육을 위한 ‘호수목장 밀크아카데미’의 문을 열었다. 농촌진흥청의 농촌교육농장 기초·심화 과정을 모두 수료해 지금의 목장을 요구르트 제조와 치즈 체험, 식생활 교육이 가능한 농촌교육농장으로 발전시켰다.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지어진 체험장은 숙성 치즈 저장고와 요구르트 발효실, 체험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고 끝에 찾아온 결실이 막 달콤하게 느껴질 때 또 다른 시련이 부부의 발목을 잡았다. 체험장을 오픈하고 20여 일 만에 안 대표가 지붕 공사를 하던 중 떨어져 다섯 달을 병원에서 누워 지내야 했다. 지금도 허리 통증이 있어 종종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큰 사고였다.


“서울에서 수술받고 다섯 달을 누워 지냈어요. 지금도 완치가 안 돼서 하루 1km도 걷기 힘들어요. 그래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배운 것이 많아요. 6인실을 썼는데, 맞은편에 아들뻘 되는 암 환자가 있었어요. 매일 누워 지내는 게 안타까워 함께 운동하자고 팔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을 권했죠. 생사에 놓인 사람들을 보니 내가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쁘게 달려온 나를 되짚어볼 만한 ‘쉬는’ 시간이었죠. 주변에서는 일어난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해요. 좀 더 살아볼 만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굳은 의지로 재활에 힘썼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온 안일윤 대표에게 올해는 즐거운 소식도 들려온다. 결혼을 앞둔 아들 내외가 미국의 직장생활을 접고 목장 일을 함께하기로 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들에게 목장을, 며느리에게 체험장 운영을 맡기는 게 그의 바람이다.


“피가 나 봐야 내 안에 흐르는 피가 붉다는 걸 안다고, 내가 아파야지만 나를 더 성찰하고 나아갈 방법을 알게 됩니다. 많은 일을 겪어오다 보니 인생에도 내성이 생겼어요. 산골짜기 물이 흘러 바다를 이루듯이 세월이 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소의 해에 태어나 일복이 많다며 웃는 안 대표는 배워보고 싶은 것도 많다. 호텔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유아교사 정교사 자격증도 받았다. 바느질도 배워 집안에 커튼도 직접 만들어 달았다. 최근에는 농업인 최고경영자 과정에도 원서를 넣었다. 공부가 좋아서도 그렇지만 배운다는 건 언젠가 써먹을 기회를 노린다는 말일 것이다.


“농업에는 자기 철학이 담겨야 합니다. 단순한 돈벌이로 생각하면 쉽게 무너져요. 희망과 절망을 오가다 보니 아무리 높은 산이라 해도 넘어보자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음식은 가장 정직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팔아서 돈을 벌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런 모든 것이 모여서 나의 모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로 일꾼을 빗대어 ‘소처럼 일한다’고 표현한다. 소의 근면하고 우직하면서도 충직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소는 되새김을 한다. 먹이가 있을 때 많이 저장해 놓고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오랜 시간 되씹는 과정이다. 이를 사람에 빗대자면 결정하기 전에 되풀이하고 숙고해 결정하고, 결정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행위일 것이다. 딱 호수목장 안일윤 대표의 인생이 그러하다. ‘우보천리’라는 말처럼 오늘도 그는 우직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천릿길을 걸어가고 있다.


글·사진 jobsN 서경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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