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30대 중반 대기업 그만두고 전업주부된 사연

조회수 2020. 9. 25. 22: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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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아빠, 대기업 관두고 전업주부된 사연
전업주부 아빠 노승후씨
대기업 다니다 퇴사 후 육아
"주양육자가 여자일 필욘 없어"

“애들이 눈 뜬 걸 보지도 못하고 사는 삶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두 딸 아빠 노승후(39)씨는 전업주부다. 맞벌이에 따른 육아 공백을 메우고자 5년 전 퇴사했다. 한국에서 육아 문제로 부부 중 한명이 일을 그만둬야 할 때 주로 희생하는 쪽은 엄마다. 대기업에 다녔던 노씨도 처음에는 아내가 퇴사하길 바랐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더 행복해지려면 아내가 아닌 자신이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어느덧 주부생활 6년 차. 계란 프라이 하나 제대로 못 부치던 그가 이제는 김치찌개부터 탕수육, 파스타까지 각종 음식을 뚝딱 차린다. 딸들의 머리를 묶는 손은 능수능란하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생각은 폐기처분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주부가 된다고 해서 집안일만 하는 것은 아녜요. 얼마든지 ‘제2의 인생’을 위해 준비할 수 있어요. 제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집에서 아이 키우는 아빠, 노승후씨

아이들이 눈 떠 있을 때 보고싶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나와 2005년 STX조선에 입사했다. 7년간 일하며 업계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었다. 조선업이 극심한 불황에 빠지면서 회사 사정이 갈수록 악화됐다. 2012년 한 바이오제약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야근이 많았다. 아내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어머니가 같이 살면서 아이들을 봐줬다. “STX에 있을 때도 집에 일찍 온 편은 아니었지만 이직 후에는 훨씬 심해졌어요. 밤 10시 퇴근은 기본이고, 새벽 1~2시 넘어서 들어올 때도 많았죠. 새벽에 들어와 2시간 눈 붙이고 출근한 적도 있고요.”


아이들이 깨어있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주말에는 지쳐서 널브러져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일만 하다 보니 허리디스크까지 왔다. 어느 새벽 출근길, 곤히 잠든 두 딸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고 하는 일인데,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내와 논의 끝에 퇴사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했다. 부부 중 한 명의 희생이 필요했다. 아내는 경력 단절을 두려워했다. 노씨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여자들은 구직 활동 시 약자일 때가 많아요. 재취업 시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여자보다는 남자가 경력 단절을 감수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직장인 시절의 노승후씨. 해외 출장지에서.

본격 주부모드 돌입


주부가 되면서 처음 한 일은 요리학원 등록이었다. 아이들 밥을 먹여야 하는데 할 줄 아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가계 소득이 반 토막 나 생활비도 줄여야 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줄넘기, 인라인 스케이트 학원까지 다녔지만 노씨는 영어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한글, 영어, 운동을 모두 직접 가르쳤다. 장 보러 갔을 때 충동구매를 자제했다. 개인적으로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맞벌이할 때는 돈을 우습게 생각했어요. 있는 대로 쓰는 편이었고요. 주부가 된 후부터는 꼼꼼히 썼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하루 6시간 정도(오전 9시부터 오후 3~4시)가 자유시간이었다. 집안일을 빠르게 끝내고, 자기개발에 몰두했다. 책을 읽거나 자격증 공부를 했다. 짬을 내서 외환 등에 투자해 소소하게 수익을 올렸다.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9월 책도 냈다. 혼자만의 시간을 십분 활용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간식을 주고, 집 근처 공원이나 놀이터 등에 함께 갔다.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준비를 해서 가족이 다 같이 먹었다. 외식을 자주 안 하게 되면서 식비 지출이 줄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이 늘었다.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노씨(왼쪽), 노씨 가족(오른쪽)

아빠 육아, 새로운 기회일 수 있어


처음에는 주변 시선이 불편했다. 놀이터에 나가면 벤치에는 엄마들만 앉아 있었다. ‘엄마 그룹’에 끼지 못했다. “오후에 애들 데리고 동네 산책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아이들이 귀엽다면서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랑 있어’ 하시더라고요. 당황스러웠죠. 지나고 보니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 쓸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세운 계획과 육아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노씨는 육아 문제로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아빠들에게 “꼭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육아는 곧 부부의 문제이고, 이는 부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맞벌이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둘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 그게 꼭 엄마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상황은 저마다 다르겠죠.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기준이 돼서는 안될 것 같아요.” 노씨는 현재 주부 역할에 충실하고 있지만, 평생 집에만 있을 생각은 없다. 현재 두 딸이 여덟 살, 여섯 살인데 1~2년 정도 더 육아에 전념하고, 두 딸이 어느 정도 알아서 지낼 수 있게 된 후에는 적극적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육아 책을 쓴 후, 강연 요청이나 자문을 구하는 연락이 들어오고 있다.


“집안일 전담하는 아빠가 5~6년 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을 느껴요. 고민하는 아빠들에게 ‘지금 일을 관둔다고 해서 영원히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일단 아내가 돈을 벌어오는 상황이면 당장은 생활이 가능하죠. 그리고 집중 육아시기만 지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볼 수 있어요. 제2의 삶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시간도 가질 수 있고요. 퇴사 후 육아가 희생·손해가 아니라 기회이고 도전일 수 있다는 점을 아빠들이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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