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먹을것도 노는것도 다 참았던 그녀의 첫 '일탈'

조회수 2022. 4. 27. 15:0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직장생활이 1교시라면, 원하는 일을 하는 2교시


조금 더 높이 뛰기 위해 먹을 것을 참았고, 조금 더 멀리 뛰기 위해 노는 것도 참았다. 이산하씨는 그렇게 20년을 참아가며 발레리나로 살았다. 국내 유수의 발레단원으로 활약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어느새 서른을 넘겼다. 빡빡한 생활에서 벗어나 좀 더 즐기면서 살고도 싶었고, 새로운 도전에도 나서고 싶었다.


출처: jobsN

이산하 '2교시' 무용부장


그러던 중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직장인 네트워크 ‘슬링’ 모임에 나갔다. 바쁜 직장생활 와중에도 저마다 무언가를 찾아 재밌게 ‘놀고’ 있었고, 그때 만큼은 모두가 자기 삶의 주역이었다. 아예 관심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엮어서 모임을 만들면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작업을 주도하면서 주연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직장인 취미 공유 네트워크 ‘2교시’가 열렸다.



'주역'되지 못한 발레리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이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독일로 발레 유학을 갔다. 7년간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학교에 다니며 발레단 생활을 했지만, 향수병(鄕愁病)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어린 나이에 혼자 유학을 가서 그런지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몇 년 지나니 더는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국립발레단과 함께 국내 양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갔다.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등 유명 작품에 출연했지만 2년 만에 발레단을 나왔다. 60~70명이나 되는 큰 발레단에서 그가 자신의 춤을 출 수 있는 '솔리스트'로 발탁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레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을 겁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코르 드 발레(군무진)가 제 역할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 발레리노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이원국 단장이 이끄는 ‘이원국 발레단’에서 활동했다. ‘지젤’ 등 고전 발레를 비롯해 각종 창작 무용으로 2년간 200회가 넘는 공연에 나섰다. 하지만 이씨는 이원국 발레단에서도 2년 만에 나왔다. “경제적 고민 때문이었죠.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레슨’을 뛰며 생계를 유지해요. 이원국 발레단에서 무대에 원 없이 섰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발끝으로 서는 발레 동작을 뜻하는 ‘포앵트’를 하고 있는 이산하씨


어린아이에서부터 발레 전공 학생,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1년간 정말 열심히 돈을 벌었어요. 한동안 살 수 있을 만큼 벌어놓고 보니, 다시 발레에 대한 꿈이 살아나는 겁니다. 마지막 도전에 나섰죠.”



나이 스물 일곱살에 국립발레단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인턴으로 들어온 다른 친구들은 20대 초반이었죠. 나름대로 제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일 년간 인턴 생활 끝에 단원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백조의 호수 등 다양한 무대에 섰다. 하지만 국립발레단에서도 그의 역할은 ‘병풍’이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되던 해 모든 걸 내려놓았어요. 이제는 아등바등 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자라구요.” 그는 필라테스 자격증을 따서 강사로 활동하는 동시에 프리랜서로 가끔 무대에도 선다.



직장생활이 1교시라면, 원하는 일을 하는 2교시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던 이씨는 2016년말 아는 사람의 소개로 한 오프라인 직장인 모임에 나갔다. “직장생활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저마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찾아 재밌게 놀고 있더라고요.”



이씨가 나갔던 모임은 ‘슬링’이다. 슬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랜선 친구’가 아닌, 직접 얼굴을 맞대고 교감하는 사이가 ‘진짜 친구’라는 믿음으로 5년 넘게 운영된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직장인 네트워크다.



이씨는 이들과 어울리며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작은 모임들을 만들면 더 재밌고, 유익하게 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발레만 해온 저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어려웠어요. 슬링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2교시’(www.2gyosi.com)라는 직장인 취미 공유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2교시 운영의 주축이 될 사람들이 역할을 나눠 맡았다. 회계사 출신의 박종은씨와 종합상사에서 해외 영업 및 전략 기획 관련 일을 하던 이훈석씨가 2교시의 대표격인 ‘반장’을, 현직 치과의사인 권용대씨, 외국계 화학회사에서 전략 기획일을 하는 지익준씨가 각각 ‘생활부장’, ‘체육부장’을 맡는 등 7명의 부장이 있다. 이산하씨는 2교시에서 ‘무용부장’을 맡았다.


출처: 2교시 제공

2교시 그룹 활동


각 부장은 전문가와 함께 여행, 사진, 출판, 연주, 와인 등 취미부터 배드민턴, 농구 등 다양한 운동,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룹을 운영한다. 이씨는 ‘몸매 관리 모임’을 맡기로 했다. 3개월에 한 번씩 그룹별로 회원을 모집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운영한다. 대관료나 전문가 초빙 등에 드는 비용은 그룹원들이 나눠낸다. 분기별로 모집하는 그룹 외에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노는 일회성 모임, ‘스팟모임’도 활성화돼 있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하는 직장생활이 1교시라면, 철저히 내가 주역이 돼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해나가는 시간이 2교시라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가 꼭 1교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2교시에서는 내가 원하는 조명의 모양과 색을 직접 고르고, 어떤 타이밍에 어떤 조명을 비출지도 내가 정할 수 있어요. 1교시에서 저와 같은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2교시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