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가 "이제 너희들의 시대다"라고 콕 찍어 말한 아이돌은 누구?

조회수 2020. 9. 25. 22: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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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새로운 DNA 새로운 시대를 열다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DNA 새로운 시대를 열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2017 올해의 톱 아티스트 10위에 올랐다. 15위에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11위에는 세계적인 그룹 콜드플레이가 올랐다. 1위는 에드 시런, 2위는 브루노 마스, 3위는 드레이크다.


톱 아티스트 순위는 라디오 방송 횟수와 판매량, 스트리밍 집계를 종합해 선정한다. 무엇보다 1년 동안의 핫100 차트와 200차트, 소셜 50차트에서 얼마나 많은 두각을 드러냈는지가 중요하게 반영된다. 방탄소년단은 2017 톱 아티스트 10위뿐만 아니라, 소셜 50 결산차트 1위와 아티스트 결산차트 2위 등 각종 빌보드 아티스트 결산 순위에서도 상위에 올랐다.


이뿐 아니다. 빌보드는 ‘꼭 들어봐야 할 방탄소년단 2017 노래’를 동영상으로 소개했다. ‘DNA’, ‘피땀눈물’ 등이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올해 미국을 들었다 놓았다. 미국 ABC방송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굿모닝 아메리카〉 공식 트위터에 “방탄소년단이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모습을 보인 후 이와 관련한 트윗이 2000만 건 발생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구글 트렌드 검색어 1위에 오른 바 있다. 방탄소년단은 트위터에서 최다 리트윗된 그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발간된 《기네스 세계기록 2018》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은 리트윗 수 15만 2112회를 기록하며 ‘트위터 최다 활동’ 남성 그룹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엘렌쇼〉 등 유명 토크쇼에 단독 게스트로 초청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이제 너희들의 시대

시작은 미약했다. 먼저 2015년 11월 내놓은 〈화양연화 pt.2〉와 2016년 5월 발표한 〈화양연화 영 포에버〉가 빌보드 메인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 171위와 107위에 걸리면서 ‘방탄소년단’의 시대를 예고했다. 이어 정규 2집 〈윙스〉가 이 차트의 그해 10월 29일자에 26위를 차지하면서 한국 가수 최초로 해당 차트에 세 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진입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 당시 방탄소년단은 차세대 K팝 기대주였다. JYP나 SM, YG 같은 대형 소속사의 금수저형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중소기획사의 ‘우량주’임은 분명했다. 멤버들의 내공에 대한 기대치는 처음부터 컸다. 리더 랩몬스터와 슈가 등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17 AMA에는 이들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방시혁도 함께했다. 이로써 방탄소년단이 K팝 아티스트 최초로 ‘2017 AMA’에 초청된 데 이어 대표이자 프로듀서도 함께 초청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그는 콘텐츠 대상 시상식에서 한류 콘텐츠를 널리 알린 공로로 해외진출유공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방시혁은 기자간담회에서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이렇게 분석했다. ‘쩔어’라는 곡이 유튜브에서 반향을 일으키게 된 것이 그전부터 쌓인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덤을 결집하게 했다. 소위 아이돌 팬덤 용어로 ‘영업을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가 됐다. 또 ‘불타오르네’는 결집한 팬덤을 터지게 만든 계기가 됐고, ‘피땀눈물’은 조금 더 보편성과 범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방시혁은 작곡가로 이미 명성을 알린 바 있다. 서울대에서 미학을 공부한 그는 1994년 제6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으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후 박진영과 함께 JYP의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당시 그가 만든 노래로는 비의 ‘나쁜 남자’,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 ‘내 귀에 캔디’ god의 ‘하늘색 풍선’ 등이 있다. 대중음악가로는 이례적으로 동요를 만들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독립한 그는 중소기획사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기존 대형 소속사의 혹독한 트레이닝 시스템이 아닌, 멤버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한 것이 유효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에도 프로듀서인 방시혁의 포부가 드러난다. 방탄은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이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당당히 지켜내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방탄소년단은 인터뷰에서 “청춘이 거창한 것은 아니잖아요. 엄청난 메시지를 담으려 하기보다 바로 현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상징적인 장면은 이들이 서태지 25주년 콘서트에 올랐다는 것이다. 서태지가 데뷔해 활동하던 시기에 태어난 이들이다. 이들은 서태지와 함께 무대에 올라 8곡을 소화했다. ‘서태지와 아들들’의 무대였다. 서태지는 이들에게 “이제 너희들의 시대다”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그간 SNS와 네이버 V앱 등을 통해 멤버들 사이의 우정을 보여주는 등 인간적인 교감에 주력해 왔다. 매일매일 SNS에는 실시간으로 멤버들의 일상다반사가 업로드된다. 그 때문에 국내 팬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팬을 가리키는 ‘아미(ARMY)’는 실시간으로 BTS(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듣고 여기에 반응한다.


이들의 시대는 역시 이전의 시대와 다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몇 명이 보았는가가 중요했다. 방탄소년단의 뮤비는 여기에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가 더해진다. 방탄소년단은 이미 데뷔 때부터 ‘학교시리즈’ 3부작, ‘청춘시리즈’ 3부작으로 꾸준히 대중과 소통했다. 이들은 음악뿐 아니라 SNS와 영상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듣는 이와 소통한다. 음악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됐다.


데뷔할 땐 무서웠어요. 망할까봐

현재 가장 핫한 그룹, 세계 19개 도시에서 40회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방탄소년단도 속으로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이들은 ‘방탄소년단 라이브 트릴로지 에피소드3 더 윙스투어 파이널’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콘서트 엔딩에서 방탄소년단의 리더 랩몬스터는 눈물을 보였다. “데뷔할 때 무서웠어요. 망할까 봐”라는 말과 함께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방탄소년단의 데뷔 초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게 이들의 다짐이다. 이들은 말했다.


“앞으로 분명히 아픔이 있을 거예요. 시련도 있을 거고. 근데 이제 알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리를 믿고, 좋아해 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방탄소년단은 아프지만 아프지 않고, 슬프지만 슬프지 않고, 두렵지만 두렵지 않을 겁니다.”


2017년 3월 빌보드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은 ‘톱 소셜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6년 연속 수상 행진을 방탄소년단이 막았다. 이들의 경쟁 상대는 셀레나 고메즈, 아리아나 그란데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었다. 톱과 아티스트 사이에 ‘소셜(social)’이 보태졌다. 이제 톱스타를 가늠하는 기준의 중심에 ‘소셜’, 즉 소통능력이 더해졌다. 팬들에게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중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그룹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이웃집 스타’다. 이들은 일부러 애쓰거나 훈련받지 않아도, 이미 소통하는 DNA를 가지고 있다. 가장 멀리 있으면서 가장 가까이에, 그렇게 방탄소년단의 시대가 왔다.


글 jobsN 유슬기 조선pub 기자,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서태지컴퍼니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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