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콤플렉스 가리려 '무엇이' 되려했던 그가 내린 결론

조회수 2020. 9. 25. 20: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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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공·매니저·라디오작가·베스트셀러 작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인디밴드 매니저→라디오 작가·작사가→작가
콤플렉스 극복하려 노력한 세월
‘무엇이 되기 위해’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

누구나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어릴 적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듣는다. 여기서 ‘무엇’에는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 숨어있다. 수험생은 명문대에 가길 바라고 대학생은 폼 나는 직업을 갖길 원한다. 취업 후에도 ‘무엇이 되기 위한’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김동영(39) 작가는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최근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라는 에세이를 냈다. 그는 2007년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를 내며 작가로 데뷔했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 형식 여행책은 처음이었다. 당시 ‘여행서적’은 ‘여행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이후 그는 '나만 위로할 것',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당신이라는 안정제'라는 책을 냈다. 모두 합해 50만부를 팔았다.


김 작가는 소심한 성격에 공고·지방대 출신이라는 콤플렉스가 심했다.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그동안 ‘무엇이’ 되려 무던히 노력했다. 20대 때 델리 스파이스·이한철·스위트 피 등 인디 가수 매니저로 일했다. 라디오 작가·작사가로도 일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이제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jobsN
김동영 작가의 필명은 '생선'이다. 눈꺼풀이 없어 죽어도 눈을 감지 않는 생선처럼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누가 '생선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숨도 참지 않고 단숨에 답한다. "하도 질문을 많이 들어서 그렇긴 한데, 20대 때 지은거라 지금은 좀 민망해요. 쉬지 않고 말하며 질문한 사람이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어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날들


그가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유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2살, 4살 터울 누나들과 라디오를 즐겨 들었어요. 제가 퀸이나 프레디 머큐리 등 메탈 음악 가수를 좋아한다 하면 친구들이 신기해했어요. 저는 반에서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었어요. 대화거리를 만들기 위해 듣다 보니 진짜 음악이 좋아졌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음악 테이프와 LP판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석간신문 배달·분식점·레코드 가게·주유소·만화방·사진관·도시락 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공부는 못했지만 뚜렷한 목표와 소신이 있었다. 대학에서 남들 들러리를 서기보다 기술을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한양공고 자동차학과를 다녔다. 성실히 기술을 배우고 공부한 덕분에 추천을 받아 2학년 말부터 자동차 정비회사에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의 소신이 흔들리는 사건이 있었다.


“제가 일하는 카센터에 초등학교 동창이 자신의 엄마랑 우연히 왔어요. 집에 자주 놀러 갈 만큼 친했습니다. 그때 저는 엔진오일을 교체하느라 작업복과 손, 얼굴에 기름이 묻어있었어요. 두 사람 모두 ‘왜 그러고 있냐’는 눈빛이었는데 창피해서 숨고 싶었어요. 매일 꾀죄죄한 제 모습을 보고 울던 어머니도 생각나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7년 청주대 관광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했다. 똑똑해 보이고 싶어 닥치는 대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출처: 김동영 작가 인스타그램

콤플렉스 딛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멋진 문장을 베껴 쓰는 필사를 하며 점차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대 초반 그가 프리챌·싸이월드에 쓴 글이 화제가 됐다. 델리스파이스의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작사하기도 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 점차 나만의 ‘장점’이 되었다.


당시 홍대에서는 인디음악이 뜨고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홍대 레코드 가게·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인연으로 2003년부터 매니저로 활동했다. 날마다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 인사를 하며 CD를 건넸다. “CD 돌리는 가수와 매니저가 얼마나 많겠어요. 기억에 남도록 다른 방식으로 드렸습니다. 저희 밴드 음악과 팝을 섞어 ‘출근길에 틀면 좋을 음악’처럼 묶어서 음악 리스트를 드렸어요. 그게 방송국 내 소문이 좀 났죠.”


스트레스가 심해 매니저를 그만두려던 때, 라디오 작가를 제안받았다. “선곡만 전담하는 ‘음악 작가’가 있습니다. MBC 한재희 PD님이 인디나 미국 얼터너티브 음악처럼 마니아를 위한 새벽 방송을 기획 중이셨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들었단 걸 알고 제안하셨죠.”


라디오 작가는 6개월마다 재계약을 한다. 2006년 말 그의 6번째 재계약이 불발됐다. 마음을 정리할 겸 미국 여행을 떠났다. 그 무렵 방송국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이병률 작가에게 ‘책을 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 작가는 ‘끌림’으로 유명한 시인 겸 방송작가다.


김 작가는 LA, 뉴욕에 있는 지인 집에 머물며 6개월 동안 글을 썼다. 2007년 7월 귀국 후 2개월 만에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를 냈다. 출간 초기엔 큰 반응이 없었다. 점차 입소문이 나며 1년 반이 지나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강연·사인회·방송 등 그를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


“처음으로 내 존재가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빛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항상 친한 지인이 ‘넌 어떻게 먹고 살래’라며 걱정했거든요. 첫 책이 성공하고 나니 주변에서 저를 ‘작가님’이라 불러주고 팬도 생기고 돈도 벌었죠.” 

출처: 김동영 작가 인스타그램
김동영 작가는 서울 연남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작가라도 글로만 먹고 살 수 없음을 인정한다. 카페 운영 이외에도 강연과 외부 기고, 팟캐스트 출연으로 먹고 산다. 가끔 방송 출연도 하고 있다.

성공 이후 찾아온 두려움···’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하지만 그는 이때부터 글쓰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가지 않으면 애써 올라온 언덕에서 금방 내려갈 것 같았어요. 매니저, 라디오 작가로 일하면서 수많은 가수들이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지는 걸 봤으니까요. 남들에게 인정받는 제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제 글을 자기검열하기 시작했고, 뭘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병명도 모른 채 아팠다. 의사는 몸에 이상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2년이 지나서야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점점 더 깊은 우울에 빠졌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까지 봤는데 떨어졌어요. 네이버 지식인에 '소설은 어떻게 쓰냐'고 질문한 적도 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이 맛에 쓰는구나'하고 느꼈지만 막상 출간하니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현실과 바람의 괴리가 컸습니다."


그는 꼬박 10년을 앓았다. 지금도 책을 쓰는 기간에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 그럴 때마다 주치의를 찾는다. 4번째 책은 그의 정신과 주치의 김병수 의사와 함께 썼다. “예전에는 ‘왜 이만큼 밖에 못하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어요. 또 나이가 들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고 어른스러워질 거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저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살구요.”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다. 꿈을 갖지 말라는 소리도 아니다. “나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구분할 수 있어요. 여행하며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걷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여행작가니까요. 하지만 저는 걷는 걸 싫어해요. 관광지나 미술관 가는 것도 싫어해요. 싫어하는 건 절대 하지 않습니다.


글로 돈 벌면 '속물'이라는 편견이 있죠. 과거에는 누가 ‘돈 필요해서 글 쓰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 창피하고 화가 났어요. 지금은 ‘그렇다’고 말해요. 또 예전에는 30억을 벌고 싶었어요. 하지만 벌어 보니 사는 데 많은 돈이 필요 하진 않았어요. 저를 알고나니 한달에 300만원 정도 벌면 여유롭게 살아요. 명확한 꿈도 있습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글을 쓰고 싶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았으면 합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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