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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전부터 손님들 '바글바글'..여성들이 열광하는 가게

조회수 2020. 9. 25. 20: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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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80억 매출→길거리 노상→핫플레이스..서현역 브러시 아저씨
서현역 브러시 아저씨, 안해원
무역업자에서 노점상 주인으로

"턱이 각져 있으니 (턱이 시작되는 부분을 브러시로 문지르며)여기를 깎아 주면 훨씬 갸름해 보여요. 그런데 화장은 안 하는 게 제일 좋아."


요즘 '핫'하다고 소문난 홍대의 한 브러시 가게에 들어갔다. 어떻게 셰이딩(얼굴에 음영을 넣는 화장법)을 하면 좋을지 묻자 기자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는 중년 남성. 브러시를 들고 얼굴형과 톤에 맞춰 직접 화장을 해준다. 거울 속 훨씬 갸름해진 얼굴을 보고 놀라고 있는데 화장은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화장을 안 하면 브러시를 못 파는 거 아니냐며 되묻자 '허허' 웃는 사장님. 서현역 브러시 아저씨로 유명한 안해원씨다.


홍대에 위치한 15평짜리 안씨 가게를 찾는 손님은 하루 최대 200여 명 정도. 그중 100명~150명의 메이크업 상담을 직접 해준다. 그러다 보면 앉을 시간도 없이 하루가 간다. 지금은 작은 브러시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연 8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무역업자였다.

출처: jobsN
안해원 씨

연 매출 80억 무역업자


미술을 좋아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무역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 해외 영업직으로 취업했다. 10년 정도 근무하다가 독립했다. 그동안 꿈꾸던 자신만의 무역회사를 차린 것. 미국, 이탈리아 등으로 뷰티·케어 제품을 수출했다.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어요. 3년은 고생했습니다. 빚내서 해외 박람회 참가하고, 경쟁 업체 속에서 우리 회사만의 시장을 개척하고 자리 잡는 데 3년이 걸렸어요. 이후 수출은 물론 샤넬, 시셰이도, 랑콤 등 유명 브랜드 OEM 제품도 생산했습니다. 연 매출 80억을 내는 무역회사로 성장했어요."


잘나가던 회사가 무너진 것은 2008년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출업을 하던 안씨가 직격탄을 맞은 셈이었다. 계약을 맺고 있던 바이어들이 하나둘씩 파산하자 매출이 점점 줄었다. 결국, 회사는 밑바닥까지 추락했고 안씨는 빈털터리가 됐다.


브러시 들고 길거리로


줄이고 줄인 사무실에는 수출하지 못한 제품들과 안씨만 남았다. "아침이 오는 게 싫었습니다. 눈 뜨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죠. 사무실 한쪽 구석에 앉아서 낮술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해보자 싶어서 사무실에 쌓여 있는 브러시를 차에 싣고 나갔습니다."


2014년 겨울, 잠실 새마을 시장에 좌판을 시작했다. 노점 단속반한테 물건을 빼앗기고 벌금을 내고 찾아오길 반복했다. 잠실을 떠나 화양역, 건대역 등을 떠돌다 서현역에 정착했다. "누가 길거리에서 브러시를 사겠어요. 하루에 2~3만원 벌면 많이 판 거였죠. 그때 손님들이 브러시를 사면서 특성이나 사용법을 물어보더군요. 무역을 하면 수출하는 제품의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합니다. 아는 내용을 최대한 알려줬죠.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실에서 혼자 화장품 샘플로 직접 화장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친절한 안씨 모습에 점점 손님이 많아졌다. 2015년 여름부터는 노점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근처 편의점 사장님이 파라솔 하나를 내어 주기도 했다. 손님은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들까지 다양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데 멀리서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고마웠죠. 저도 먹고살려고 장사를 했지만 학생들한테는 코 묻은 돈 뜯는 것 같아서 이것저것 더 챙겨줬어요."


서현역에서 홍대로


노점을 하면서 다시 무역에 복귀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사를 하다 보니 매장을 차려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이 있었지만 비싼 보증금과 월세를 충당하기엔 한 없이 모자랐다. 그때 사업하던 대학교 동창이 사정을 듣고 안씨 브러시 오픈을 도와줬다고 한다.

출처: jobsN
안씨가 마련한 손님 대기공간.(좌) 평일 오후 3시,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우)

2017년 2월, 홍대 근처에 25평짜리 공간을 얻었다. 15평을 가게로 꾸몄다. "가게를 오후 2시에 여는데 30분 전부터 와서 줄을 서 있어요. 제가 테스트를 해주려고 손님들 손등에 파운데이션이나 섀도를 바르는데 얼음장처럼 차가운 겁니다. 그래서 나머지 10평은 대기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길거리 장사할 때 브러시를 사가던 고등학생 손님이 대학생이 돼서 찾아오고, 대학생이었던 손님은 취업을 해서 찾아온다. "서현역에서 브러시를 엄청 사가던 학생이 있었는데, 하도 사가니까 나중에는 그냥 줬어요. 나중에 찾아와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취직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 기뻤습니다. 추운 날 핫팩이나 캔커피 사다 주던 친구들도 다 기억에 남아요."


욕심내지 않고 장사


안씨 브러시 하우스에서 파는 브러시만 200여 종. 가게가 좁아 아직 진열하지 못한 제품도 많다고 한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용을 뺀 나머지는 족제비, 다람쥐, 산양 등 천연 모로 만들었다. 털, 핸들, 금속을 다 따로 주문해서 안씨가 운영하는 작은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조립한다.

출처: jobsN
가게를 찾은 손님에게 상담을 해주고 손등과 얼굴에 직접 화장을 해준다.(좌) 가게 안에는 상담줄과 계산줄이 따로 있다. 상담줄은 항상 길다. 계산은 안씨의 둘째 아들이 맡고 있다. 그 역시 간단한 브러시 특징과 사용법을 설명해준다.(우)

천연 모로 만든 브러시는 전문가용이다. 전문가용 브러시는 3만원을 훌쩍 넘는다. 안씨는 같은 전문가용을 1/3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품질도 중요하지만 화장품 제형, 피부유형 그리고 용도에 따라 브러시를 맞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브러시라도 본인한테 맞는 걸 사야합니다. 직접 가게에 와서 만져 봐야해요. 그래서 우리는 포장을 해놓지 않습니다. 와서 만져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저한테 물어보고 맞는 걸 사야 만족할 수 있겠죠?"


소문을 듣고 가게를 찾는 건 손님뿐이 아니다. 많은 화장품 회사에서 입점 요청을 했지만 거절했다. 가게를 확장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게 그의 이유다. 지난 10월 한 유명 화장품 가게와 1000여 점 정도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것이 전부다. "입점하면 대량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질이 떨어지게 돼요. 좋은 제품을 파는 게 중요하지 많이 파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로 장사하는 것만 해도 감사해요. 다만 무역을 하던 사람이라 전 만큼은 아니지만 무역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전에는 OEM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했다면 이제는 자체 브랜드로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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