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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cm 여성들과 '한몸처럼' 사는 170cm 여성의 정체

조회수 2020. 9. 25. 20: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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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선수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감동이죠"
현대건설 배구단 동시 통역사 최윤지
국내 체육학과 졸업해 프로 스포츠 통역사로 활약
자는 시간 제외하고 선수들과 생활하는 매니저

1세트 작전타임 30초. 한 몸처럼 움직이던 7명의 배구 선수들이 감독 앞으로 모여든다. 평균 키 180cm의 선수들 사이 170cm의 한 여성이 눈에 띈다. 짧은 시간 안에 감독의 지시를 외국어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통역하는 중이다.


최윤지(27·현대건설 코치단)씨는 스포츠 통역사다. 2015년 KCG 인삼공사 배구단에서 시작, 2016년부터 현대건설 배구단에 입단했다. 경기장에서 코칭팀과 선수들의 입과 귀로 활약한다. 체육학과를 졸업해 훈련과 연습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 아는 그녀는 외국 선수들의 적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출처: @h_ee15 제공
최윤지 통역가의 팬이 촬영한 현장사진

태권도, 무용, 발레에 빠졌던 체육소녀


그녀의 고향은 부산 동래구다. 인문계인 중앙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 재수해 정시로 한양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몸 움직이는 게 좋아 처음부터 체육학과에만 원서를 냈다. 활달한 성격의 그녀는 태권도, 현대무용, 발레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에너지가 많았던 것 같아요. 공부에 대한 압박이 없었죠. 미술학원도 다니고 피아노도 치면서 해보고 싶은 예체능 활동을 실컷 했어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분명했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걸 가장 즐거워했어요. 체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스포츠 통역사는 해외 대학을 졸업하거나 어학을 전공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녀는 두 가지 경우 모두 아니다. 해외 체류 경험은 대학교 4학년 때 1년간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던 것이 전부다. 한국에서만 자랐어도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어머니 교육방침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했다.

출처: jobsN

“엄마가 영어를 좋아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영어 라디오 방송이 틀어져 있었죠.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잖아요. 여덟 살부터 자막 없이 미국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미국 유아용 TV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다른 집에서도 당연히 다 그러는 줄 알았어요. 영어도 운동처럼 감각적으로 체득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 덕분에 밥먹고 사는 것 같아 감사하죠.“


봉사활동 계기로 스포츠 구단 통역가 제의받아


체육학 전공은 적성에 잘 맞았다. 스포츠 교육자, 팀 트레이너로 진로계획을 세웠다. 통역을 처음 접한 건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였다. 경기 현장에서 선수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대학 때 자원봉사활동과 아르바이트로 패션 행사, 미디어포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역을 해봤죠. 스포츠 통역이 가장 신나는 일이었어요. 스포츠 경기를 정말 좋아했으니까요. 학교에서 주최하는 경기는 빼놓지 않고 볼 정도로 현장에 있는 게 좋았어요. 경기장에서 선수가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과 연습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감동을 느껴요.”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방송 제의도 많았다. 지인들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 그녀에게 스포츠 아나운서를 추천했다. 스포츠가 좋아 체육학과에 진학한 그녀였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것보다 선수들과 밀착해 지내고 싶었다. 2015년 평창올림픽 국제 미디어 포럼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맺은 인연이 기회로 이어졌다. 현장에 있던 KGC 인삼공사 통역 담당자가 구단 입사를 제의했다.


“2015년 3월 졸업 후 5월 KGC 인삼공사 배구단 통역가로 들어갔죠. 서류를 내고 면접을 봤습니다. 서류상 어학점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면접 때 얼마나 감각적으로 스포츠 전문 용어를 신속하게 통역할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검증하죠. 체육학과를 졸업해 전문 용어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출처: 최윤지 인스타그램
현대건설 엘리자베스 선수와 경복궁 구경간날

영어실력보다는 센스와 배려심


구단에 입단해 외국 선수들을 전담하는 일은 단기적인 통역 업무와 달랐다. 신입 때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경기 분위기에 자주 당황했다. 감독과 선수들의 언어에 맞게 바로 통역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큰 경기장에서 울리는 응원소리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감독과 코치, 선수가 동시에 말을 쏟아낼 때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디에 서 있어야 방해가 안되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


“경기장에는 선수와 감독님 말고 진행을 돕는 수많은 인력들이 있어요. 주변 소음과 분위기에 흔들리면 안 되죠. 특히 1분 미만 작전 타임 때는 핵심을 빠르게 전달해야 해요. 전달하려는 의미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감독님께서 블로킹을 지시할 때 ‘날아가지 마’, ‘쓰러지 않게’ 등 표현을 다양하게 하세요. 하지만 그 말을 직역하면 외국 선수들은 이해가 어려워요. 의역을 섞어 ‘철저히 수비하라’는 뜻을 전하는 겁니다. 현장에서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감독님과 선수들이죠. 두 입장 모두 고려해 통역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스포츠 통역가의 급여는 구단마다 다르다. 신입의 경우 일 년 차 월급은 평균적으로 세전 300만원부터 시작한다. 연차가 쌓이면 다음 계약 때 금액이 오른다. 구단 상황에 맞게 인센티브를 받거나 임금을 동결하는 경우도 있다. 1년 계약하면 8개월 동안 선수 스케줄에 맞춰 합숙생활을 한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함께 밥을 먹고 훈련 때도 늘 같이 있는다.

출처: SBS sports 캡처
스포츠 통역사도 선수 못지 않은 팀워크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1년 계약하면 8개월은 선수 스케줄에 맞춰 일하고 시즌이 끝난 4개월은 프리랜서로 지냅니다.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요. 한 해 3분의 1은 단기 통역일이나 취미활동을 하며 자유롭게 지내죠. 작년에는 10주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는 시대인데 제 자신에게 투자하며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한국에 적응해야 하는 외국선수들에게 최윤지 스포츠 통역가는 유일하게 진심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동료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매시간 외국선수와 함께하며 그들의 정서적 안정에 최선을 다한다. 선수들 사이에서 그녀의 별명은 ‘엄마’다. 개인 시간도 없이 선수와 스포츠에 대한 애정만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려와 희생정신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하게 하루를 사는 프로 선수들과 일상을 보내는 게 행운이라 생각해요. 항상 한계에 도전하며 노력하는 선수들 모습에 자극받거든요. 우연히 스포츠 통역사로 일하게 됐지만 앞으로도 전문성을 살려 스포츠 관련 일을 할 생각입니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처럼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록을 써나가는 통역가 최윤지가 되고 싶어요.”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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