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 TV 앞으로 불러모았던 '요정컴미'의 근황

조회수 2020. 9. 25. 20: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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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졸업 후 리포터·통번역가
어린이드라마 ‘요정컴미’역 전성초씨
미국 대학 졸업 후 리포터·통번역가
태양의 후예 촬영 현장서도 활약

또박또박한 발음, 뿔테 안경 뒤 빛나던 눈동자. 외계 행성에서 온 것 같은 신비함을 풍기던 열한살 여자아이가 말했다. “안녕 난 컴미야”


2000년대 초반 어린이들은 오후 5시면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았다. 화면에는 KBS 어린이 드라마 ‘요정컴미’가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아역배우들이 자라 배우로 성장했다. 그러나 요정컴미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아역배우 가운데 하나인 전성초(27)씨는 마치 요정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녀를 만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들었다. 

출처: jobsN

갑작스러운 주연 캐스팅


전성초씨 이모부는 MBC PD였다. 테스트 영상을 제작하는데 다섯살짜리 조카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거부감 없이 율동과 노래를 잘 소화해냈다. 1994년 MBC ‘뽀뽀뽀’ 출연을 시작으로 KBS ‘하나둘셋’, EBS ‘꾸러기 안전일기’ 등 어린이 방송에 출연했다. 2000년 어린이 드라마를 기획하던 KBS 노동렬 CP는 똘똘하고 당찬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바로 ‘요정 컴미’ 주연 배우로 캐스팅한다.


“정극 연기는 해본 경험이 없어 총괄 감독님을 제외한 제작진이 전체가 반대했대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밀어붙이셔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죠. 부담감이나 힘든 일은 없었어요. ‘오늘은 뭘 하며 놀지?’ 하면서 현장 가는 걸 신나했죠. 화장하기 싫어하고 치마는 안 입겠다며 도망다니기 바빴어요. 요즘 아역배우들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경쟁도 치열하다던데 운이 좋았죠.”


이전까지 어린이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은 1~2%대였다. ’요정컴미’ 평균 시청률은 10.46%, 순간 최고 시청률은 18.76%. 이례적인 기록이었다. 원래 6개월이던 촬영 기간이 2년으로 늘어났다. “어린이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과 함께 2002년 476부작 드라마 촬영이 끝났다.


“초등학교 5,6학년을 컴미로 살았어요. 학교생활이 어려웠죠. 따돌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저를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싫었어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사촌 언니의 사진을 보고 부모님께 ‘유학 보내달라’며 졸랐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말레이시아 국제 학교를 다녔어요.”

김창완, 장근석 등이 출연한 KBS 어린이 드라마 '요정컴미'

연기 경력이 없었던 아역배우 전성초씨의 회당 출연료는 3~4만원이었다. 돈벌이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 출연한 방송이었다. 광고 제의는 없었냐고 묻자 “부모님이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 때 한국에 돌아와 국제 고등학교를 다녔다.


“방송 출연만이 목적이었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었겠죠. 연예인이 되면 평범한 삶과는 아예 동떨어지는 거잖아요. 아역 때 귀여운 모습을 좋아해주셨던 분들도 얼굴이 조금만 바뀌거나 기억하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바로 돌아서는 걸 많이 봤어요. 대중의 엄격한 시선에 상처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해보고 싶은 걸 하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었어요.”


미국 대학 졸업 후 아리랑 TV 조연출 리포터로


한국 수능을 볼 자신이 없었던 그는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 진학했다.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를 꿈꾸며 생물학과에 입학했지만 피를 보면 현기증이 났다. 교양으로 듣던 지리·환경 과목이 흥미를 끌었다. 전과해 2012년 졸업했다. 방학이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보러 틈틈이 한국을 오갔다. 디지털 싱글 음반을 내기도 하고 아리랑 TV에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실 2011년에 가수 데뷔도 했어요.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동안 한국에 왔을 때였죠. 오랜 지인분이 음반 제작 회사에 들어갔는데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오셨습니다. 좋은 경험일 것 같아 일주일 만에 콘셉트를 잡고 완성했죠. 가요무대에 서지도 못하고 바로 학기가 시작해 미국으로 갔어요. 슈퍼스타K 출연제의도 들어왔는데 준비가 안됐다는 생각에 거절했어요. 한번도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해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죠. 실력 발휘한 것 같아 흡족해요.”


2011년 해외 방송사들을 위한 영문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아리랑 TV와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 아리랑 TV 조연출 겸 프리랜서 리포터로 3년간 일했다. 1년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 맞춰 매일 새벽 네시반에 출근했다. 직접 방송 대본을 작성하고 편집실에서 영상을 편집하며 밤을 새울 때도 많았다. 

출처: 아리랑TV 캡쳐
2013년 아리랑 TV MC로 출연 중인 전성초씨

“미국 대학을 다니며 환경 NGO에서 인턴도 해봤지만 졸업 후 운명처럼 다시 방송 쪽에서 일했어요. 연기자와 리포터는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똑같이 카메라 앞에 서도 리포터는 없는 걸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잖아요. 예쁘지 않아도 괜찮고 잘 보여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연예인으로 대중 앞에 선다면 잘 준비해 아역 때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텐데 그럴 자신이 없었던거죠.”


스텝고충 이해할 수 있었던 촬영 현장 통역가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일하며 받았던 월급은 200만원 미만이었다. 스물네살부터 스물일곱살까지 청춘을 바친 일이었다. 진행을 맡았던 프로그램이 없어지자 회의감이 밀려왔다. 어딘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지인에게 ‘공짜로 여행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태양의 후예 해외 촬영팀이 통역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백수로 우울해하고 있을 때였죠. 태양의 후예 그리스 촬영팀에 현장 통역사로 한달간 합류했습니다. 15년만에 돌아온 드라마 촬영장이었어요. 예전에는 출연자 입장이었으니까 스텝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몰랐거든요. 직접 제작진과 지내보며 몸소 깨달았어요. 특히 제작비가 많이 드는 해외 촬영은 스케줄이 빼곡해요. 최우선으로 배려 받았던 연기자와 그걸 뒷받침해주는 제작진 둘 다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것도 의미가 있죠.”

출처: 전성초 인스타그램 캡쳐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해외 촬영 통역가로도 활동한 전성초씨

태양의 후예를 시작으로 푸른 바다의 전설, 배두나가 출연한 미국 드라마 ‘센스8’ 등의 촬영 현장 통역가로 일했다. 송중기, 이민호가 “먼저 데뷔하신 선배님”으로 부르기도 했다. 인연이 이어져 배우 한효주. 추자현의 영어 과외를 가르치고 있다. 실력도 차근차근 쌓는 중이다. 2017년 11월 이화여대 통번역학과 대학원에 합격했다.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계속 통번역가의 길을 걸을 생각이다.


“‘’만약 연기를 계속했다면’을 상상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열두살에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바로 드라마 주인공이 됐던 것처럼 운과 상황이 맞아야 하죠. 주인공 컴미일때와 지금과 같은 건 하나에요. 주위 시선 신경 쓰지 않는 전성초로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최근 대학원에 합격했어요. 어학이라는 특기를 살려 전문 통역가가 될 거예요. 제 삶을 사랑하며 살다 보면 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거라 생각해요.”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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