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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앞 그 남자.. "저는 세상 한심한 놈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20: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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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수문군으로 활동하는 이순환씨
대한문 수문군으로 활동하는 이순환씨
마흔에 연기 시작한 늦깎이 단역 배우
한심했던 젊은 날 뒤로하고 날갯짓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과 자기 발로 걸어간 사람. 마흔 무렵부터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순환(42)씨는 한때 후자에 속한 사람이었다. 패배 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젊은 시절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멱살 잡고 몇 대 쥐어 패고 싶은 세상 한심한 놈”이었다. 그는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현재와 미래를 얘기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눈이 반짝였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수문군(守門軍) 역할을 맡고 있는 이씨를 만났다. 이씨는 수문군으로 일하며 연극배우, 영화 단역(端役)으로 활동 중이다. 

출처: jobsN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수문군으로 활동중인 단역배우 이순환씨

한심했던 젊은 시절


공부에 흥미 없고 친구와 놀기 좋아하는 시골 소년이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20가구 남짓의 작은 마을이었다. 부모님은 벼, 딸기 농사를 지었다. 여유는 없지만 형편이 어렵지도 않았다. 뭐든 열심히만 하면 부모가 뒷바라지해줄 수 있는 여건이었다. 하지만 꿈이 없었다. 대충 시험 보고 점수에 맞춰서 1994년 지역의 한 전문대 식품가공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무렵 외환위기가 왔다. “취업률 90%가 넘는 과였는데 식품 업체들이 줄 도산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졌어요. 막막했죠.”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기나긴 방황이 시작됐다. 1999년 상경해 일하다 관두기를 반복했다. 변변치 않은 직장을 옮겨 다니며 1~2년씩 백수로 지냈다. 직업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6개월 넘게 방에만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한 적도 있고, 온종일 TV만 돌려보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님 댁이나 누나 집에 얹혀살았다. 삶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무엇을 시도하거나 배워보려 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나는 뭘 해도 안될 거고, 일해봤자 얼마 벌지도 못할 거다’라는 회의와 패배감에 젖어있었습니다.”

촬영장에서의 이순환씨

막다른 길에서의 반전


서른여덟 살에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전자부품 가게를 관뒀다. 직원 수 4명의 작은 가게였지만 그나마 가장 오래 일한 직장이었다. 6년여를 다녔다. 아버지는 “꼴도 보기 싫다”며 “연을 끊자”고 했다. 대책이 없었다. 퇴사 후 집에서 ‘멍 때리기’가 하루 일과였다. 3평짜리 단칸방에 살았다.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인생이 재미있지도 않고,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졌어요. 꾸역꾸역 살아온 느낌이었죠. 희망이 한 톨도 보이지 않았어요.”


연탄불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극심한 우울증에 걸린 상태였다. TV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촬영장 가서 연예인 구경이나 하고 죽자.’ 죽음을 계획하고서야 평생에 없던 실행력이 생겼다. 인터넷으로 ‘엑스트라’(보조출연)를 검색했다. 업체 한 곳을 방문해 보조출연자 등록을 했다. 바로 다음날 출연 기회가 왔다.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행인 역이었다. 8시간 대기하며 받은 일당은 3만5000원. 적은 돈이었지만 촬영장에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이후 연락이 오는 대로 촬영장에 갔다. 한 달에 열 번 정도 일을 나갔다. 월 30만~40만원을 버는 게 전부였지만 인생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마흔이 되던 해였다. “촬영장 가서 지나가라면 지나가고, 서 있으라면 서 있고. 그게 다였지만 재미있더라고요. 나중에 TV를 봤는데, 형체는 못 알아보지만 제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찍는 단편영화에는 수고비도 받지 않고 출연했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촬영장에서의 이씨(왼쪽), 연극 공연 후 동료 배우들과 함께(오른쪽)

대사 있는 역에 캐스팅되는 것이 목표


지난 2년여간 이씨는 드라마와 영화 수백 작품에 보조출연했다.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흥부’를 비롯해 ‘국제시장’, ‘신의 한 수’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신하(흥부), 피난 가는 애 아빠(국제시장), 죄수(신의 한 수) 역을 맡았다. 단역 배우에 도전하려고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보조출연을 하지 않는다. 보조출연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제품 포장 등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올해부터는 수문군으로 일하고 있다. 주 6일 근무에 보통 오후 5시쯤 퇴근한다. 전통 의상을 입고 하루 세 번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을 진행하는 것이 주업무다. 월급은 140만원 정도. 적은 돈이지만 연기와 관련된 일이고, 잔업이 없어서 퇴근 후 연기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이씨는 직장인 극단 활동을 하며, 연기 학원을 다닌다. 올해 6월에는 직장인 연극제에도 참여했다. 수입이 충분치 않지만 최소한의 식비와 교통비 등을 빼고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아서 버틸만하다. 내년 이씨의 목표는 드라마나 대사 있는 역에 캐스팅돼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부지런히 제작사를 다니며 프로필을 돌릴 계획이다.


“나이 마흔에 연기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처음 찾았습니다. 앞으로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잘 될 것 같아요. 원래는 항상 부정적이었는데 요즘에는 긍정적인 생각이 절로 듭니다. 예전에는 100만원, 200만원 버는 게 하나도 안 소중했어요. ‘그 돈으로 뭐 해’같은 생각만 했죠. 하지만 지금은 작은 돈도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꿈꾸는데 돈과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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