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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이 싫었던 그, 20년후 ‘축덕’들의 아이돌이 되다

주7일, 스케줄 못 잡는 생활에도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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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축구해설위원 박문성씨
내년이면 축구계 입문 20년째
'덕업일치'로 성공하기

SBS 축구해설위원 박문성(43)씨를 보면 ‘덕업일치’라는 말이 떠오른다. 일본말 ‘오타쿠’에서 파생된 ‘덕후’라는 말은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 일로 돈 버는 데 성공한 사람을 덕업일치(관심 분야를 직업으로 삼는 것)했다고 한다. 축구가 좋아서 축구전문기자가 됐다. 좋아하는 일에 빠져 살다 보니 여기저기서 방송 요청이 들어왔다. 능력을 인정받아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축구해설가 중 한 명이 됐다. 내년이면 축구계 입문 20년째. 대한민국 ‘축덕’(축구 덕후)들의 아이돌, 박문성 위원을 만나 일과 인생에 대해 들었다. 

SBS 박문성 해설위원과 인터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손흥민 선수와 함께(오른쪽)

출처jobsN, 박 위원 제공

축구가 좋아서 선택한 길


1999년 8월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에 기자로 입사했다. 원래 전공은 회계학이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학 시절 학교 학생회 활동과 축구팀 응원에 열성이었다.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졸업 후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기자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왕이면 좋아하는 분야의 전문기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축구기자 생활은 고됐다. 박봉이었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프로, 아마추어 축구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 유명 선수들을 숱하게 만났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것이 해결된다는 자체가 행복했어요. 회사에는 저처럼 젊고 축구를 좋아하는 동료가 많았기 때문에 서로 끈끈했고요.”


첫 방송은 2001년, KBS 라디오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관련 방송이 다수 편성될 때다. 패널로 출연해 축구 관련 소식을 짧게 소개하는 코너였다. 벌벌 떨면서 방송을 마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사나 열심히 쓰자 생각했는데, 첫 방송 이후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2002년 월드컵 때 MBC 축구 프로그램 패널로 처음 TV에 나왔다. 이후 경인방송(2002~2003년)과 MBC(2003~2005년)에서 축구 경기 해설을 했다. 2002년 월드컵 후, 유럽에 진출한 박지성·이영표·설기현·송종국 등 한국 선수들의 경기 중계를 주로 맡았다. 기자와 해설위원을 병행했다. 국내 프로축구 경기 취재가 밤에 끝나면, 유럽 축구 새벽 방송을 하러 방송국으로 출근했다. 주말에도 방송을 했다. “같은 분야였기 때문에 병행이 가능했어요. 쉬는 날은 거의 없었고요. 재미없는 일이었다면 불가능했겠죠.” 

박지성 선수, 배성재 아나운서와 함께(왼쪽). 아르헨티나의 세계적 축구스타 마라도나와 아이마르 인터뷰(오른쪽)

SBS 해설위원으로 최고의 자리에


‘박문성’이라는 이름을 축구 팬들 뇌리에 각인시킨 것은 SBS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좋은 조건의 제안을 받았다. SBS가 전속계약을 제시한 것. SBS로 가기 전까지는 회당 출연료를 받았다. 전속계약을 하면 매년 연봉 계약을 하고, 방송 횟수와 상관없이 정해진 급여를 받는다. 전속계약은 해설가로서의 경쟁력을 충분히 인정받았기에 가능했다. SBS에서 월드컵과 아시안컵 등 굵직한 국제 대회에서 생중계를 맡았다.


SBS가 2009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사들이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프리미어리그는 박지성이 2005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영국 명문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부터 국내 축구팬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해외 리그가 됐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중계에서 해박한 유럽 축구에 대한 지식과 안정감 있는 해설로 축구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SBS에서 해설위원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병행하던 축구기자 생활은 2009년쯤 접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인터넷에 떠도는 한 유럽 축구선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오인해 2009년 쓴 자신의 책에 그대로 그 내용을 인용한 것. 축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른바 ‘스렉코비치 사건’이다. 네티즌들이 두샨 바스타라는 세르비아 국적의 축구 선수를 한 쪽 팔 없는 축구 선수(네나드 스렉코비치)로 둔갑시켜 장난친 것을 박 위원이 그대로 믿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네티즌들은 두샨 바스타가 경기 도중 한 쪽 팔이 없는 것처럼 절묘하게 찍힌 착시 사진들을 찾아내 장난에 이용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축구 전문가로서 치명상을 입었다. 즉각 잘못을 인정하고, 축구 팬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책에서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 하지만 이후 무수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아픈 과거에도 그는 담담했다. 변명할 여지가 없는 자신의 잘못이고, 비난을 극복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 사건은 제가 ‘부디 이해해주세요’ 할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잘못한 일이죠. 그 사건 외에도 크고 작은 실수들을 방송하면서 여러 번 저질렀어요. 다 제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저도 사람인 이상 앞으로도 실수가 없을 수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실수 후 그것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성한 뒤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느냐’입니다.” 박 위원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팬들과의 소통 노력에 축구 팬들은 그를 꾸준히 지지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아무리 방송을 많이 해도 더 겸손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해설가가 되자”는 다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긴다고 했다.   

축구대표팀 기성용, 이청용, 지동원 선수와 함께(왼쪽). 2014브라질월드컵 결승전에서 차범근 감독과 함께(오른쪽).

주7일이지만 행복


그는 사실상 주 7일 일한다. 매주 평균 2~3회씩 축구 경기를 중계하고, 네이버에 축구 칼럼을 쓴다. 중계 외에도 축구 관련 프로그램, 네이버 라디오방송 등 일정이 많다. 양질의 중계를 위해 수시로 K리그를 비롯해 유럽·남미 리그 등 각종 축구 경기를 시청한다. 하루를 온전히 쉬는 날은 드물다. 중계 스케줄이 주간 단위로 금요일마다 나오기 때문에 일정을 미리 잡아두기도 어렵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이지만,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으로 삼는 일은 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최근 월드컵 최종예선과 평가전에서 잇단 졸전으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 축구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했다. 축구 협회가 여전히 애국심에 기댄 대표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축구의 대들보 역할을 해야 할 ‘K리그’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없다 보니 ‘좋은 지도자→유능한 선수 발굴→팀 조직력 배양→호성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축구, 스포츠 산업 분야에서 활약할만한 인재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저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런 전문가를 육성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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