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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정남규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조회수 2020. 9. 21. 18: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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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관이 쓴 사실적인 소설

2004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노인과 부녀자, 정신지체 장애인 등 21명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됐다. 살인뿐만 아니라 시신 11구를 토막 내 암매장하고, 3구는 불에 태운 혐의(사체손괴 및 유기 등)도 받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른바 ‘이문동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문동 살인사건은 2004년 2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골목길에서 전모(당시 24세)씨가 흉기에 찔려 죽은 사건이다. 실제 유영철에게 희생된 사람의 수는 신만이 알 수 있지만, 사법절차에 의해 확정된 사람은 20명이 됐다. 이후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眞犯)은 정남규로 밝혀졌다. 정남규는 13명을 살해하고, 20명을 크게 다치게 한 또 다른 연쇄살인범이다.


최근 출간된 소설 ‘시그니처’는 이문동 살인사건에서 출발했다. 왜 유영철은 자신이 하지 않은 범행을 자백했을까. 그리고 그 사건의 진범이 하필이면 또다른 연쇄살인범 정남규였을까. 시그니처를 쓴 박영광(43) 작가는 “유영철과 정남규, 두 사람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작가적 상상으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시그니처는 두 명의 ‘사이코패스’ 주경철, 정성규가 벌이는 살인 경쟁,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형사 하태석의 얘기를 그리고 있다.


현직 경찰관이 쓴 사실적인 소설


2006년 멜로 소설 ‘눈의 시’로 데뷔한 박 작가는 2008년 범인 검거 과정에서 순직한 고(故) 심재호 경위를 모티프로 한 소설 ‘이별을 앓다’와 2013년 ‘지존파 사건’을 모티프로 한 ‘나비사냥’ 등 몇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나비사냥은 5쇄까지 찍었다. 매 쇄(刷)마다 수량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업 작가가 쓴 소설이 아님에도 수천권이 팔려나갔다.

출처: 박 작가 제공
현직 경찰관인 박영광 작가

그의 소설에 대해 독자들은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피의자를 특정하는 과정과 검거하기 위한 과정이 현장에서 보고 쓴 것처럼 생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서 간의 경쟁이나, 경찰과 기자의 관계 등 미묘한 부분은 실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운 내용이다.

출처: 도서출판 은행나무 제공
박 작가의 소설 나비사냥, 시그니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박 작가는 현직 경찰관이다. 박 작가는 청와대 경비를 책임지는 101경비단에서 1999년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05년부터 전북 순창경찰서에서 강력팀, 과학수사팀, 경제팀 등 다양한 부서에서 활약하다 지금은 지능팀에 근무하고 있다. 주로 사기나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를 다룬다.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건들을 소설에 녹였습니다. 경찰청에서 내는 ‘살인사건백서’ 등을 참고했습니다. 시그니처에 등장하는 송유관 기름 절도 사건은 인근 경찰서인 곡성경찰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형사는 왜 작가가 됐을까. “제 유일한 취미는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다 보니 아쉬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주인공이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읽은 소설의 작가는 저와는 생각이 다르더라고요. 아예 ‘내가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 무작정 쓰기 시작했습니다.”


밤샘근무 마친 뒤 작업… 경찰로서의 일도 소홀하지 않아


전업 작가도 장편소설을 쓰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다른 직업, 그것도 근무시간이 일정치 않은 경찰관은 언제 어떻게 소설을 쓸까. “아무래도 전업작가와 비교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경찰관으로서 직무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이 셋을 둔 아빠로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주로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낮에 작업합니다. 차분히 앉아 줄거리를 구상하고, 실제 글은 새벽에 씁니다. 새벽 4시쯤 일어나 컴퓨터 모니터만 켜놓은 상태서 글을 쓰면 차분하게 글이 써지더라고요.”

경찰관으로서 소설을 쓰면서 시간이 부족한 것 외에 또 다른 고민이 있단다. “소설이다 보니 당연히 ‘픽션’이 가미됩니다. 소설의 설정이나 의도 때문에 경찰의 모습을 과장해 무능하게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동료에게 누가 될까 봐 걱정을 하죠. 현직 경찰이 쓴 소설이다 보니 소설 속 내용을 모두 진짜라고 믿는 분들이 계시는데, 소설은 소설로 받아 들여주셨으면 합니다.”

경찰관으로서의 일에 소홀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가 경계하는 일 중 하나다. 이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실제로 박 작가는 지난해 경찰청이 선정한 ‘우수 경제팀원’으로 뽑혀 표창을 받았다.

출처: 박 작가 제공
박영광 작가

“전국의 시·도 의원들에게 전화해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속여 사기를 친 범죄자를 검거했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이 기억이 잘 안 나도 티를 낼 수 없다는 점을 노린 범죄였습니다. 15건이나 범죄를 저질러 전국의 수많은 경찰서에서 그 사람을 쫓고 있었는데, 저를 포함한 저희 팀이 여관촌을 이 잡듯이 뒤져 범인을 잡았죠.”


범죄자·피해자 모두에게 필요한 건 ‘관심’


그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관심’이라고 했다. “유영철·정남규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들처럼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극복하고 선량하게 살아가니까요. 하지만 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범죄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피의자들도 많이 봤습니다. 사회가 조금 더 관심을 보여주면, 범죄로 처벌받는 사람이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범죄자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관심도 그가 글을 쓰는 이유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해 범죄자의 잔혹성을 드러내면서 피해자에 대해서 ‘단순히 죽었다’로 쓴다는 것은 죽음이 너무 가벼워 보였습니다. 단순히 죽어버린 여자가 아니라 우리의 동생이고 아내인 사람, 누나이고, 엄마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에 더 많은 사연을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누구의 죽음도 가볍지 않고, 남은 가족들이 지게 될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는 것을 느꼈으면 합니다.”


작가로서 그는 하태석 형사가 등장하는 소설을 몇편 더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로서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건 너무 거창하더라고요. 당장은 좋은 팀장이 꿈입니다. 좋은 팀장이 뭐 다른 게 있겠습니까. 후배들이 표창도 받고, 특진도 할 수 있도록 해줘야죠. 그러려면 제가 한 발이라도 더 뛰어서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죠. 그게 바로 국민을 위한 길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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