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인생에서 바닥 2번친 '4잡러' 김풍의 따끔한 한마디

조회수 2020. 9. 21. 18: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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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요리사·단역배우·웹툰작가..이 남자의 진짜 직업은?
셰프·자취요리연구가·웹툰작가 김풍
야매요리로 TV 출연도
찌질의 역사로 성공 후 지금 이 자리 까지

‘야매요리사, 자취요리연구가, 웹툰작가, 방송인’


별명은 여러개지만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명. 바로 예능 프로그램과 요리 프로그램을 오가며 활동 중인 김풍(39·본명 김정환). 셰프로, 방송인으로 알려진 그의 본업은 웹툰작가다. 지난 3월, 독자 평점 10점 만점 중 9.9를 받으면서 완결한 ‘찌질의 역사’가 대표작이다.


지금은 성공한 웹툰 작가와 야매요리사로 각종 방송에 출연하지만, 처음부터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2년동안 만화 콘티를 거절 당하기도 했고, 5년 동안 일이 없어 트위터만 하던 때도 있었다. jobsN이 찌질한 인생을 성공으로 바꾼 비결을 들었다.

출처: jobsN
김풍 작가

폐인가족으로 첫 연재, 캐릭터 회사까지


김풍은 웹툰작가 1세대다. 학창시절부터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던 그는 홍익대학교 미대에 입학했다. 사실 꼭 대학에 가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진학을 결정했다. 삼수 끝에 합격했다.


-대학생 때 처음 웹툰 연재를 시작했다고 했다

“24살 무렵 ‘폐인’과 ‘엽기’ 키워드가 유행이었다. 주변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웃었던 내용을 만화로 그려 보여주고 싶었다. 4컷 만화를 그려 엽기스러운 콘텐츠를 공유하는 디시 인사이드 엽기 갤러리에 하나씩 올렸다. 반응이 좋았지만 갤러리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디시에서 글을 삭제했다. 김유식 대표한테 ‘만화를 올리고 싶은데 어디에 올려야 하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웹툰 갤러리를 만들어주겠다’고 답장이 왔다. 그때 웹툰 갤러리가 처음 만들어졌고, 꾸준히 만들어 올렸다.”


-폐인가족으로 대박을 쳤다는데

“다음에서 웹툰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다. 그때 연락이 와서 정식 연재를 시작했고, 싸이월드에서도 연락이 왔다. 학교 선배와 함께 캐릭터 회사를 차려 폐인 가족 캐릭터로 미니 홈페이지 미니미와 스킨을 제작했다. 그게 대박이 났다. 내가 잘 했다기보다 흐름을 잘 탔다고 본다. 만화나 캐릭터 상품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타이밍을 잘 맞췄다.”

출처: KBS 방송화면 캡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폐인가족을 설명하는 김풍

잘 나가다가 연기 위해 극단 입단


-2010년, 영화에도 출연했다. 연기를 배운건가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당시 만화를 그리면서 다른 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30살 되기 전에 새로운 걸 배워보고 싶었다. 연기였다. 평소 친분이 있던 장항준 감독을 찾아갔다."


-장 감독에게 영화를 배웠나

"연기를 하고 싶다고 찾아갔더니 극단을 추천해주더라. 그냥 연기 선생님과 1대1로 대본보고 연습하는 걸 생각하고 물어본 건데 일이 커졌다. 거기서 안 하겠다고 하면 그림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극단에 입단했다."


-폐인가족은 어떻게 했나

"극단 연기자들에겐 극장이 그들의 터전이다. 나도 똑같이 연기에 몰두했다. 만화 연재도 그만하고, 회사 일도 멈췄다. 만화가에 대한 소명이 없던 때다. 그렇게 8개월 간 연기를 배웠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5년의 공백..자취요리연구가로 TV출연


다시 만화가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극단에서 나왔다. 폐인가족은 독자에게서 잊혀졌다. 폐인가족 담당이었던 그는 결국 회사에서도 나왔다. 새로 그리는 만화마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그의 나이 30살. 직장생활로 바쁘고, 승진으로 승승장구 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자존감이 자꾸만 낮아졌다.


-그때는 뭘 했나

"매일 '내일부터 열심히 신작 준비를 할거야'라고 다짐하던 때였다. 다짐만 했다.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게으르게 콘티를 짜서 출판에 가져다 주고 까이고를 반복했다. 뒹굴거리다가 트위터를 시작했다. 내 글이 사람들한테 리트윗(다른 사람이 쓴 글을 그대로 공유하는 것)이 될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내 웹툰에 댓글이 많이 달리면 좋아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당시 일이 없으니 트위터로 욕구를 해결했던 것 같다."


-어떤 내용을 올렸나

"의미 없는 글을 많이 올렸다. 그러던 중 내 식대로 요리를 해서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특히 사람들이 배고프지만 선뜻 요리를 해먹을 수 없는 시간에 글을 올렸다. 리트윗 수가 많아져 좋았다. 팔로우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걸 보고 Olive TV에서 연락이 왔다. 백수여서 돈이 필요할 때라 무조건 나갔다. 그때 처음 TV에서 요리를 했다."


'찌질의 역사'로 빛 보다


2013년, 만화가로 재기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났다. 수지와 이제훈 주연의 영화 '건축학개론'. 영화를 보고 스토리가 떠올라 2주만에 만화 네 편의 콘티를 만들었다. 자신은 스토리 작가로, 학교 후배를 그림작가로 섭외해 대표작 '찌질의 역사'를 완성했다. 찌질의 역사는 90년대 후반 20대의 연애사를 적나라하게 그린 성장만화다. 주인공 남자의 찌질함으로 여성독자들의 질타와 모두의 공감을 동시에 얻었다. 단행본 출판은 물론, 최근 뮤지컬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출처: 네이버 웹툰 캡처
웹툰 찌질의 역사 중 한 장면. 남자 주인공 민기가 여자친구 설하 싸우고 화해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백번 용서를 구해도 모자란 민기가 여자친구에게 '너도 잘못한거 있는거 알지?'라는 말을 던지면서 여성들의 욕을 먹었다. '암 유발 장면' '싸우고 화해하는데 다시 싸우자는 장면' 등 이라고 불린다.

-처음부터 인기가 좋았나

"처음 웹툰이 나오면 프로모션으로 위쪽에 걸어준다. 하지만 그 효과도 보지 못하고 바로 밑에서 2번째로 떨어졌다. 빨리 접고 다른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남자 주인공의 찌질함을 극대화했다. 그때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시즌 1이 끝나고 5위를 했고, 그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등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즌2에서 시즌3로 넘어갈 때, 공백이 길어 질타를 받기도 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시작하면서 1년 조금 넘게 쉬었다. 그때 냉부해 외에도 KBS '해피투게더', tvN 'SNL'에 출연했다. 웹툰에 집중할 수 없었다. 폐인가족 때와는 달랐다. 냉부해를 남기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찌질의 역사 시즌 3를 시작했고, 지난 3월 완결지었다. 4년간 키워온 자식을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자서전은 아니지만 캐릭터 속에 감정을 솔직하게 녹여냈던 작품이다. 지금도 보면 가끔 울컥한다. 지금은 신작을 준비 중이다. 찌질의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장르물이다."


-자신과 같은 웹툰 작가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나는 웹툰작가로서 모범답안이 아니다. 다만 인생에서 두번 가장 바닥을 쳤던 경험이 콘티를 짤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꼭 이런 경험이 많아야 작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 어떤 경험을 하든지 온 감각으로 받아들여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게 중요하다. 책 많이 읽고, 밖에 나가서 경험하고 느껴라. 부족한 스토리에 화려한 그림보다 그림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좋은 스토리의 웹툰이 낫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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