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피아노 치던 유학파.. 저는 이제 여자 용접사입니다

조회수 2020. 9. 21.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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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걱정 없다' 소리에 용접 배워
피아노 전공했지만, 가세 기울며 생활고
'밥걱정 없다' 소리에 용접 배워
차별 이 악물고 버텨, 용접으로 인정받고파

용접봉 끝에서 나오는 불꽃의 온도는 섭씨 1000도가 넘는다.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거나 작업복을 갖춰 입지 않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금속과 닿아 튀는 밝은 불꽃을 맨눈으로 봤다간 안구 각막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용접은 그만큼 위험하고 힘든 작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일을 묵묵히 해내는 늦깎이 여성 용접사가 있다. 채신혜(48)씨가 주인공이다. 마흔 살이 넘어 용접을 처음 배웠다. “4~5년 정도 됐네요. 그전까지 제가 용접을 할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출처: 채신혜씨 제공
채신혜씨가 작업장에서 안전모를 쓰고 있는 모습.

피아노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가세 기울며 생활고


그녀는 6살 때부터 30년 넘게 피아노를 쳤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러시아로 유학도 다녀왔다고 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생각지도 않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노 공연을 하고, 학생들에게 개인 레슨을 하며 30대를 보냈다.


걱정 없을 것 같았던 삶에 위기가 찾아온 건 40세부터였다. 빚보증을 잘못 서고, 여러 차례 사기를 당하면서 생활고를 겪었다. 과외 학생을 소개해준 사람에게 레슨비를 뜯기기도 했다. 개인 과외까지 하나, 둘 줄어드는데 채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젊은 친구들한테 개인 교습이 몰리더군요.”


제과점, 떡집, 분식집,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피아노를 칠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감각도 떨어졌다.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젊은 직원을 뽑겠다며 나가라고 하는 곳이 태반이었다. 분식집에선 주말도 잊은채 하루 12시간씩 일했지만 월급으로 15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을 그만뒀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막했어요.” 

출처: 픽사베이
용접할때 나오는 불꽃 모습.

'밥걱정 없다'는 소리에 용접 시작


그때 지인에게 용접기술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뭐라도 해서 살아야 했어요. 용접이 좋아서 택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용접학원은 널려있었다. ‘단기속성’, ‘3개월 완성’ 이런 구호를 내걸고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기술을 익힐 자신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었던 피아노 연주도 30년 넘게 했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용접을 쉽게 배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 한국폴리텍대학교 남인천 캠퍼스에서 1년 과정으로 용접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알았다. 채씨는 특수용접과에 들어갔다. “66명이 입학했는데 다들 용접 경험이 있더라고요. 저만 맹탕이었습니다.” 매일 연습장에 혼자 남아 용접 실습을 했다. 입학한지 1년이 될 무렵 용접이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정도 자신도 생겼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부상을 입었다. 머리 위에 있는 파이프를 올려다보며 용접하는 도중 떨어지는 쇳물에 화상을 입었다. 작업복 안으로 흘러들어온 쇳물은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타고 내려왔다. 3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화상치료를 받으면서도 용접봉은 놓지 않았다.


1년 과정을 마치고 한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생활비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초보자에게는 용접봉을 주지 않았다. 용접사 보조로 청소나 심부름을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임금은 남자 직원보다 적게 받았다고 했다. 이를 악물었다. 일이 끝나면 용접학원에 나가 용접 실기 연습을 더 했다. 용접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계약직, 일용직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회사 6곳을 거쳤다.


“사업주가 여자 용접사는 싫다며 며칠만에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이유 없이 타박하기도 했고요.” 남들 쉴 때 일하면 ‘내일 할 것까지 다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소릴 들었다. 또 쉬고 있으면 '일 안 하고 논다'며 구박을 받았다고 했다.    

출처: 픽사베이
용접사가 보호구를 착용하고 용접하는 모습.

차별 이 악물고 버텨, 용접으로 인정받고파


노력 앞에서 차별은 결국 무너졌다. “이제는 남자들과 똑같이 대우받습니다. 주말에는 학교에 나가 혼자서 실습할 때도 있는데 교수님이 그러시더군요. ‘힘들었을텐데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요.”


용접사들의 임금은 초보자부터 숙련공까지 천차만별이다. 회사마다 차이도 있다. 보통 용접봉을 잡지 않는 초보용접사의 경우 보조를 하면 일당 8만원정도를 받는다. 용접봉을 쥘 수 있다면 대부분 10만원부터 일당이 책정된다. 약 5년 정도 경험을 쌓으면 13만원 가량, 10년 이상 기술을 쌓으면 17~18만원을 받는다. 20년 이상 일한 베테랑의 경우 25만원을 일당으로 받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시간을 '1공수',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시간을 '2공수'라고 부르는데 하루에 1·2공수를 모두 소화하면 이틀치 임금을 받는다.


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의 경우 용접분야 고졸 특채 초임이 3000만원을 웃돈다. 야근과 특근 수당을 합치면 그보다 늘어난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70~80% 수준인 곳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사업주와 일대일로 일당을 계약하기 때문에 임금이 공개되는 일은 드물다.


물론 일은 힘들다. “일하다 보면 두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서 쪼그리고 않아서 용접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허리디스크가 생기는 분들도 있죠. 화학물질이 녹아서 부상당할 위험도 있고요. 제가 화상을 입었던 것처럼요. 잘못하면 화학성분이 불꽃에 닿아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그녀는 늦었지만 전문가로 인정 받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잇다. “지금은 용접 기능사 자격만 있는데 산업 기사, 기사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용접 관련 분야에서 2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시험 볼 자격을 얻습니다.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고용보험이 가입된 사업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경력 인정이 안된다고 합니다. 조금 더 힘들 수 있겠지만, 기왕 시작한 일이니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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