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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270등' 래퍼, 군 제대 후 방 문 걸어 잠그고 공부해 간 대학은?

조회수 2020. 9. 21. 17: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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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앨범 내는 교사 되고파
랩하는 예비교사 김재현씨
불우했던 시절 버티게 한 힙합
힙합 앨범 내는 교사 되고파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꾸는 청주교대 1학년 김재현(25)씨는 래퍼다. 랩 네임은 ‘아톤(arton)’. 조만간 ‘링링링(ring, ring, ring)’이라는 제목의 음원도 나온다. 2015년 초까지 기획사 연습생을 거쳐 서울 홍대 등 인디계에서 활동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직접 쓴 가사와 비트가 각각 수백, 수십 개다. 김씨는 “음원을 꾸준히 내며 싱글 앨범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가 마이크 대신 교편(敎鞭)을 잡게 된 사연은 뭘까.

랩하는 교대생 김재현씨

불우했던 학창시절, 힙합에 빠져


힙합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플라이(Fly)’를 눈 감고 들으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불우했다.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했다. 여섯 살 터울의 누나와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컸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여기저기 빚을 지고,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다. 100만원 조금 넘는 할아버지의 공무원 연금으로 네 식구가 생활했다. “없는 형편에 학원도 보내주셨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반에서는 거의 꼴찌였고요. 결손 가정이라는 현실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어요.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놀러 다니기나 했고요.”


그러다가 힙합에 꽂힌 뒤에는 랩에 빠져 살았다. 유명 래퍼들의 노래를 하루에 수십 번씩 들었다. 친구들이 방과 후 학원을 가거나 독서실을 갈 때 집에 틀어박혀 랩 가사를 적었다. 헤드셋을 쓰고 가사 뱉는 연습을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학내 축제나 외부 공연도 많이 다녔다. 공부는 전혀 안 했다. 학교 성적은 전교 280명 중 270등. “시험 때 OMR카드를 먼저 나눠주는데, 시험지를 채 받기도 전에 답을 다 찍고 누워서 잤어요. 한 과목 점수가 100점 만점에 4점이 나온 적도 있어요.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 뿐이었죠.” 

교생 실습 갔을 때의 김씨(왼쪽), 랩 공연을 하는 모습(오른쪽)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꿈


2011년 수능 점수에 맞춰 인근 대학에 들어갔다. 힙합 동아리 활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무대에 섰다. 대학이나 지역 축제, 서울 홍대 공연장에서 랩을 했다. 여러 번 무대에 서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함께 곡 작업을 하자는 제의도 많이 받았다. 2012년에는 한 대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쫓기듯 군대에 갔다.


아무 희망 없이 간 군대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다. 포상 휴가를 가려고 시작한 군인 자녀 교육 봉사활동에서였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저를 따르기 시작하더라고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도 많이 봤고요. 음악을 할 때도 항상 누군가 공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꽤 보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습니다.”


2014년 말 전역 후 두 달여간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을 굳혔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꿈이 생겼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기초가 부족했다. 학원 다닐 여유는 없었다. 방 문 걸어 잠그고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 9시부터 공부를 시작해 새벽 2~3시까지 불을 끄지 않았다. 주말도 없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공부만 했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도 부담이 돼서 EBS 강의에 집중했어요. 모르는 내용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어요. 안 풀리는 문제를 덮어놓고 잠에 든 적이 없어요.” 피나는 노력 끝에 대부분 6~7등급이던 점수를 6개월 여만에 1~2등급까지 올렸다. 수능 전 교대 합격권 모의고사 점수가 나왔다. 하지만 실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좌절감이 너무 컸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6개월 넘게 방황했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대낮까지 자고 방에만 누워있다가 다시 친구들과 술 마시는 생활을 반복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수능을 준비했다. 벼랑 끝이라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결국 꿈에 그리던 교대생이 됐다.  

”랩하는 선생님 될 것”


교대 입학 후에도 랩은 계속하고 있다. 학교 축제나 외부 행사, 서울 공연도 틈나는 대로 간다. 최근에는 한 작곡가에게 곡 작업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고, 녹음을 했다. 헤어진 연인이 통화하며, 투닥거리는 내용을 가사로 썼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대로 곡을 만들어 앨범을 낼 계획이다. “음악이 아무리 잘돼도 선생님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선생님이 된 후에도 랩은 취미로 계속 하고 싶어요. 끼 많은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싶어요. 제가 만든 랩으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처럼 주변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힘이 돼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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