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 고졸 무직 실패자에서 '이효리링'으로 화려한 부활

조회수 2020. 9. 21. 17: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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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음악 전공한 예술가형 사업가 장진태 대표
디자인·음악 전공한 예술가형 사업가 장진태 대표
사업 부도 직전 특허내 ‘연매출 80억’
효리도 붙이는 휴대폰 악세서리

이 남자가 10년전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실패한 인생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다. 미국 유학을 떠나 고학으로 어렵게 공부했지만 끝내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나이 서른셋 고졸자였다. 실용음악으로 세계 최고라는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했지만 한인식당, 흑인 옷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그러나 장진태(43) 대표는 주저앉는 대신 창업에 나섰다. 초기 아이템은 악기 관련 제품이었다. 결과는 실패. 과감히 아이템을 바꿨다. 스마트폰 뒤에 붙이는 고리형 액세서리 '아이링'을 제작했다. '아이링'도 처음 시장에 내놨을 때 아무도 유통하려 하지 않았다. 장대표는 해외시장을 두드렸다. 수출박람회의 바이어들을 세우고 손가락에 일일이 고리를 끼웠다. 20개, 40개…, 점점 팔리기 시작했다.


아이링은 2017년 11월 기준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러시아·캐나다 등 총 53개국에 수출중이다. 아이링을 판매하는 생활용품 제작업체 억스코리아(AAUXX Korea)는 2017년 연매출 8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억스코리아
스마트폰 보조제품 '아이링'

-전공이 특이하다. 원래 사업을 꿈꿨는지

“아닙니다. 돈버는데는 관심없고 그림 그리고 음악하는걸 좋아했죠. 처음 입학한 곳은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과였습니다. 군대에서 군악대였는데 음악이 너무 좋았습니다. 전역 후 학교를 자퇴하고 실용음악으로 유명한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다 합쳐 2000만원 든 마이너스 통장 두개로 생활을 시작했어요. 학비와 집세를 내니 딱 20만원 남았어요.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만 했던 가난한 고학생이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음대에 진학하고도 졸업을 못했다

“다른 동기들은 모두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진로를 세워놓고 있었어요. 졸업이 다가오는데 저는 아르바이트가 바빠 연습을 못했죠. 경제적으로 어렵고 앞날은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학교를 졸업 못하고 일단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돈 앞에서 음악가란 꿈은 사치였다. 취직도 학업도 할 수 없었다. ‘자격이 안된다면 내 아이디어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릴적부터 생각을 바로 행동에 옮겼던 그는 다시 엉뚱해 보이는 도전을 한다.

출처: 장진태 대표
반응이 차가웠던 악기 보조제품

-초기 사업 아이템은

“악기관련 제품이었습니다. 학부시절부터 기타치면서 ‘이런 것 있으면 좋겠다’ 하는 물건을 직접 발명했죠. 대표적으로 ‘피크패드’는 일렉트로닉 기타에 붙이는 피크(기타줄을 튕기는 악기 보조제품)였습니다. 기타 몸체나 헤드 등 연주자가 원하는 곳에 피크를 붙일 수 있는 제품입니다.”

악기용 악세서리 사업 매출은 계속 적자였다. ‘아이디어 하나면 된다’ 생각했던게 잘못이었다. 생산 비용, 유통, 광고, 영업까지 사업에 대한 아무 지식없이 도전했던 그는 처참한 실패를 맛본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제 2의 사업 아이템이 있었다. 동그란 고리가 달린 휴대폰 케이스였다.


-아이링은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2009년 아이폰 3GS가 한국에 처음 유통됐을 때였죠. 고리가 달려있는 아이폰 케이스 ‘iClooly’라는 제품이 눈에 들어왔어요. 디자인이 투박하고 아이폰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아쉬웠어요. '나라면 더 잘만들 수 있는데. 링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12월, 유사 제품들이 시장에 많이 나온걸 보고 사업 아이템을 과감히 바꿨습니다.”

출처: jobsN

-이미 시장에 유사 제품이 많았는데 아이링만의 차별점은

“아이링은 좌우 왕복 10만회까지 링을 흔들어도 헐거워지지 않는 구조적 완결성을 지녔습니다. 시장에 나온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해 개선했죠. 휴대폰 후면에 붙이는 접착판과 고리부분 연결이 문제였어요. 나사를 사용하면 움직일때 마모가 일어나 마찰력을 상실합니다. 아이링은 이 구조에서 나사를 뺍니다. 축과 원통형태의 탄성부를 사용해 오랫동안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했어요.”


-아이링이 처음 나왔을때 반응은

“아무도 유통을 안하려 했습니다. 국내에서 안풀려 홍콩 전자전에 찾아가 바이어들을 만나 영업했어요. 지나가는 바이어 한명 한명 손가락을 붙잡고 고리를 끼웠습니다. 길거리에서 양말파는 것처럼요. 해외 수출 박람회에서 20개, 30개씩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엔 주문이 거의 없었고 2014년부터 14억이라는 매출을 기록했죠. 2015년엔 50억, 2016년에는 62억의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먼저 매출을 올리던 아이링은 국내에선 연예인들이 사용해 유명해졌다. 협찬한 것도 아닌데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써서 화제가 됐다. 단순하고 깨끗한 디자인이라 스마트폰과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점도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비결이었다. 장대표에겐 계산기부터 두드리는 사업가적 자질은 부족했지만 예술적 안목이 있었다.

출처: jtbc '효리네민박' 캡처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출연한 '효리네 민박'에 등장한 아이링

-예술 전공이 사업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비즈니스에 결코 떼놓을 수 없는게 감성이니까요. 특히 미적 감각이 중요합니다. 억스코리아 사이트 신설 단계부터 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조명을 조절하며 촬영했어요. 제품 패키징도 디자인까지 모두 감독했죠. 사업적 능력만 약간 가미된다면 아티스트들도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그의 사업 철학은 뚜렷하다. 제품은 가까이 있어야하고 디자인은 단순해야한다는 것이다. 매일 손에 잡는 ‘아이링’처럼 말이다.


“30대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다 나와 재취업을 알아보는 또래들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시장이 빠르게 변하다보니 어떤 제품이 새롭게 필요할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소비자 불편을 해결하는 제품들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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