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OO라니" 이 연기로 전설이 된 배우, 요즘 뭐하나보니

조회수 2020. 9. 21. 17: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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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다
야인시대 심영 역할 맡은 김영인씨
건설사 대표 겸 배우로 활동 중
"단역이라도 연기만 하면 행복"
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고자라니!!! 내가... 내가 고자라니! 내가...! 아핰핰핰핰으.

우리는 이 배우를 알고 있다. 아니, 이 연기와 이 표정을 알고 있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심영 연기로 전설이 된 배우, 김영인(65)씨다.

흔히 알려져 있듯, 이 드라마에서 공산당 간부이자 배우였던 심영은 총알이 영 좋지 않은 곳을 지나가는 바람에 고자가 된다. 당시 김씨는 의사양반으로부터 성 관계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절규하는 연기를 실감 나게 해내 호평을 받았다.


이 영상은 방영 5년 후인 2008년 즈음 디시인사이드 합성 필수 갤러리(합필갤)에서 다시 빛을 봤다. 그리고 다채로운 합성 소재로 쓰이며 일명 '고자상스'라 불리는 합필갤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 심영이 공산당 간부였던 것에 착안해, 한때 디시인사이드 등에선 성불구자가 되는 걸 사회주의 락원으로 간다 표현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 시절 김씨는 대한민국 인터넷 최고 유명인 중 하나였다.


웬만하면 사내로 태어나 국민고자로 불리는 게 달가울 리는 없다. 하지만 김씨는 글쓴이와 만난 자리에서 오히려 이 심영 연기에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출처: jobsN
인천광역시 청라지구에서 만난 김영인 씨.

무명 배우


그는 단역배우다. 1989년 방영한 MBC '수사반장' 10대 범죄 시리즈에 이름 없는 형사로 데뷔해, 28년간 스포트라이트 주변을 맴돌았다. 가장 주연에 가까웠던 때는 영화 '떠도는 섬' 스태프 롤에서 배우 중 네 번째로 이름이 오른 거라 한다. 쉽게 말해 영화가 끝나고 배우 이름이 스크린을 채울 때 4번째 순서를 차지한 것이다. 지금은 검색해도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작품이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연기를 따로 배운 적도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병으로 군대를 갔습니다. 중장비 자격증 따서 전역 후 건설회사 다니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1977년에 쿠웨이트에서 1년 일하고 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어릴 적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놓지 못해 일을 그만두고 충무로 영화 무술팀을 쫓아다녔어요. 그러다 특채 비슷하게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제3공화국, 그녀가 돌아왔다, 영웅시대, 장희빈, 영화 바리바리 짱, 장미 여관 등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무대 중앙에 서기는 힘들었다. "매번 대사가 몇 줄 안됐어요. 연기도 해봐야 느는 건데, 기회가 없으니 발전이 어렵더군요. 그러니 연기력이 오르지 않아 주연을 못 맡고, 짧은 대사만 받는 악순환이 계속됐죠."


뜻밖의 기회


그렇게 14년이 흘러, 야인시대에서 심영 역할을 맡게 됐다. 언제나처럼 조역이었다. "57회 즈음부터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땐 제대로 된 대사라 해봐야 '이보시오 정동무(정진영), 그 악랄한 반동(김두한)을 왜 아직도 처치 못했단 말이오' 정도였어요. 뭐 언제나처럼 그러다 말 배역이려니 했죠."

출처: 디시인사이드 합성필수갤러리 캡처
'야인시대' 중 심영 역할을 맡아 등장한 김씨.

그러던 어느 날, 감독(故 장형일 SBS PD)이 김씨에게 책 두 권을 건넸다. 64~65화 대본이었다. "갑자기 이 두 화에서 제가 주연급으로 등장하는데다, 65화에선 아예 첫 장면부터 나오는 거예요. 너무 부담스럽고 걱정돼, 세트장 부근에 여관방을 잡고 한 주 내내 연기 연습만 했어요."


이 와중에 문제의 '고자라니' 대사를 발견했다. "처음엔 감독님께 고쳐달라 사정하고 싶었어요. 교육자(교사)이신 아버지 체면도 있고, 저부터가 쉰을 넘기고 딸까지 있는데 너무 민망해서요. 하지만 장 감독님이 장면 대사 하나하나에 얼마나 애착이 많은 분인지 아니,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그렇게 김씨는 한국 인터넷사에 길이 남을 연기를 하게 됐다.


연예인의 마음가짐


인터넷 유명인이 된 건 뒤늦게 알았다. "2010년 즈음이던가, 보험설계사 아주머니가 선생님 유명인 됐다고 말해줘서 봤어요. 솔직히 한때는 법적 조치까지 생각했어요. 하필이면 처음에 봤던 게시물이 '고자 개X끼' 운운하는 것이어서요. 물론 그것 말고도 합성물이 많았는데, 모욕스럽기도 하고 창피한 면도 있고 그랬죠."


하지만 동료 배우들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 한다. "얼굴이 팔리는 건 연예인의 본분인데다, 어떤 식으로건 사람들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건 배우로서 반길 일이라 하더군요. 찬찬히 보니 합성하는 분들도 제가 싫어서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건 아닌 듯하고요. 고자 선생님, 고자 아저씨 정도까진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


이후론 도리어 심영 컨셉을 내세워 방송에 여럿 출연했다. tvN 드라마 '푸른거탑' 2기 36화에서 총기 오발사고로 고자가 되는 부사단장 심대령 역할을 맡았고, 최근엔 약초 상품 '데일리허브' 광고에서 성 기능을 되찾은 심영 연기를 했다. "대표작 하나 없는 단역배우를 사람들이 여태껏 기억해 주는 건 순전 그 연기 덕분이니까요. 물론 부끄러울 때가 없진 않았지만, 결국엔 애착이 가더라고요."

출처: 김영인씨 제공
실제 김영인씨가 사용 중인 명함.

인생, 조연이라도 좋다


현재 김씨는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배우 시절이던 1992년부터 투잡으로 쭉 해오던 일이었다. "조연 봉급만으론 6남매 장남 노릇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회사는 작아요. 간신히 밥숟가락이나 뜰 정도로 벌고 있어요. 가끔 가다 천만원대 토목공사 수주 하나씩 받는 정도로요. 팔자 탓인지, 배우도 사업도 단역 신세네요."


그럼에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한다. "주인공 못 단 배우라고 다 불행한 게 아니듯, 인생 또한 주인공이 돼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원하던 배우 일을 하다 한 번은 유명해졌고, 사업을 조그맣게나마 흔들림 없이 지켜왔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러울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았다 생각합니다. 전, 무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출처: 김영인씨 제공
현재 김씨가 배우로 참여 중인 영화 '이끼새' 촬영 현장. 김씨는 여기서도 공산당 간부를 맡았다.

배우 활동도 여전히 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연기만큼은 생이 다할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 한다. "나이가 드니 찾아 주는 분이 별로 없긴 해요. 요새 드라마나 영화가 젊은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편이어서 그런 것도 같지만요. 외국에선 작품 완성도를 높이려 경험 많은 노인 배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늙은 배우의 욕심이지만요."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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