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스웨그' 책임지는 18개월 아들 둔 그녀의 직업은?

조회수 2020. 9. 24. 01: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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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만개 넘게 팔리는 남자화장품 '스웨거'..대표는 美명문 출신 워킹맘
남자화장품 '스웨거' 추혜인 대표
디자인 명문 美 '리즈디' 출신

스웨거(SWAGGER)는 국내 남자화장품 시장을 개척한 대표 브랜드로 꼽힌다. 스웨거의 ‘스웨그’(swag)는 힙합 용어로 래퍼가 자신의 멋이나 여유를 허세 부리면서 표현하는 것을 가리킨다. 자기가 가진 것을 마음껏 뽐내면서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헤어왁스·스프레이부터 샤워젤, 세안제, 샴푸, 스킨·로션에 이르기까지 20가지 넘는 남성용 제품을 만든다. 지금이야 수십 종의 남성 화장품이 매장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6년 전 스웨거가 처음 제품을 출시했을 때만 해도 남자 화장품 코너가 따로 마련된 곳은 찾기 어려웠다.


스웨거 화장품은 한 달 평균 5만~6만개가 팔린다. 누적 판매량은 110만 개에 달한다. 미국, 중국·홍콩, 싱가포르, 호주, 말레이시아에 진출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25억원 정도. 직원 수는 12명이다. 추혜인(34) 스웨거 대표를 만나 여자가 남자화장품을 만들게 된 사연을 들었다. 

남성화장품 브랜드 스웨거의 추혜인 대표

명문 디자인스쿨 출신 CEO


스웨거 사무실은 홍대 거리에 있다. 추 대표는 스냅백을 쓰고, 헐렁한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 차림의 자유분방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용하고 차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옷차림도 평범했다. 그는 18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이다. “학창 시절 힙합을 많이 들었어요. 스웨그라는 것이 옷이나 패션에서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멋지고 쿨한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진정한 ‘스웨그’가 아닐까요.”


추 대표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스쿨로 평가받는 미국 ‘로즈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리즈디)’ 출신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중·고등학교는 영국에서 보냈다. 미술과 디자인 교육에 강점이 있는 학교였다. 영국에서는 지독한 인종차별을 당했다. 학교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그를 친구들은 무시하고, 따돌렸다. 침 뱉는 사람도 있었다. 대들거나 싸울 만큼 드센 성격이 아니었다. 울거나 참거나 둘 중 하나였다. 유일한 해방구는 그림이었다. 인물화와 추상화를 마음껏 그렸다. “미국에서의 대학 생활은 너무 좋았어요. 인종차별도 없었고, 전 세계에서 모인 다재다능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극도 많이 받았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어요.” 

출처: 추혜인 대표 제공
워킹맘인 추혜인 대표. 오른쪽 사진은 힙합에 심취해있던 20대 시절의 모습.

스웨거의 모태는 미술학원


2005년 대학 졸업 후 귀국했다. 유명 설치미술가인 서도호 작가 밑에서 1년 반 정도 일했다. 이후에는 삼성전자, 리서치 회사 엠브레인 등에서 프리랜서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스타트업에서도 짧게 일했다. 스웨거의 모태는 미술학원이다. 2009년 서울 방화동에 미술학원을 차렸다. 미술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유학 정보를 제공하는 학원으로 특화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강생은 거의 없었다. 학원에 오는 건 초등학생들뿐이었다. “사실 학원을 연 것은 돈을 벌면서 제가 하고 싶은 미술 작업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였는데, 예상은 완전 빗나갔죠. 초등학생 몇 명 오는 것으로는 도저히 운영이 안됐어요.”


문 닫는 사태를 막아보려고 시작한 가욋일이 제품 패키징 디자인이나 브랜딩 작업이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오리온, CJ,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들과도 여러 번 일했다. 새로운 제품의 포장이나 매대 디자인, 포스터 디자인, 브랜드 컨셉 등을 맡았다. 능력을 인정받아 일이 끊이지 않았다. 직원 수는 2년여 만에 6명이 됐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박봉’이었다. 수개월씩 진행한 프로젝트도 수임료가 수백만원에 불과했다. 직원들이 지쳐갔다. “돈 걱정 없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일한 기업들 중 중소 화장품 업체들이 많았어요. 화장품 용기 선정부터 브랜딩, 패키징 디자인, 내용물 선정까지 폭넓게 관여했죠. 화장품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출처: 추 대표 제공
추 대표의 작품(왼쪽)과 추 대표의 영국 유학시절

YG, 김범수 의장 등 20억원 넘게 투자


남성 전용 화장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자 화장품에 비해 경쟁이 훨씬 덜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화장품 내용물은 전문 업체가 만들고 전문 분야인 디자인과 마케팅에 집중했다. 2011년 9월 첫 제품 ‘스웨거 남성 샤워젤’을 출시했다. 홍보를 하지 않고도 한 소셜커머스를 통해 3주 만에 1000개 넘게 팔렸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샤워젤을 시작으로 헤어 왁스·스프레이, 스킨·로션 등 남성용 제품을 꾸준히 내놨다. 노력 끝에 올리브영과 이마트, 세븐일레븐 편의점 등에 입점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YG엔터테인먼트 등으로부터 20억원 넘게 투자도 받았다. 미국 아마존, 중국 왓슨스, 홍콩 사사 등과도 입점 계약을 맺었다. 내년에는 여자화장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출처: 스웨거 제공
스웨거 제품들

어려움도 많았다. 유통 구조, 비전문가가 화장품 사업을 처음 하면서 비롯된 시행착오 등의 문제였다. “화장품은 만든지 6개월을 넘지 않아야 ‘신선한’ 제품으로 취급됩니다. 그런데 화장품 생산 최소 수량이 보통 5000개가 넘습니다. 6개월 안에 이걸 다 팔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걸 맞추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남으면 다 버려야 하니까요. 또 남자화장품은 보통 오프라인 매출이 온라인보다 훨씬 큰데, 매장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에서 가져가는 수수료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제품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은 아주 적어요.”


제품은 한 달에만 수만 개씩 팔리는데, 돈은 쌓이지 않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떠올렸다. 스웨거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곳에서 몇 차례 투자를 받으면서 위기를 넘겼다. 모르는 분야에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들어 직접 부딪치면서 맷집을 키웠다. 이제는 유통이나 제품 생산에 제법 노하우가 쌓였다.


“학창시절만 해도 제가 남자화장품 회사 CEO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림 그리는 작가가 될 거라고만 생각했죠. 인생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긍정적이고 흥미롭게 받아들이면서 멋지고 쿨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진정한 스웨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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