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못하게 된 간호사..테니스 선수 거쳐 공무원 됐다

조회수 2020. 9. 24. 01: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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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 테니스 선수→공무원.. 서른살 그녀는 '덤'으로 얻은 인생

"덤으로 얻은 인생, 더 열심히 살겁니다. 육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있어도 마음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으니까요."


충북 충주시 주덕읍사무소에서 일하는 최나영(30) 주무관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만 2년된 '새내기'다. 주덕읍사무소 주민복지팀에서 주민등록등본 등 민원인이 요청하는 서류를 떼주는 업무를 맡았다.

출처: 최 주무관 제공
최나영 주무관

여느 읍·면·동사무소(주민센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공무원이지만, 다른 공무원과 다른 점은 휠체어를 탄다는 것이다. 사실 원래 그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백의의 천사'로 아픈 사람을 돌보던 그는 왜 휠체어를 탄 공무원이 됐을까.


불의의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되다


200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최 주무관은 경북 문경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취업했다. 새내기 간호사로 정신 없이 일하던 중 그가 돌보던 환자의 '도발'에 말려 산악자전거(MTB)를 취미로 갖게 됐다.

출처: 최 주무관 제공
최 주무관의 '나이팅게일 선서식' 때(좌), MTB를 취미로 즐기던 시절(우)

"환자 한분이 주말에 자전거 대회를 나간다는 얘길하면서 '최 선생, 나보다 자전거 잘 탈 수 있나'고 하셨어요. 저야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내기에 응했는데, 지고 말았죠. 오기가 생겨 시간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다보니 취미로 MTB를 하게 됐습니다."


운동을 곧잘 하던 그의 자전거 타기 실력은 금방 늘었고, 2009년 8월 처음으로 나간 MTB 대회에서 입상했다. 주위의 칭찬과 스스로 느낀 성취감에 페이스를 바짝 올려 그해 11월 또 다른 MTB 대회에 나갔다. 하지만 그 대회에서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별 생각없이 평소대로 자전거를 탔습니다. 1시간쯤 달렸을까요. 내리막길이 나와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그 뒤론 기억이 없습니다."


테니스로 건강과 자신감 찾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14시간 수술을 견뎠지만, 의사는 하반신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1년 5개월간 병원에서 치료와 재활에 시간을 보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다. "치료를 거부하고 병실에 누워 눈물만 흘리던 날도 많았습니다. 누구에게 폐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댓가가 겨우 이정도인가 싶기도 했고요."

출처: 최 주무관 제공
철심이 박혀 있는 최 주무관의 척추(좌), 최 주무관이 테니스를 치는 모습(중간), 첫 전국체전에서 상을 받는 모습(우)

집으로 돌아온 뒤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침대와 '한 몸'이 됐다. 대회에 나가자고 권유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만 커졌다. 이 무렵 병원에서 알게 된 언니가 휠체어 테니스를 같이 해보자고 했다. 답답하기도 했고, 이대로 있다간 아무것도 안되겠다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한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참가한 2011년 제3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장애인체전)에서 단체전 2위를 차지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장애인 테니스가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단체전이나 복식에서 한명만 잘해도 좋은 성적을 내기 쉽습니다. 잘하는 분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2012년 제32회 장애인체전에서 복식 3위, 2014년 대구오픈 단식 1위·복식2위, 천안오픈 복식 2위, 34회 전국장애인체전 단식·복식·단체전 3위 등 최 주무관은 장애인 테니스 분야에선 '무서운 신예'가 됐다.


공무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친구들의 취업소식, 결혼소식이 들려오니 마음이 심란했죠. 운동복 대신 예쁜 치마가 입고 싶어지기도 했고, 부모님이 더 늙기 전에 용돈도 드릴 수 있는 딸이 돼야겠다 싶더라고요."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돼 국가대표의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진로를 바꿨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인 전형은 일반 전형에 비해 경쟁이 덜 치열하지만, 허투루 준비할 수는 없었다.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일이 가장 고역이었죠. 한 자세로 오래있다보면 혈액 순환이 안돼 발이 퉁퉁 붓습니다. 정말 발등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2015년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그해 10월 충주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올해 7월 승진해 주덕읍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충주시청과 주덕읍사무소 동료들 모두 최 주무관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출처: 최 주무관, 충주시청 제공
최 주무관의 선배도 그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찾아간다(좌),충주시청 화장실 출입문과 세면대 높이가 최 주무관에 맞게 바뀐 모습(중간·오른쪽)

"처음 시청에서 일할 때 제가 있던 층의 화장실은 출입구가 좁아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 체전에 참여하러 간 사이에 화장실 출입문을 넓혀놓았더라고요. 게다가 모든 부서행사엔 제가 빠지지 않도록 동선이나 장소를 잡아줬습니다. 지금 읍사무소에선 읍장님이 제 보고를 받으러 직접 내려와주십니다. 읍장님은 위층에, 전 아래층에 있거든요."


최 주무관은 동료로부터 받은 배려를 주민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했다. "동료들로부터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 열심히 일해서 주민들이 필요로하는 것을 빠짐없이 잘 해결해드리는 게 동료로부터 받은 배려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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