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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 '지갑 열게 한' 에이즈 최고 전문 한국인

"완치는 어렵지만 적절하게 약을 먹으면 보통사람처럼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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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에 기부 이끌어낸 에이즈 전문가
월 15달러 후원 받던 아기, 대학교수로 성장
'꼴찌, 둔재'였지만 노력으로 극복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에이즈)는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병 중 하나다. 인체 면역력을 급격히 떨어뜨려 각종 질병에 대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치병이다. 그런데 이런 병을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조명환 건국대 생명과학 특성학과 교수다. "완치는 어렵지만 적절하게 약을 먹으면 보통사람처럼 살 수 있어요. 당뇨병, 고혈압 환자가 꾸준히 약을 먹는 것처럼요."


그는 에이즈 전문가다. 2005~2009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도 지냈다. 35세에 건국대 교수가 된 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10년 동안 생물학 겸임교수로 학생을 가르쳤다. 2006년에는 영국 국제인명센터 올해의 과학자에 이름을 올렸다. 교편만 잡은 것은 아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과 함께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바이오텍을 공동창업한 사업가다. 현재 국제의약품 구매기구(UNITAID) 평가 위원으로 활동하며 아시아 에이즈 환자를 돕는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UNITAID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기구다. 

조명환 건국대 생명과학 특성학과 교수

출처jobsN

아·태 에이즈 최고 전문가, 빌 게이츠에 기부 받아


-에이즈라는 질병보다 돈이 문제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약은 개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걸 실제로 생산하는 건 다른 문제더군요. 기업이 투자 해야 의약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데, 기업은 이윤에 따라 움직입니다. 대량생산을 못하면 약 값은 비싸질 수밖에 없죠. 에이즈 약도 마찬가지 입니다. 환자 한 명당 약값이 일년에 2000만~4000만원 듭니다.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 살수 없다면 그게 더 무서운 일입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학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일이 모금활동이었다고 말했다. "쉽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다는 빌 게이츠가 아시아 지역 에이즈 환자를 위해 기부한 돈이 한화 5억원 정도였죠." 20여명이 1년을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는 2009년, 아는 인맥을 모두 동원해 8개월간 물밑 작업을 해 빌 게이츠를 만나는데 8개월 걸렸다”고 했다. “어렵게 설득했어요. 하지만 기부금은 5억원에 그쳤죠. 아시아에만 에이즈 환자 500만명이 있습니다. 한두명에게 의존하는 기부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통 없는 후원금' 제도를 만들었다. 해외 항공권에 의무 기부금 1000원을 붙이자는 아이디어였다. 인천공항에서 LA로 향하는 항공료가 100만원이라면 승객은 100만 1000원을 내는 방식이다. 항공권연대기금이라고도 한다. 한국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등 8개국이 참여한다.


이 기금을 항공사가 자국 정부에 주면 정부가 UNITAID로 보낸다. 매년 국내에서만 200억원, 프랑스, 영국에서는 1400억, 800억원 정도가 걷힌다. 5년 동안 2조 2000억원이 모였다.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퇴치에 쓰인다. 연간 전 세계 100만명이 혜택을 받는다.   

조명환 교수가 40년 넘게 자신을 후원했던 미국인 '어머니' 에드나와 함께 찍은 사진(왼쪽), 그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 꼴찌박사(오른쪽).

출처조명환 교수 제공

월 15달러 후원 받던 아기, 대학교수로 성장


-구호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났어요. 북에서 내려온 부모님은 맨손이셨습니다. 그때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에드나 어머니께 매달 15달러씩 후원을 받았어요.” 그는 에드나 넬슨(Edna E. Nelsen)이라는 미국인 후원자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당시엔 얼마나 큰 돈인지 분유를 사면 동네 갓난 아이들이 다 먹을 수 있었다더군요. 후원이나 구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런 과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40년 넘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15달러를 보냈다. “제가 교수가 된 걸 아시면서도 계속 보내주셨습니다. '어머니 이번 달엔 보내주신 돈으로 출근길에 빵을 사먹었습니다'라고 하면 '잘했다'며 좋아하셨죠."


-에이즈는 어떻게 공부하게 됐습니까

"고등학교때 문과생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성적이 안 됐습니다. 그때 제일 취직 안되던 학과가 미생물공학과였어요. 경쟁률이 1대 1 수준이라고 해서 공대에 들어갔죠." 입학 초기 그의 성적표는 'D' 학점 천지였다. 하지만 노력으로 극복했다. "하루 4시간 이상은 자본 적이 없어요, 적어도 책상 앞에 앉으면 8시간은 붙어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대학원을 골라서 갈 수 있을만큼 성적을 끌어올렸다. 미국 유학길을 택했지만, 미국에서 그를 받아주는 대학은 없었다. "딱 한 분이 저를 지도해보겠다고 하셨어요. 그분이 에이즈를 연구하셨죠." 

국제의약품 구매기구(UNITAID) 홈페이지 일부.

출처UNITAID 홈페이지

'꼴찌, 둔재'였지만 노력으로 극복


1998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정진 현 셀트리온 회장과 넥솔바이오텍을 설립했다. “'백신 사업을 해보자, 미국에서 개발한 신약을 우리가 들여와 대량생산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충분히 사업성 있다고 봤죠.” 하지만 이 사업은 빛을 보지 못했다. 거래하던 미국 백신회사 벡스젠이 신약 개발을 포기하며 사업이 기울었다.


"벡스젠은 세계 최초로 에이즈 백신 임상실험 2단계를 통과한 곳입니다. 백신 개발에 2조원이나 투자했을만큼 규모도 크고요. 하지만 백신을 개발하더라도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조 교수는 사업으로 돈을 벌지는 못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서정진 회장은 사업을 계속했다. "서 회장이 어렵게 사업을 이어가며 투자 받아 세운 기업이 셀트리온입니다." 셀트리온은 한국 바이오시밀러(항체의약품 복제약) 분야의 개척자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셀트리온은 최근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을 준비 중이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아이디어를 어떻게 사업화할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사업이 번창하는 곳에서 기술도 발전합니다. 학생들이 과학자가 되든 사업가가 되든 그래야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무엇을 할 때 항상 꼴찌로 시작했어요. 가난했고, 머리도 나빴죠. 하지만 공부든, 구호사업이든 최선을 다했더니 이자리까지 왔습니다. 결과가 좋고 나쁜 건 나중 문제라고 봅니다. 한 눈 팔지 않고 목표를 향해 걸어간다면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기회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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