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세계 1위' 주인공의 반전 직업

조회수 2020. 9. 24. 01: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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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요리집 주방장→간호사→머슬마니아 세계 챔피언까지 오른 이 남자는?
세계 머슬마니아 클래식 초대 챔피언, 허윤
간호사에 반해 간호학과 재입학
목표는 "건강을 챙기며 운동할 수 있게 돕는 것"

“2016 라스베이거스 세계 머슬마니아 대회 클래식 부문 우승자는....허윤!”


우승자 이름을 부르자 무대 위 다섯 명의 선수 중 키가 가장 작은 동양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트로피를 받은 그는 관객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근육 세계 1위를 한 주인공은 간호사 보디빌더로 유명한 허윤(41).


머슬마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보디빌딩&피스니스 대회. 내로라하는 전 세계 보디빌더들이 출전한다. 허윤은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하는 근육을 평가하는 클래식 부문 초대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보디빌더이자 간호사다.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직업으로 각종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간호사 보디빌더라는 별명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이제 그냥 허윤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머슬마니아 대회 직전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건 헬스장(1:1개인 훈련)을 운영한다.

출처: 허씨 제공
2016 라스베이거스 세계 머슬마니아 출전 모습

역도선수 그만두고 중국집 주방장으로


처음 시작한 건 보디빌딩이 아닌 역도였다. 중학교 때, 역도 감독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역도부에 들어갔다. 50kg짜리 역기를 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경기도체전 금메달은 항상 허윤의 차지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역도를 그만뒀다.


-왜 그만뒀나요.

“한국체육대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모자랐습니다. 메달만 많이 땄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운동 다음으로 좋아하던 요리를 택했습니다. 강원관광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렇다고 운동을 그만둔 건 아니었습니다. 그때 처음 보디빌딩을 접했습니다.”


-그게 언제였나요.

“20살 때예요. 입학하자마자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저를 본 강원도 보디빌딩협회 심판위원장님이 시합에 나가자고 설득하셨습니다. 3개월 연습하고 강원도민체전에 출전했어요. 20여 명이 출전한 70kg급 대회에서 1등 했습니다. 그때부터 보디빌딩에 빠졌죠.”


간호사 되기 위해 간호학과 재입학

보디빌딩을 위해 운동을 계속했다. 전국 대회 우승도 수차례 했다. 보디빌딩도 좋았지만 요리를 그만둘 수 없었다. 웍(wok·중화요리용 팬)과 불을 다루는 일이 좋았다. 2003년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다. 2005년, 문득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허씨 제공
허윤 보디빌더

-그래서 간호학과에 재입학한 건가요.

“네, 당시 마음을 다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어요. 간호사를 하려면 하루빨리 공부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사는 곳이 의정부여서 근처에 있는 신흥대학교(현 신한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했죠.”


-공부가 어렵지 않았나요.

“어려웠죠. 운동과 요리만 하다가 해부학, 생리학 등을 공부하려니 힘들었습니다. 1~2학년 땐 보디빌딩대회도 병행해서 공부에 집중을 못 했어요. 그래서 3학년 때는 오직 간호사 국가시험에만 매달렸습니다. 하루에 4~5시간 하던 운동도 1시간으로 줄였습니다. 잠 3시간, 운동 1시간을 제외하고 공부만 했습니다.”


2008년 1월 시험을 봤다. 한 달뒤 홈페이지에서 합격자를 확인했다. “떨려서 모니터를 제대로 못 봤습니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한참 뒤에 보니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고 뜨더군요. 인생에서 가장 떨리고 짜릿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간호사 보디빌더' 별명을 얻다


2008년,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경기도 의료원 의정부 병원에 내과 병동에서 일을 시작했다. 큰 덩치 때문에 술에 취한 환자들이나 진상 환자는 허윤의 몫이었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상상했던 것과 같았나요.

“밖에서 보는 것과 현실은 너무 달랐습니다. 한 번에 여러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마음을 다한다는 게 쉽지 않았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못 하는 성격이라 혼나기도 많이 혼났습니다.”


-당시 보디빌딩 대회도 나갔나요.

“네,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2010년부터 광명시청 보디빌딩 실업팀 선수 및 주장으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수하면 병원 선배들은 어떤 게 더 중요하냐면서 꾸짖었습니다. 그때마다 이 악물고 두 가지 모두 포기하지 않으려 더 열심히 했어요.”


세계 보디빌딩 챔피언 허윤


내과 병동에서 3년을 채우고 2011년, 의정부 힐링스병원 정신과 병동으로 옮겼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더 큰 보람을 느꼈다. 3년 뒤에는 양주시 보건소 정신보건센터로 이직했다. 운동을 통해 정신치료를 하는 자원봉사도 다녔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그는 2013년 아시아선수권 보디빌딩 대회 출전 및 2016년 라스베이거스 세계 머슬마니아 대회 클래식 부문 챔피언에 올랐다.

출처: jobsN
허윤 보디빌더

“마흔 살이 되면서 은퇴를 준비했습니다. 마침 머슬마니아에서 클래식 부문을 신설했어요. 마지막으로 세계 1위를 하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왠지 모를 자신감도 있어서 출전을 결심했죠. 대회가 11월이었어요. 2016년 10월에 간호사를 그만두고 마지막 한 달간은 헬스장(1:1개인 훈련) 개업과 운동에만 집중했어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운동만 했다. 대회 5일 전부터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 몸에 있는 수분을 빼내는 작업이다. 몸에 수분이 없으면 근육 갈라진 것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보디빌딩과 클래식 부문에 출전했다. 보디빌딩은 2위, 클래식에선 초대 우승자란 결과를 냈다.


세계 1위로 보디빌더 생활을 마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것이다.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맛있는 음식, 여행 등을 절제했습니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이제 세계 1위가 아닌 온전히 저만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또 무리하게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닌 건강한 몸과 마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운동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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