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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10만원, 의사도 아닌데 시체더미 만지는 남자 직업은?

조회수 2020. 9. 24. 00: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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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살까지는 현장에 계속 나갈 생각이에요
경력 30년 특수분장사 홍기천
동의보감부터 뉴하트까지..의학 드라마 섭렵
"특수분장과 CG는 공존해야 한다"

‘메스’ 의사가 환자의 흉부를 가르리자 펄떡이는 심장이 그대로 드러난다. 꿈틀거리는 장기 위로 의사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혈관을 잘못 건드리자 심장에서 피가 솟구친다. 초록색 의사 가운은 순식간에 빨간 피로 덮인다.


두 손을 꽉 쥐게 만드는 위험한 상황. 하지만 알고 보면 긴장이 확 풀린다. 다행히 모든 건 수술용 더미(마네킹)로 연출된 장면이다. 생생한 장기와 피는 모두 한 사람 손에서 탄생했다. 바로 국내 유명 특수분장사 중 한 사람인 홍기천(59)씨다.

출처: jobsN
홍기천 특수 분장사

그는 3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동의보감’부터 ‘종합병원’ ‘닥터진’ ‘뉴하트’ 등 유명 의학 드라마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지난해 정년 퇴임 후 프랜서로 활동 중이다. 퇴임했지만 제법 수입이 좋다. 손기술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친 프랑스 영화 ’탱크’ 수당은 시간당 10만원이었다. 하루 작업시간은 8시간. 총 한 달동안 작업했다. 하지만 프리랜서라서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시골 촌놈 영화에 빠지다


중학생 때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 왔다. 친구가 없었다. 외로워서 많이 울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달래주려 영화관에 데려갔다. 처음 본 영화는 '대괴수 용가리'. 그때부터 영화와 특수분장에 빠졌다.


"영화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다가 영화 ‘제 5전선’을 보고 빠져들었죠. 주인공이 얼굴을 뜯어내자 그 안에 또 다른 얼굴이 있었어요. 특수분장을 통해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때는 의사가 꿈이었죠. 특수분장은 취미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집에 있는 미술도구와 누나 화장품으로 따라 하는 정도였어요.”


MBC 분장실 30살 늦깎이 신입


대학생 때 도예과를 전공했다. 의사의 꿈은 일찍 접었다. 의학을 공부하기엔 머리가 좋지 않았고 색약이기 때문이다. 졸업 후 아크릴 상패 만드는 가게를 차렸다. 어느 날 문득 더 늦기 전에 특수분장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영화인들이 자주 모인다는 충무로 다방으로 가 분장사를 찾았다.


"당시 유명했던 송일근 분장사를 만났습니다. 다짜고짜 분장사가 되고 싶다고 했죠. '하고 싶으면 영화 말고 방송국으로 가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1987년, MBC 미술센터 입사 시험을 봤습니다."


분장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혼자 연습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다. 가장 좋은 성적으로 MBC 미술센터에 입사했다. 입사 후 현장에서 하는 일은 분장 중인 배우들 땀을 닦거나 파우더 발라주는 것뿐이었다. 

출처: 홍씨 제공·방송화면 캡처
홍기천 특수분장사가 제작한 배우 이순재 더미와 실제 이순재

잡일을 하다가 본격적인 특수분장을 맡은 건 드라마 동의보감부터다. “유의태 역을 맡은 이순재 선생님 부검장면에 쓰일 더미(마네킹)를 제가 만들었죠. 20겹의 고무를 한 겹 한 겹 말려 45일 동안 만들었습니다. 처음이라 긴장도 했지만 결과물이 좋아서 뿌듯했어요."


방송국 특수분장사 채용과정은 옛날과 같다. 채용공고가 뜨면 서류전형-실기시험-면접을 거친다. 하지만 요즘은 채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국 관계자는 “현재 소속돼 있는 분장사로 충분하기도 하고, 인력이 더 필요할 때는 외주업체에서 충원한다”고 말했다.


특수분장 업체는 꾸준히 채용을 진행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포트폴리오로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보통 채용은 포트폴리오 평가-면접-합격으로 진행합니다. 이력이 없다면 먼저 학교나 사설 학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 후 현장에서 전문 특수분장사 보조역할을 하면서 실무 경력을 쌓는 것이 좋습니다. 경력에 따라 보수가 천차만별입니다. 신입의 경우는 월급이 150만원~180만원 선이에요.”


뉴하트, 종합병원, 닥터진..의학 드라마 섭렵


이후 드라마 ‘M’, ‘욕망의 불꽃’, ‘다모’ 등에 참여했다. 특히 MBC에서 방영한 대부분의 의학 드라마는 홍기천 특수분장사 손을 거쳤다. 의학 드라마에선 특수분장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양한 상처가 등장하고 수술 장면에 쓰이는 정교한 더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술용 더미는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다. 먼저 배우의 몸을 실리콘으로 본을 뜬다. 그 위에 석고 본드를 바르고 석고를 붓는다. 석고 틀을 완성하면 그 안을 다시 실리콘으로 채운다. 사람 모양 실리콘 덩어리가 굳으면 표면을 배우 피부색과 맞추고 마무리한다. 따로 만든 장기를 더미에 채워야 완성이다.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20일에서 한 달이 걸린다.

출처: 홍씨 제공
더미 제작 과정

이런 더미를 만들기 위해 해부학 공부는 기본이다. 홍기천 분장사는 병원에서 병문안 온 척 환자들의 상처를 관찰했다. 그럴 때면 종종 도둑으로 오해를 받았다. 또, 동의를 얻고 부검에 참관했다. 발품을 팔아 참여한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뉴하트라고 한다.


“수술 장면에 필요한 더미를 97개나 만들었습니다. 하루 20시간씩 일했죠. 게다가 더미를 다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촬영 때 피가 튀는 장면이 있다면 그 타이밍에 맞춰 에어건으로 피를 쏴 줘야 해요. 이런 효과도 하나하나 살펴야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습니다.


더욱 실감 나는 장면을 위해 사람 심장과 가장 비슷한 돼지 심장을 넣었어요. 그 밖에도 돼지 똥집, 오줌보, 창자 등을 조합해 사람의 장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완성한 더미로 수술 장명을 촬영했죠. 의사들은 이 장면을 실제 수술장면으로 착각하더군요.”


특수분장 CG와 공존 가능..목표는 후배양성


끝없는 노력으로 30년간 실력을 쌓았다. 지난해 홍기천 특수분장사는 드라마 ‘몬스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서 드라마 외에 호러쇼, 외국 영화 등에 참여 중이다. 경력 30년의 베테랑이지만 특수분장은 아직도 어렵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가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시간이 촉박할 때도 힘듭니다. 촬영 이틀 전에 연락이 오면 하루는 재료 구하는 데 쓰고, 나머지 하루 만에 작품을 만듭니다. 어렵지만 항상 도전하고 있어요. 한계를 시험하고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출처: 홍씨 제공
드라마 '욕망의 불꽃'을 위해 제작한 고래 모형. 영화에 쓰인 고릴라 모형

요즘 기술발달로 특수분장사들이 설 곳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CG 때문에 자리가 많이 줄긴 했지만 모든 효과를 CG로 작업하면 작품의 맛을 살릴 수가 없다”며 “CG와 특수분장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공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후배 양성이다. “70살까지는 현장에 계속 나갈 생각이에요. 이후엔 제가 30년 동안 터득한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습니다. 특수분장에 더 알맞은 재료를 알려주고 더 실감 나는 분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것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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