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보단.." 세브란스 파란눈 직원의 고민

조회수 2020. 9. 24. 00: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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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인입니다, 시작이 20년 늦었지만요"
우크라이나 출신 세브란스병원 직원 인나 체첼니즈카
“나는 한국인, 다른 사람보다 시작이 20년 늦었을 뿐”
이번 추석 연휴도 한국에서 보낼 예정

“골연부조직 암 전문클리닉은 바로 위층에 있는데요, 그쪽으로 가시면 멀고요, 요기로 돌아가시면 금방이에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고객안내센터에는 눈이 푸른 이방인 직원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인나 체첼니즈카(28)다. 본업은 우크라이나어와 영어, 러시아어권 환자 안내지만, 정작 인나가 맞이하는 손님 중 열에 아홉은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당황하거나 업무가 막히는 때가 없다. ‘뇌하수체’나 ‘골밀도’ 등 어려운 병원 용어도 모조리 알아듣고 안내할 정도로, 한국어에 능통하다.

출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제공
한국인 방문객을 안내하는 인나씨.

다른나라에서


혼혈이나 고려인 핏줄은 아니다. 순수 서구 혈통이다. 한국어는 키예프 외국어대에 합격해 배웠다. 하지만 한국어를 쓰는 데 전혀 거침이 없다. 인나씨는 “언어를 좋아하고 특히 동양어를 배우고 싶어 한국어과에 진학했는데,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고 했다.


한국어를 쉽게만 배운 건 아니었다 한다. “3학년 때 한국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는데, 그땐 리스닝 스피킹이 잘 안돼서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어요. 사실 한국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으니, 제 공부가 부족했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교환학생 기간 4개월 동안 겪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한다. “모르는 게 많고 한국어도 잘 못하니 헤매는 때가 잦았는데, 한국인 모두가 하나같이 절 따뜻하게 대해 줬어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나서 한국어 공부에 더욱 매달렸다. 1년 뒤 고려대 교환학생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때는 귀가 좀 열려서 서울 생활을 훨씬 편히 했어요. 돌아가기 아쉬울 정도로요. 이 즈음부터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모교에서 한국어 석사과정을 마친 뒤, 고려대 심리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2011년이였다. “심리학이 좋기도 했고, 수학엔 자신 없어서 숫자를 덜 쓰는 학과로 가고 싶었거든요.” 석사 학위를 받을 때쯤 한국에서 지낼 결심을 굳혔고, 2015년부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부모님도 한국에 머무르기로 한 인나씨 결정에 동의했다 한다. “부잣집은 아니다 보니 비행기 표 값 감당이 어려워, 부모님이 한국에 직접 와보실 기회가 딱 두 번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오래 보지 않아도 살기 좋은 나라인 걸 충분히 알겠다 하시더군요. 요즘 들어 우크라이나에 K-POP뿐 아니라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많이 알려지며 한국에 대한 인상 자체가 상당히 좋아진 것도 한몫했던 듯해요.”

출처: 인나씨 제공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병원 일에 익숙해지긴 쉽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어는 고사하고, 영어 매뉴얼도 없었다. 업무를 몽땅 한국어로 익혀야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어를 암만 많이 배워도, 의학 용어까지 가르쳐 주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뒤처지기 싫어서, 병원에서 쓰는 말은 물론 건물 위치 등을 보고 또 보며 외웠어요. 한국에서 쭉 살아갈 결심을 한 이상, 한국인 직원보다 못하면 곤란하니까요.”


처음엔 다른 직원보다 일 배우는 게 느렸다. 언어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인 방문객이 인나씨만 보면 몸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맞이하는 고객이 평균 100여명 정도 되는데, 그 중 90명 정도는 한국인이거든요. 다른 직원들이 90~100명 만날 때 전 외국인까지 합해봐야 30~40명씩만 안내했습니다. 일을 적게 하니 배우는 게 더딜 수밖에 없더군요.”


이를 극복하려 안내데스크 부근으로 오는 방문객에게 먼저 다가갔다. "먼저 ‘도와드릴까요’라면서 말을 건네니, 확실히 질문해 주시는 분들이 늘었어요. 2년간 꾸준히 말을 걸다 보니, 지금은 저를 먼저 알아봐 주시거나 찾는 분들도 있어요.”

출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제공

실수가 없던 건 아니었다. “뇌종양이나 뇌졸중처럼 발음이 비슷한 단어는 좀 헷갈릴 때도 있죠. 진료실 위치를 잘못 안내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스스로 ‘외국인이니 실수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세브란스 직원이 이런 실수를 하면 안 되지’라 생각했기 때문에, 같은 잘못을 반복하진 않았던 듯해요. 전 외국인이 아니라, 다른 한국인보다 시작이 20년 늦은 한국인일 뿐이니까요. 한국인 기준에서 생각하는 게 옳죠.”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업무 문화 차이도 극복해야했다. “우크라이나에선 직원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 싶으면, 바로 이렇게 고치라고 지적을 해 줘요. 그런데 한국에선 한참을 지켜보다 실수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더라고요. 제가 같은 잘못을 3개월간 똑같이 했는데 그대로 뒀던 적도 있어요. 마음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 듯한데, 차라리 실수를 빨리 지적받고 고쳤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도 직장 문화 적응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른 한국 직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긴 병원이라 그런지 회식도 잦지 않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아요. 업무 아닌 일로 스트레스받는 경우는 드문 편이에요.”


첩첩산중


오히려 직장보다 일상이 힘들 때도 있었다. 직접 부동산에서 자취방 계약을 할 만큼 한국어가 능숙하니, 생활 자체가 불편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향수병이 올 때가 있어요. 특히 1월 1일 즈음이 그래요. 한국은 음력설을 훨씬 중요하게 치지만, 우크라이나에선 양력 설날 때 온 가족이 모이거든요.”


TV를 보며 스트레스 풀기도 어려웠다. “한국은 예능은 상황극이나 몸 개그가 많은 듯한데, 우크라이나는 토크쇼 위주거든요. 한국 예능 보며 웃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해요.”


그럼에도 보다 한국에 젖어들고자, 이번 추석은 한국에서 보낼 계획이다. “충남 공주시에 있는 한국인 친구 집에서 명절을 지내기로 했어요. 이 기회에 한국을 한층 더 깊이 알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부모님을 뵙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한국에 쭉 살기로 한 건 제 결정이니, 다 감내해야죠.”

출처: 인나씨 제공
인나씨(왼쪽)가 한국인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생활의 발견


인나씨가 먼 나라에서 홀로 지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낯선 이들 사이에 섞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다. “외국인이 먼저 소통에 나서야 현지인이 마음을 열더군요. 직장 동료건 병원 방문객이건 말이죠. 외국인이 나서서 그들의 문화와 심리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음의 벽을 좀 걷어내는 듯해요.”


생활 면에서도 스스로가 나서서 현지인과 동화될 필요가 있다 했다. “시간 날 때면 한국인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고, 한국 음식을 먹어요. 한국 문화를 많이 알고 익숙해질수록, 저를 한국인처럼 여겨주는 분들이 많아지더군요. 요즘은 한국인도 외국에서 직장을 얻는 경우가 많다 들었는데, 현지 적응 차원에서 그 나라 태생 친구와 여행을 함께하는 걸 꼭 추천하고 싶어요.”


지난 2년간 이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고,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 보다 깊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한껏 노력할 예정이다. “한국을 안지 8년, 한국에서 지낸 지 불과 2년이에요. 사실 몸만 컸지, 한국인으로서는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죠. 하지만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배워,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인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마주하는 분들도 제가 훌륭한 한국인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 주시길 부탁합니다.”  

출처: 인나씨 제공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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