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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황산테러 피해여성, 아픔 딛고 찾은 직업

“겪은 적 없는 분이 어찌 저희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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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테러로 얼굴 비롯 신체 25% 화상
상담심리 공부 범죄 피해자 상담사 활동
남은 생 피해자 돕는 데 쓰길 원해

“겪은 적 없는 분이 어찌 저희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겠습니까.”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KCVC·이하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피해자 대부분은 센터 직원이 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할 리 없다 생각한다. 평범히 살아온 사람은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녹는 범죄 피해 고통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이 마음을 다해 건네는 위로마저 겉치레 동정으로 여기는 이도 적잖다 한다.


하지만 상담직원 박선영(35)씨는 예외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그를 위로하는 말을 건낼 때도 많다. 상담 기술이 남다르거나 말솜씨가 탁월해서가 아니다. 박씨 또한 마음뿐 아니라 얼굴과 몸에까지도 지우지 못할 상처가 뚜렷이 남은, 강력범죄 피해자기 때문이다.

출처박선영씨 제공

괴로웠던 시간


2009년 6월 8일 오전 6시쯤, 경기 성남시 한 주택가 골목 사이에서 나타난 괴한이 출근 중이던 박씨 얼굴 오른쪽에 공업용 황산 800mL를 끼얹었다. 계획된 테러였다. 박씨는 2년 전 다니던 IT 회사를 그만두며 밀린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하고 있었다. 그 회사 대표가 앙심을 품고 직원을 시켜 상처를 입힌 것이다. 박씨는 얼굴과 두피, 팔 등 신체 표면 2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 이식을 스무 번 넘게 받았지만, 흉터를 모두 지울 순 없었다. 녹아내린 오른쪽 귀도 다시 찾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눈꺼풀이 굳어 밤에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잠들려면 젖은 솜을 눈가에 덮어 빛을 가려야만 했다. 오른편 입술이 말려 올라가 웃는 표정이 어색했다. 피부가 당겨 목을 젖힐 수도 없었다. 이듬해 대법원이 테러를 지시한 대표에게 15년 형을 선고했지만, 위로가 될 순 없었다.

당시 박선영씨 사건 관련 기사.

병원 가는 날 외엔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수술을 거듭 받아 눈꺼풀은 닫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잠들긴 어려웠다. 누군가가 공격해 오는 악몽이 매일 밤 박씨를 괴롭혔다. 방에 홀로 남으면 괴한이 덮쳐올 것만 같아 누워도 불안했다. 타인이 말을 걸어올 때마다 두려움, 분노, 공포, 적대감, 슬픔이 북받치며 울음이 터졌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르던 강아지 외엔, 누구도 편히 마주할 수 없었다 한다.


다시 일어서다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오던 중, 막 닫히려던 엘리베이터에 누군가가 뛰쳐 들어왔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예전에 황산을 뿌렸던 남자가 떠올라, 온몸이 얼어붙어 한동안 웅크린 채로 엘리베이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서러움이 솟았다. “우리에 갇힌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문 모른 채 사냥꾼에게 붙들려 와, 사람 손목만 어른거려도 숨이 가빠오는, 그런 짐승이요. 억울했어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세상을 겁내며 살아야 하는지.”


죄 없이 죄인처럼 살기 싫었다. 용기를 내 한국범죄피해자센터를 찾았다. 그간 쭉 상담을 권해왔지만, 낯선 이를 만나고 싶지 않아 피하던 곳이었다. 폭발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박씨에게, 상담사는 영화를 권했다. “슬플 때면 비극을 보고 울며 통곡하며 고인 감정을 한껏 비워내고, 공포가 밀려올 때면 무서운 영화를 보며 개운하게 놀라고 털어 버리라 했어요.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이 찌꺼기조차 남지 않게, 차오를 때마다 밀어내라는 거죠.” 감정이 고일 때마다 영화를 보고 쏟아내길 반복했다. 마음이 비워질 때면 즐겨 보던 예능을 다시 찾아, 도로 웃음을 찾아오는 노력도 했다. 어느덧 눈물 없이 가족을 보고, 통곡 없이 사람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피해자에서 상담자로


편히 거울을 볼 수 있게 됐을 즈음 대학에 편입했다. 2010년 무렵이었다. 본디 전공했던 컴퓨터와는 전혀 무관한, 상담심리 분야였다. “다시 태어났다 치고,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해 봤어요. 그때 떠오른 게 어릴 적 꿈이었던 경찰이었어요. 직접 경찰이 되긴 어렵겠지만, 상담심리를 배우면 아무튼 범죄 피해자 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대학을 마치고, 2013년 8월 한국범죄피해자센터 공채에 응시해 합격했다. 박씨가 상담을 받고 마음을 추스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센터에 따르면 박씨는 올해 들어 전화와 대면을 통틀어 상담 1500건 정도를 처리했다 한다. 같은 기간 박씨가 일하는 센터 중앙지점(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재) 접수 범죄 피해자 상담 요청 건수는 2000건 이상이었다. 박씨가 넷 중 셋 정도는 맡은 셈이다.


“설마 제가 다른 전문가 분들보다 상담을 잘하겠나요. 하지만 범죄 피해자 티가 확연히 나다 보니, 유달리 제겐 쉽게 마음을 열어 주시는 피해자 분들이 많았어요. 되려 그분들이 저를 위로해주시는 때도 잦았고요.” 상담심리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느라 잠시 일을 그만두기도 했지만, 지난해 4월 복직한 이후로는 다시 쭉 상담 업무를 해오고 있다. 

출처박선영씨 제공

아픔은 극복하는 게 아니다


세수할 때면 손끝에 닿는 얼굴 오른편 피부가 까슬하다. 아직도 웃음 지을 때면 입술 오른쪽이 살짝 당겨온다. 팔에 남은 화상 자국 때문에, 한여름 날에도 토시로 살을 덮어야 한다. 그럼에도 박씨는 지금 삶이 사고 전보다 낫다 말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하다가, 그만두고 돈벌이 되는 쪽으로 전공을 틀었어요. 하지만 사고를 당하고 난 뒤 되려 어릴 적 꿈을 향해 다가갈 기회를 얻었어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 또한 적지 않아요.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요.”


물론 고통을 다 극복해낸 건 아니라 한다. “이젠 제가 일상생활을 멀쩡히 하니 아픔을 완전히 이겨냈다 여기는 분도 있는데, 사실 그렇진 않아요. 누구건 범죄 피해 고통을 100% 잊을 순 없어요. 다만 가슴 한편에 묻어 두고, 애써 모른 척하며 지낼 뿐이죠.”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다른 범죄 피해자에게도 극복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나아가시는 분들께 잘하고 있다며 응원을 보낼 뿐, 이겨내야죠 극복해야죠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아요.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잘 아는 걸요.”


대신 범죄에 육신과 영혼이 패여 상처가 남았더라도, 마음먹기 따라 앞으로 삶은 오히려 예전보다 나아질 수도 있다 강조한다. “평범히 살았으면 몰랐을, 인간의 아름다운 면을 보았어요. 성형외과 원장님이 무료 치료를 해 주겠다며 나섰던 것이라던가, 옛날에 다녔던 직장에서 성금을 모아주고 일자리까지 제의했던 일 등등이요. 세상이 따뜻하고 살 만한 곳임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제 인생이 사고 전보다 한층 더 발전했다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대는 언제나 아름다운 사람


박씨는 살아 있는 동안엔 범죄 피해자 돕기를 멈추지 않을 거라 한다. “센터에서 쭉 일할 계획이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게 된다 해도 인생 큰 줄기는 쭉 범죄 피해자를 돕는 방향으로 둘 생각이에요. 내가 나쁘고 죄진 사람이라 범죄에 노출된 게 아니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미쳐버렸기 때문에 범죄를 당하고서 감정 제어가 안 되는 게 아님을 알려 주고 싶어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혼자 힘으로 깨닫긴 어렵거든요. 그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인생이 끝나기는커녕 앞으로 생애가 훨씬 나아질 수도 있음을, 먼저 겪은 이로서 말해 주고 싶어요.”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


범죄피해자보호법에 근거해 2003년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살인·성폭력·방화·절도 등 강력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을 돕는다. 심리 상담과 금전적 지원을 주로 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경북 김천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현재 전국 58곳에서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상담 전화는 1577-1295.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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