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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인하대 앞 옥탑방→10년만에 30억 대박

조회수 2020. 9. 23. 10: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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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유괴단'이라는 이름의 회사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일까
최근 급부상 광고제작사 ‘돌고래유괴단’
회사라기 보단 6명의 ‘팀’
지금은 광고 작업하지만 최종목표는 ‘영화’

‘돌고래유괴단’은 최근 급부상한 광고 제작사다. 제품이나 서비스 본연의 가치를 부각하면서도 유쾌하게 클리셰(구태의연하고 전형적인 틀)를 전복시키는 영상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2015~2017년 캐논, 옥션, 유니클로 광고 등으로 주목받았다.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수십만명이 돌고래유괴단이 만든 광고 영상을 공유했다. 기업 광고임에도 이례적으로 1000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브 게시물도 있다. 돌고래유괴단이 지금까지 만든 광고 영상은 총 50개 브랜드로 조회수 합계가 5000만이 넘는다. 

돌고래유괴단은 회사라기 보다는 같은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인 ‘팀’이다. 팀원은 6명. 4명은 감독, 2명은 PD다. 감독은 광고 컨셉을 잡고, 연출을 한다. PD는 영상 제작에 필요한 실무를 맡는다.


광고 의뢰가 들어오면 4명의 감독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컨셉 아이디어를 낸다. 이 중 광고주가 채택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그 광고를 감독한다. 다른 팀원들은 영상 편집 등 광고 제작에 필요한 다른 일을 하며 돕는다. 지난해 20개의 광고를 찍었다.


돌고래유괴단 대표이자 감독인 신우석(35)씨는 “올해도 20개 정도의 광고를 제작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인력으로는 연간 20개 이상 제작하기 어려워서 밀려드는 광고 제작 요청을 다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름부터 특이한 이 광고 제작사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을까. 

돌고래유괴단 멤버들

영화가 좋아서 모인 ‘팀’


돌고래유괴단은 2007년 신 대표가 꾸렸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친구와 지인을 불러모은 일종의 사(私)조직이었다. 처음에는 10명이었다가 6개월 뒤, 영화 판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사람 6명이 남았다.


돈도, 인맥도 없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동영상 사이트에 꾸준히 올리면 저절로 소문이 나 잘될거라 믿었다. 6명은 월세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아무 연고도 없는 인천 인하대 근처 옥탑방에 들어가 합숙하며 영상을 만들었다.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대표

“단편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유튜브를 비롯해 엠군, Mncast, 판도라TV 등의 동영상 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죠. 영상 콘텐츠가 쏟아졌지만,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어요. 저희가 괜찮은 작품을 동영상 플랫폼에 올리면 승산이 있을거라고 봤어요. 영화제작사를 차리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고, 투자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겠다는 생각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던거죠.”


기대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도, 화려한 장치도 없는 영상을 관심있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합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활비가 떨어졌다. 계속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2008년부터 생계를 위해 기업체 홍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겨우 월세 내고, 먹고 살 정도로 벌었다. 팀의 방향성에 이견이 있는 멤버 2명이 떠났다. 위기였다. 신 대표는 2008년 말 승부수를 던졌다. 돈이 더 들더라도 서울에 돌아가기로 했다. 

출처: 돌고래유괴단 제공
촬영 현장에서

“인천에서 일하는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어차피 벼랑 끝이고, 여기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팀이 좌초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청년 창업가에 대한 서울시 지원을 받아 옛 마포구청사에 사무 공간을 마련했다. 서울에 자리잡으면서부터는 광고업계에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KT 등 꽤 큰 회사들의 광고를 맡았다. 2009~2012년 한 해 평균 5개 정도의 광고를 만들었다. 광고 영상 한 편을 만드는데 보통 3~4주가 걸렸다. 편당 최대 4000만~5000만원 정도를 받았다. 제작비, 월세 등을 빼면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출처: 돌고래유괴단 제공
이서진·유병재(왼쪽), 안정환과 함께 광고 촬영 중인 신우석 대표

신 대표는 서울로 사무실을 옮길 때 팀원들에게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책임지고 월급을 꼬박꼬박 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려면 돈을 빌려야했다.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제가 경제적인 부분을 보장해주지 못했다면, 돌고래유괴단은 유지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생활을 해야하는데 꿈만 좇을 수는 없으니까요.”


많이 벌지 못하는데도 팀원들에게 월급을 챙겨주다보니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신 대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자신은 따로 월급을 가져가지 않았다. 회사가 아슬아슬하게 존폐(存廢)의 줄타기를 할 때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 ‘종착지는 영화’라는 신념이었다. 

2013 팜스프링스 국제 단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맨 오른쪽이 신우석 대표

돌고래유괴단은 지금까지 7편 가량의 영화를 찍었다. 돌고래유괴단의 작품들은 북미 최대 단편영화제인 ‘팜스프링스 인터내셔널 숏페스트’, 아시아 최대 단편영화제인 ‘쇼트쇼츠 국제단편영화제’, ‘뉴욕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 영화제’ 등 지금까지 총 10여개의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캐논 광고로 유명세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2015년 캐논 광고를 맡았을 때부터다. 인기 방송인 최현석 셰프를 모델로 세웠다. 여러가지 광고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최 셰프가 고요한 밀림에서 야생 곰 사진을 찍다가 곰의 습격을 받아 죽는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의 영상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2016년에는 축구선수 출신의 방송인 안정환도 같은 컨셉의 캐논 광고를 찍었다. 안정환이 도망가는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축구공을 찼는데, 뒤쫓던 경찰을 맞추는 바람에 공무집행 방해죄로 경찰서에 끌려간다는 내용의 광고도 인기를 끌었다. 캐논 광고 시리즈 중에는 유튜브에서 1000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도 있다. 기업 광고 영상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저희 팀은 기존 광고에 염증을 느껴서 우리 방식대로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세상에 없던 광고를 내놔야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야생에서 사진 찍다가 죽는다는 컨셉도 사실 익숙한 카메라 광고의 클리셰를 뒤집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어요. 보통 카메라 광고를 보면 너무 진지하고, 거룩하죠. 생동감있는 자연의 모습을 담는다는 컨셉으로 현실감없이 광고가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싫었고,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출처: 돌고래유괴단 제공
왼쪽 사진은 2012년 단편영화 '부랑자' 촬영 현장. 비니를 쓴 사람이 신 대표. 오른쪽 사진은 2008년 첫 광고를 촬영할 때다

캐논 광고로 유명세를 타면서 광고 제작 요청이 급증했다. 처음 캐논 광고를 맡은 2015년에는 평년보다 2배 가량 늘어난 10편의 광고를 만들었다. 2016년에는 20편으로 늘었다. 현재 돌고래유괴단은 6편의 광고를 제작하고 있고, 올해도 총 20편 가량의 광고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이상 20편 넘게 광고를 만들기는 어렵다.


신 대표는 “광고로 돈을 더 벌고, 사업을 확장하려면 당연히 직원 수를 늘려야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퀄리티 있는 영상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며 “당분간은 직원 수를 더 늘리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졸 출신으로 성공


영화 제작사이면서 광고 제작사인 돌고래유괴단 팀원 6명 중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신 대표는 고졸이다. 따로 교육 받지 않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편집술을 익혔다.


학창시절 소설가를 꿈꿨던 신 대표는 고3때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고 영화의 매력에 빠져 진로를 정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실전에서 부딪히며 배웠다.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집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대학에 가지 않은 건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영화나 소설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출처: 돌고래유괴단 제공
촬영 현장에서의 신 대표

미련해보여도 최종 목표는 ‘영화’


돌고래유괴단은 광고 제작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신 대표는 영화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광고는 전업(專業) 영화 제작사라는 목표를 위한 과정일 뿐이다.


돌고래유괴단의 올해 예상 매출은 30억원 이상이다. 재정적으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오면, 신 대표는 영화 제작에 집중할 계획이다.


“저희 팀이 영화를 목표로 달려왔지만, 광고 제작을 많이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팀원들도 생겼어요. 돌고래유괴단이 광고 제작에 아예 손 떼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여건만 된다면 영화를 할 생각입니다. 3~4년 안에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팀원들 중에는 광고를 계속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텐데, 조직이 조금 더 커지면 영화·광고로 사업 분야를 나눌 생각입니다.”

출처: 돌고래유괴단 제공
촬영 현장에서의 신 대표

신 대표에게 영감을 준 영화감독은 왕가위를 비롯해 데이빗 핀처와 리들리 스콧이 있다. 핀처와 스콧은 신 대표처럼 광고 제작자 출신이다. 핀처의 작품 중에서는 ‘세븐’과 ‘파이트클럽’, 스콧의 작품 중에선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 등을 좋아한다.


국내 감독 중에서는 봉준호 감독을 첫 번째로 꼽는다. 현재 장편영화 시나리오 3개 정도를 생각해놨다. 영화 장르에 대한 특별한 선호는 없지만 SF와 느와르를 좋아하는 편이다.


“광고로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도 영화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꿈을 포기하는 순간, 저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돌고래유괴단 멤버들은 처음 팀을 꾸렸을 때,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의 운명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수족관에서 돌고래를 ‘유괴’해 바다에 풀어주자”고 약속했다. 신 대표는 파도 치는 바다를 꿈꾸고 있다. 그 곳이 망망대해라 할지라도.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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