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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회사 7년 다닌 ‘알차장’ 알베르토의 새 직업은?

알베르토 몬디 "다른 사람이 가지 말라고 한 길이었지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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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직장인 7년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
전공·유학·취업 때마다 의외의 선택
방송인, 작가…장애인 위한 사회적기업 도전

'알(베르토) 차장'.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33)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 자동차 회사에서 차장 직급으로 일하다보니 생긴 별명이다.


2014년부터 JTBC '비정상회담'에 나와 유명해졌다. 한동안 '~했어욥' 등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그의 말투가 유행했다. 방송에서 말한 직장 생활에 대한 조언은 자주 화제가 됐다. 연구원, 주류회사, 자동차 회사 등 한국에서만 7년간 직장 생활을 한 경험 덕분이었다.


"신입 시절 일이 끝났는데 상사가 남아 있으면 눈치를 보곤 했는데, 나중에는 '선약이 있어 저녁 먹고 돌아오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니까 한국 방식을 따르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알차장이 아니다. 2016년 9월 자동차회사를 관뒀다. 평일에는 직장 생활, 주말에는 방송을 하느라 가족에게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퇴사 후 직업이 늘었다. 매주 칼럼을 2편씩 쓰는 칼럼리스트이자 작가다. 지난 6월 이탈리아 문화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강연·행사를 다닌다.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 부회장직도 맡았다.


"안정된 직장 생활과 달라 불안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공부하다보면 제 안에 쌓이는 게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한국에 온 지 10년. 학업·취업 등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서 한국과 이탈리아의 다른 점이 보였다. 

알베르토는 1시간30분간 인터뷰에서 한 번도 이탈리아어나 영어를 쓰지 않고 한국어로만 말했다. 외국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유창했다. 스스로는 "문법이나 발음은 부족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배워서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출처jobsN

① "운동과 공부 함께 할 수 있어욥"


알베르토는 8개월째 매주 한 번씩 네이버에 축구 칼럼을 쓴다. "축구와 글쓰기를 좋아하거든요." 이탈리아 프로 축구 리그인 세리에A에 관한 내용이다. 각 구단별 소식, 선수 이야기, 리그 전반 등 소재가 다양하다. 한 편당 A4용지 3장에 달하는 5000자 정도 쓴다. "웬만한 축구 전문가보다 낫다" "글 잘 쓴다" "믿고 보는 알베르토 칼럼" 등 댓글 반응도 좋다.


여섯 살 때부터 15년간 축구 선수였던 경험도 큰 도움이 된다. 알베르토는 동네 클럽에서 시작해 준프로 수준까지 축구 세계를 경험했다. 그는 비프로리그 세리에D를 기준으로 2단계 아래인 '미라네제'에서 선수로 뛰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운동선수는 학업 보다는 운동에 집중합니다. 이탈리아는 달라요. 운동 선수들도 똑같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초·중·고등학교 모두 오후 1시 이전에 수업이 끝납니다. 전 학생이 오후에는 개인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어요."


계속 축구를 했다면 프로 리그에 갈 수도 있었지만 "직업으로 하기엔 실력이 부족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라는 생각에 관뒀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과 함께 한 알베르토 몬디

출처본인제공

② "하고 싶은 걸 했어욥"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인 알베르토는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고등학교의 이과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공부를 곧잘 했다. 이과였지만 라틴어, 역사, 문학 등 인문학이 좋아 철학과를 지망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의대나 법대, 공대를 권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철학 전공하면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요. 한국처럼 '백수된다'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요." 대학이 평준화한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명문대학이라는 개념은 없다. 대신 전공별로 이름난 대학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밀라노대학, 법학은 파도바대학이 유명하다.


역사를 좋아했던 그는 동아시아문화학과, 그 중에서도 중국어 전공을 택했다. 긴 역사를 가진 중국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그가 입학한 2003년 무렵 인기 있는 언어는 일본어였다.


"인기가 없다보니 학생들끼리 '공부 못하는 애들이 중국어과 간다' 농담도 했어요. 1~2학년 때는 무시 당하기도 했죠. 요즘은 중국어가 제일 인기입니다. 남들이 안 가는 길, 내가 하고 싶은 길을 간 게 더 잘한 것 같아요."


③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욥"


대학 4학년이 되자 중국 연수를 떠났다.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로 가는 친구들과 달리 다롄(大连)으로 갔다. 중국어 전공자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베이징으로 가려다가 신청서 제출하는 날 마음을 바꿨어요. 저희 학교에서 50명이나 베이징에 간다고 했어요. 이탈리아 친구들하고만 놀겠구나 싶어서 일부러 생소한 지역으로 갔어요."


친구 2명을 설득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다롄으로 함께 떠났다. 중국 현지인들과 축구를 하며 친해졌다. 한국·대만 등 다양한 나라 친구들도 사귀었다. 당시 함께 수업을 들었던 한국인 친구가 지금 그의 아내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서예를 배웠다. 여행을 다니며 생활 중국어를 익혔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예요. 취업 걱정도 전혀 안했어요. 함께 온 이탈리아 친구들도 신나게 놀았어요."

하지만 한국 친구들은 '돈과 시간을 들였으니 중국어를 완벽하게 배워야 한다' '한국 돌아가서 취업하려면 걱정이다' 같은 이야기를 자주 했다. "재밌는 게 그때 아내는 안 놀고 도서관이나 집에서 공부만 했어요. 중국어능력시험(HSK)에서 제일 높은 급수를 받았죠. 저는 중간 급수였어요. 그런데 중국인들이 오히려 제 말을 더 잘 알아들었어요. 현지인들과 어울리면서 배웠기 때문이었어요."


한국에 살다보니 친구들이 부담감을 느낀 이유를 짐작하게 됐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경쟁을 많이 해요. 전교 1등이 누군지, 친구가 몇 등인지도 알 수 있고요. 이탈리아에는 전교 1등이란 개념이 없어요. 다른 사람 성적도 당연히 모르죠.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학벌이나 직업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도 이탈리아와 달랐다. "한국에서는 결혼할 때도 직업이나 연봉, 집안을 보는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친구를 사귈 때도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끼리 주로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탈리아는 친구를 사귀거나 결혼을 할 때 그런 조건을 덜 보는 편이에요. 친구들도 직업이나 연봉이 제각각이고요." 

알베르토 몬디는 방송에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얻은 생각을 나눠 화제가 됐다.

출처JTBC 캡처

④ "고민과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없어욥"


2007년 이탈리아에 귀국해 대기업 인턴십에 합격했다. 정규직 전환이 보장된 자리였다. 하지만 입사를 포기하고 한국에 왔다. "이탈리아에서 3년 중국어 공부한 것보다 중국에서 6개월 지낸 게 훨씬 도움이 됐어요. 여행을 하면서 세상을 조금 더 보고 싶었어요. '세상을 넓은 시야로 보라'는 친구의 조언에 힘을 냈죠. 중국에서 알고 지냈던 지금의 아내가 보고 싶기도 했고요."


전공을 살려 동아시아 전문가가 되려면 현지에서 공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타고 동유럽과 러시아를 여행한 후 중국에서 취업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한국 여행을 마치고 아내와 사귀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강원도에서 어학원을 다니다가 주한이탈리아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이때 알게 된 구정모 교수를 따라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비는 장학금을 받아 해결했다. 생활비는 50만원. 월세 10만원짜리 방을 얻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아 대학원 2년간 틈틈이 한국어로 강의하는 학부 수업을 들었다. 그야말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했다.


"많은 걸 얻고 배운 시기였지만 힘들기도 했어요. 교수님이 깊게 가르치셔서 공부할 게 많았어요. 처음엔 한국어를 못해서 스트레스도 받았고요. 돈을 벌지 않고 공부만 하니 생활비가 부족해서 힘들기도 했죠."


취업 준비도 녹록치 않았다. 외국인 전형은 많지 않았다. 다른 한국 학생들과 똑같이 준비했다. 한국어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한국 학생과 경쟁했다. 국내외 대기업 5군데에 지원했지만 모두 필기에서 떨어졌다. 이탈리아 귀국을 생각할 정도로 막막했다. "인터넷으로 인적성시험을 봤는데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답을 잘 못했어요. 면접도 못 가봤죠."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시절 알베르트 몬디

출처FCA코리아 제공

⑤ "야근, 회식 낯설지만 장점도 있었어욥"


길은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그는 국제 쌀시장과 석유시장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경제학 저널에 소개됐고 학회 두 군데에서 발표했다. 외국인이 쌀시장에 대해 연구한 걸 눈여겨 본 한국조세연구원측에서 일자리를 제안했다. 대외협력팀에서 유럽쪽 자료를 찾고 연락하는 일을 맡게 됐다.


1년 후 이직했다. 전 세계 1~2위 맥주회사 사브밀러의 한국법인이었다. 이탈리아 맥주 브랜드를 한국에 런칭하는 일을 맡았다. 주류회사답게 술집에서 면접을 봤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제가 사람을 뽑아보니 술 잘 마시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에요. 어떤 맥주를 시키는지, 술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를 보면 주류회사 영업 사원에 적합한 지 알 수 있어요."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1시 전에 마친 적이 없을 정도로 일은 고됐다. 하지만 일을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호텔 등 맥주를 팔 수 있는 곳은 다 돌아다녔다.


"이탈리아에는 야근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맡은 브랜드니까 잘해보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레스토랑 사장님 만나기가 어려워요. 장사 준비하는 시간에는 안 계실 때가 많고, 손님이 많을 때는 바빠서 안되고…. 대신 새벽이나 겨울에 비 올 때 실적을 많이 올렸어요."


함께 일한 한국인 동료도 큰 힘이 됐다. 서로 격려했고, 한국어도 많이 가르쳐줬다. "전화 한 번 하려면 한 10분 정도 혼자 연습했어요. 뭐라고 말할지, 상대방이 말하는 걸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걱정됐거든요. 그때 동료들이 도와줘서 한국어가 많이 늘었어요."


3년 가까이 일하고 다시 자동차 회사로 옮겼다. 이때 받은 직급이 '차장'이었다. 자동차 판매 딜러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주일에 3일씩 출장을 다녔다. 전국 14개 영업소와 21개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딜러를 만나다보니 술을 곁들인 회식이 잦았다. 늦게 마치면 하루에 3~4시간만 잘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술 때문에 일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업무 때문에 직장 동료끼리 술을 마시는 문화가 아예 없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강요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술자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처음 만나면 딜러들이 저희를 신뢰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요.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다보면 딱딱한 분위기가 풀어졌어요. 정식 미팅 때 못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어요. 한국에서 일할 때는 이런 술자리가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한국과 이탈리아 직장은 성과 체계도 다르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는 40대가 넘어가야 연봉이 오르고 중요한 업무를 할 수 있습니다. 65세까지 회사를 다니면 연금도 직전 연봉의 80%까지 나와요. 웬만해선 해고하는 일이 없죠. 대신 청년들이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이 받는 첫 월급은 거의 150만원 정도예요. 제 친구들이 한국 연봉을 듣고 놀랄 정도였습니다. 한국은 20~30대 초년생들도 중요한 업무를 할 수 있는 반면, 45세가 넘으면 회사에 남아 있기가 힘들죠. 서로 장단점이 있어요." 

2016년 태어난 아들을 안고 있다.

출처본인제공

⑥ "새로운 길 찾아 조금씩 전진하고 있어욥"


알베르토에게 방송은 한국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친한 카페 사장님 소개로 2014년 '비정상회담' 촬영을 했다. 프로그램 인기가 높아지자 알베르토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TV프로그램, 강연, 화보촬영….


직장 생활과 방송을 1년 반 동안 병행했다. 월~금요일은 직장 생활에 충실했다.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들어왔다. 토요일에는 행사, 일요일에는 비정상회담 녹화를 했다. 일주일 내내 아내와 2016년 태어난 아들 얼굴을 못 볼 때도 있었다. 운동 등 개인 여가 활동도 하기 어려웠다. 아내와 상의해 둘 중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3년간 다닌 자동차 회사를 나왔다.


"두 가지를 함께 할 때도 직장에 좀 더 시간을 많이 썼어요. 훨씬 안정적이니까요. 그런데 방송으로 얻는 좋은 경험이 많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서도 배울 게 많아요. 방송 뿐 아니라 출판, 강연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당장 돈을 못 벌더라도 좋은 뜻으로 하는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고요."


그는 앞으로 사회적기업을 만들 계획이다. "장애인 고용에 관심이 많아요.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방송으로 얼굴 알리더니 대충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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