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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차도 내가" 손대면 4천만원 차가 억대로 변신

조회수 2020. 9. 23. 10: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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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전용차 카시트도 제 손 거쳤죠" 억대 차만 만지는 20년 가죽 장인 손
신발용~카시트 가죽까지 20년 노하우
억대 차량, 교황 전용 의전차 카시트도 직접 작업
고급차 수요 늘며 기술 좋은 가죽 장인 대접받을 것

20여 년 가죽만 만져온 장인의 손은 검고 투박했다. "내 손도 씻어놓고 보면 하얗다고." 그는 손바닥을 쫙 펴 보였다. 손가락의 굵은 마디가 도드라져 보였다. 손에 힘을 주고 가죽을 늘리거나 당기는 일을 많이 해서인지 마디가 굵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 새끼손가락 첫 마디는 안쪽으로 굽어 있었다. 무거운 물건에 찍힌 뒤 제대로 펴주지 않아 생긴 상처 같았다. 언제 다쳤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언제 그랬는지 몰라. 어쩌다가 그랬겠죠 뭐"라고 했다.  

출처: 케이씨모터스 제공
윤용안 케이씨모터스 가죽실 반장.

윤용안(51)씨는 케이씨모터스 가죽실 반장이다. 케이씨모터스는 기아차에서 생산하는 카니발, 현대차의 EQ900, 솔라티 등을 고급 차로 개조하는 업체다. 플라스틱으로 마감 처리된 실내장식을 천연 가죽으로 덧씌우고, 바닥에 나무 타일을 깔기도 한다. 일반 의자를 전동식 고급 의자로 교체하고 방음처리 등 여러 인테리어 작업을 마치면 4000만원 수준인 카니발 가격은 1억원 수준으로 훌쩍 뛴다. 정치인, 유명 스포츠 선수, 대기업 총수나 오너 가족 일부가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실내를 고급스럽게 꾸미는 중요한 재료 중 하나가 '가죽'인데, 모두 윤씨의 손을 거친다.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케이씨모터스는 기아차의 의뢰를 받아 교황 전용 의전차를 개조했다. 이때 들어가는 카시트도 윤씨가 직접 작업했다.


교황 전용 차량은 이탈리아어로 파파모빌레(papamobile)라고 부른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교황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개조한 차를 말한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한국에서 지붕을 제거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바꾼 카니발을 탔다. "영광스럽죠. 한 종교의 큰 인물 아닙니까. 그런 분이 앉을 차를 제가 꾸밀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출처: 케이씨모터스 제공
가죽을 만지는 윤용안씨의 손, 왼손 새끼손까락이 굽어있다.

신발용~카시트 가죽까지 20년간 재단, 봉재, 구매, 관리 다해봐 

-언제부터 가죽을 만졌습니까


"가죽 공장에 다니기 전에는 단위농협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처럼 시험을 보지도 않았고 들어가기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죠." 그는 당시 당시 중졸이었다고 했다. 마흔 살이던 2005년에야 고등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왜 나왔나요


"아는 사람 중에 가죽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었어요. 나이키에 신발용 가죽을 납품했죠. 자기가 신발공장을 직접 차리려 하는데 기술도 익히고 도와주면 좋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농협을 그만두고 신발 공장에 들어갔다. 가죽 구매와 관리를 맡았다. 하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2년 만에 공장이 문을 닫았다. 신발 재료를 납품하는 사업과 신발을 직접 생산하는 사업은 전혀 달랐다. 이름 없는 작은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죽' 산업에 전망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점점 고급스러운 제품을 찾는데, 가죽이 주재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1996년, 자동차 카시트를 개조하는 업체에 들어갔다. "요즘은 대부분 차량에 인조가죽을 입힌 카시트가 기본 장착되잖아요. 당시에는 아니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따로 업체에 맡겨서 시트에 가죽을 입혔습니다. 그걸 전문으로 하는 업체로 들어간 거죠."


-옮긴 곳에서도 구매와 자재 관리를 했습니까


"이곳에선 가죽 손질부터 배웠습니다. 바닦부터 제대로 기초를 쌓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가죽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죽은 돌돌 말린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한다. 펼쳐 놓으면 가로 길이가 50m 정도 된다. 60~70kg이 나간다. 이런 걸 하루에도 수십개씩 들고 날랐다. 재단·봉재 과정에서 가죽을 힘줘 밀고 당기다 보면 저녁쯤엔 팔꿈치가 퉁퉁 부어올랐다.


-일은 할만했나요


"6년 동안 일했는데 공장 주인이 3번 바뀌었습니다. 월급을 못 받는 날도 제법 있었고요. 그동안 가죽 기술을 익힌 게 가장 큰 소득이었죠." 

출처: 케이씨모터스 제공
윤용안씨가 가죽을 재단하고 있는 모습(왼쪽), 1억원을 호가하는 노블클라쎄 카니발 실내 모습.

2002년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카시트 공장을 차렸다. "작은 공장이었습니다. 그동안 익힌 노하우로 영업도 하고 가죽도 직접 손질했죠. 잘 나갈 땐 직원 30명 월급 다 주고도 한 달에 2000만원씩 가져갔습니다."


-사업은 왜 그만뒀습니까


"시대가 변하는 걸 빨리 파악하지 못했어요. 점점 가죽시트를 기본으로 달고 나오는 차가 늘었습니다. 우리 같은 영세 업체의 설자리가 좁아졌습니다. 공장을 6년 했는데 2년은 자리를 잡느라 힘들었고, 2년 정도는 잘 나갔지만, 그 뒤 2년 동안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었습니다."


이후 새로 찾은 직장이 케이씨모터스였다. "10년 넘게 익힌 가죽 노하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차 값이 대당 1억원은 넘어야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최고급이 된다고 했다. "프리미엄차는 대기업도 대량생산할 수 없으니까 수작업을 대부분 우리가 맡아야 합니다. 기술자의 역할이 그만큼 큰 곳이죠."


그는 대기업 과장급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고 했다. 한국기업데이터(KED)가 2016년 매출 상위 1000대 기업의 사원 평균 연봉을 조사한 결과 과장급은 5010만원, 차장급은 5990만원으로 집계됐다.

억대 차량, 교황 전용 의전차 카시트도 직접 작업

-카시트 하나를 싸는데 가죽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약 70평 정도 들어갑니다. 가죽에서 말하는 '평'은 가로·세로가 각각 30cm인 정사각형입니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가죽이 약 50평 나옵니다." 의자 하나를 싸는데 소 1.5마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비싼 건 평당 1만 2000원, 의자 하나에 가죽값만 90만원 정도 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좋은 가죽이라는 게 있나요


"우선 상처가 없어야 합니다. 모기가 없는 고원 지대에서 방목한 소를 제일로 칩니다. 북유럽 쪽에서 키운 소가 좋죠. 다만 원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손질을 잘못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손질 방법에 따라 가죽 성질도 달라지고 가격도 차이가 생겨요. 그런 면에서 예부터 가죽 기술이 발달한 이탈리아산을 최고로 칩니다." 

출처: 케이씨모터스제공
기아차 카니발을 개조한 교황 의전차량 파파모빌레 모습.

-교황님 차도 직접 작업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아차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교황님이 타실 차라고 잘 해달라고요. 차 한대를 위해 공장 사람들이 다 매달렸을 정도입니다. 기초는 기아차 카니발이었지만 싹 뜯어고쳤습니다. 한 달은 고생한 것 같습니다."


그가 교황 전용차(파파 모빌레)를 만지는 동안 청와대 경호실에서 사람이 나와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저도 몰랐어요. 양복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청와대 직원이라고 하더군요." 교황은 공식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면서 바티칸 시국을 대표하는 원수(元首)이기도 하다. 청와대 경호실이 교황 의전을 담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급차 수요 늘면서 기술력 있는 가죽 장인 대접받을 것 

-가죽 산업의 전망은 어떨 것 같습니까


"포르쉐나 벤츠 같은 유명 브랜드를 보면 점점 더 좋은 가죽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급 재료를 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가죽 마감재 수요도 늘고 있죠. 기술을 배운다면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가죽 기술을 처음부터 배운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배우는 사람 열정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을까요. 제대로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저를 따라다니는 직원이 있다면 저는 얼마든지 가르쳐줄 겁니다. 그래도 최소한 5년은 걸리겠죠. 원단 파악, 재단, 봉재, 관리, 리커버까지. 쉬운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퇴직하기 전까지 그런 기술자를 1~2명은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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