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부부가 온갖 협찬 제의 뿌리치고 신청서 보낸 곳

조회수 2020. 9. 23. 10: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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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 후 펜션 운영하다가 '이효리 친환경 결혼식' 기획하게 된 디자이너의 사연은?
에코웨딩 업체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효리 결혼식 기획한 곳으로 유명
귀농 후 펜션 운영하던 이경재氏가 대표

2013년 9월, 가수 이효리(38)의 결혼식은 파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효리와 이상순(44) 결혼식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으로 꼽는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너무 소박해서.


당시 이효리 결혼식 기획을 맡은 사람이 에코(eco·친환경) 웨딩업체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경재(38) 대표다. 결혼식의 컨셉과 방향, 식장 데코레이션 등을 짰다. 물론 컨셉은 '친환경'이었다.


"어느 날, 상담 신청 카드에 적힌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상순·이효리 커플이 온갖 협찬 제의를 모두 뿌리치고 '친환경 결혼식'을 하고싶다며 신청서를 보냈어요. 처음에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잡스엔(jobsN)이 이 대표를 만나 에코웨딩이 무엇인지, 어떻게 창업하게 됐는지를 물었다.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환경을 위하는 결혼식은 더욱 특별해진다.

-‘에코 웨딩’은 정확히 어떤 결혼식을 말하나요.

"친환경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에 필요한 의상, 꽃, 장식품, 장소까지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죠. 일반 결혼식은 경제적인 낭비도 심하지만, 환경을 해치는 일이 많습니다. 웨딩드레스는 합성섬유로 만들어 형광탈색처리해서 유해합니다. 무조건 많이 만드는 피로연 음식은 상당량이 버려지죠. 그런 것들을 피하자는 게 에코웨딩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스몰웨딩과 다른 것이겠네요.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릅니다. 에코웨딩이라고 하면 무조건 간소한 결혼식을 예상하는데, 여느 결혼식과 비슷하면서도 환경을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거죠. 또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부풀려진 결혼문화에 휩쓸리기보다 결혼식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환경을 지키는 의미까지 더한다면 보다 특별해질 수 있어요."


-에코웨딩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요?

"10년쯤 전 한 유명 연예인 결혼식이 화제가 됐어요. 신부가 고가의 유명 수입 드레스를 입었거든요. 드레스, 부케, 구두 가격이 얼마인지로 도배된 기사들이 쏟아졌죠. '이게 맞는 방향인가'싶었어요. 일반인들은 상대적 박탈감만 느낄 것 같았거든요. 원래 친환경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던 중이라 '웨딩드레스를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한지풀 드레스와 사옥 마당에서 열린 결혼식 장면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옷과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국민대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2003년 SBS 의상팀에 입사했다. 옷 만드는 일은 재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감이 들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직장인'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SBS에서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의상 등을 만들었어요. 패션디자인 업계는 야근과 잔업이 일상인데, 방송국 의상팀은 칼퇴근에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꽤 좋은 직장이었죠.


그런데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열정없는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오늘 점심 뭐 나오나, 언제 퇴근시간 되나'만 생각하고, 그저 월급날만 기다리면서요. 조금씩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 답을 찾는 게 힘들더라고요. 정신적으로 지쳐갔어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쉬어보자고 생각했어요.”


2004년 퇴사 후, 강원도 횡성으로 갔다. 예전에 여행을 한 번 가본 곳이었다. 평온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직장 생활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4박 5일 일정으로 '청일면 신대리'에 머물렀다. 그는 큰 결심을 했다. 낙향(落鄕)하기로 한 것. 당시 25세였다.


-귀농생활은 어땠나요?

"처음 한 두달은 푹 쉬었어요. 마을 주민들 일손도 돕고 어르신들 말 벗도 해드리며 친분도 쌓고요. 서울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죠. 마침 제가 머물던 횡성군 신대리 이장님이 정부에서 지어준 '그린랜드'라는 이름의 마을 주민 공동 사용 공간을 관리해보라고 하셨어요. 고민 끝에 ‘깨끗한 집’이라는 이름을 걸고 펜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500만원 보증금을 내고 사업장 등록도 했죠. 귀농 결심하고 내려가서 원룸 얻어 자취했고, 이후로는 펜션에서 생활했고요."


-그 때의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업은 운영과 수익 모두 안정적이었어요. 그래서 4년간 계속했죠. 하지만 점점 하다보니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흔히 펜션을 운영하면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펜션업은 사실 청소업이나 마찬가지에요. 평일엔 한가한데 비해 주말에는 쉴 틈도 없이 바빠서 일과 휴식의 균형도 잘 안맞는 편이죠. 펜션과 웨딩사업 모두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체력소모도 크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길 게 많은 일이기도 해요. 눈으로 보여지는 것과 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모든 창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펜션을 운영할 때 그는 윤호섭 국민대 명예교수가 TV에서 "앞으로 미래 디자인은 환경을 고려하는 디자인이 트렌드를 주도할 것이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다시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윤 교수는 광고 디자이너 겸 국내 1호 환경디자이너다.


펜션을 접고, 2008년 국민대 그린디자인대학원 야간 과정에 입학했다. 2016년 없어진 그린디자인대학원은 친환경 디자인 기획과 제작을 가르치던 곳이다. 대학원 수업에서 '에코웨딩'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의상 제작 작업중인 이경재 대표

-대학원에서 어떤 경험을 했나요

“어느 날 수업에서 교수님이 투명한 비닐을 한 장씩 나눠주면서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비닐이니 그것을 활용해서 각자 작품을 만들어보라고 하셨어요.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 경험이 떠올랐죠. 횡성 한우축제 때 마을대표로 참석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니까 군청에서 우비를 나눠줬어요. 나중에 비가 그치니까 사람들이 우비를 버리고 갔는데 우비가 잔뜩 쌓여진 걸 보고 '저게 전부 쓰레기가 돼서 지구를 오염시키겠구나'하고 생각하니까 참 안타까웠거든요. 그 때 기억이 떠올라서 옥수수전분 비닐로 우비를 만들었어요. 그 때 처음으로 친환경소재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본거죠.”


-그럼 친환경소재로 웨딩드레스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본에 단체견학을 갔다가 화학회사 '도레이'가 주관한 전시회에서 PLA(옥수수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 옷을 처음 봤어요. 한국에 돌아와 그 업체를 수소문해 섬유를 얻고 싶다고 요청했더니 보내줬고 시험삼아 옷을 한 벌 만들었어요. 몇 벌 더 만들어서 총 16벌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 전시회에서 제 옷을 본 한 분이 자기 결혼식때 입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죠. 그 분이 제 첫 고객인 셈이에요.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친환경 드레스와 숲 속 결혼식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 만드는 결혼식은 특별하다. 3~6개월간 예비 신랑·신부와 충분히 협의한다. 그들의 스토리가 녹아든 결혼식 컨셉을 정하기 위해서다.


웨딩드레스와 수트는 옥수수전분, 한지쐐기풀, 목화 씨에서 뽑은 섬유, 린넨 등의 친환경소재와 재생 섬유로 만든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간직하며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도록 드레스는 리폼해준다. 부케와 부토니아(신랑의 턱시도 옷깃을 장식하는 꽃)도 뿌리가 살아있는채로 만들어 지속적으로 심고 키울 수 있도록 해준다. 식장에서 사용한 천은 에코백으로 만들어 나눠주고, 화분도 하객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서울시와 공동으로 시민청, 성북구청 내 성북아트홀에서 '작은결혼식'도 주관하고 있다. '2017 S/S 서울패션위크'에도 참가해 바지로 된 신부의상 등 '지속가능한 웨딩패션'을 선보였다.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런웨이에서 선보인 친환경 웨딩패션

-에코웨딩이란 개념이 친숙하지 않은데 고객은 어떻게 확보했나요.

"친환경소재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전시회를 한 이후 입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1년에 1~2명 주문을 받아 제작했어요. 미니홈피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홍보했고요.


그러다 한 파워블로거가 제 옷을 블로그에 올렸고 그 이후로 주문하는 사람이 한 달에 1~2명으로 늘었어요. 점점 횡성에서만 작업 하기에는 제약이 많아졌어요. 서울로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2007년 말 상경해 몇 개월 준비 끝에 2008년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창업했습니다. 초반에는 월 고객이 3~4명 정도였어요. 결혼 문화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점점 찾는 분들이 많아졌죠. 현재는 연간 평균 70쌍 정도의 결혼식을 진행합니다. 지금까지 총 400쌍 정도의 결혼식을 기획했습니다."


-창업하는 게 쉬운일이 아닌데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나요.

"창업을 준비하며 막막해하니까 지인이 한 창업경진대회에 나가보라고 제안하더라고요. 그게 ‘제1회 소셜벤처 경연대회’였어요. 거기서 강원권 대상을 받았습니다. 심사위원 중 고(故) 이승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미술장이가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게 대단하고 혁신적”이라고요. 그 말이 큰 힘이 됐어요. 제 아이디어를 '남들이 인정해주는구나' 싶어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업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게 힘들어요. 사업 초기 에코웨딩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부풀려진 결혼 문화를 바꿔보자는 시도가 처음엔 잘 통하지 않았어요. 특히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어렵죠. 그래서 부모님들에게 우리 사업의 취지와 에코웨딩 컨셉을 설명하는 세미나를 따로 열기도 하고, 우리 취지에 공감하는 협력업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오히려 반대가 컸던 부모님들이 결혼식이 끝난 후 좋은 결혼식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전화를 주세요. 그럴 때 감사함과 보람을 느껴요."

이효리의 소박한 결혼식은 결혼문화의 판을 바꿨다.

-특별히 기억나는 경험이나 커플이 있다면요?

"2012년 결혼한 이상순·이효리 커플이요. 처음에 신청서에 쓰여진 이름을 봤을 때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알고보니 진짜 이효리씨였죠. 에코웨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취지에 공감하고 있었어요. 제주도 이효리씨 집에서 결혼식 컨셉과 식장 디자인 모두 제가 기획했습니다. 드레스는 이효리씨 개인 소장품이었어요.


프랑스에서 연락 주신 분도 기억나요. 치수 재는 법을 알려드리고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드레스를 디자인했죠. 결혼식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예쁜 궁전 같은 곳이길래 장소를 물어보니 프랑스 관공서라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우리도 관공서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서울시에 ‘작은 결혼식’사업을 제안한 거군요?

"주말에 빈 관공서 건물을 결혼식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박원순 시장에게 제안했죠. 2012년 서울시 환경대상 우수상을 받았는데, 그 때 시상식에서 우리 직원들이 ‘시민을 위한 작은 결혼식 열어주세요’라고 쓴 플래카드를 펼쳤어요. 바로 다음날 시장님이 트위터에 "지원하겠다"는 글을 올리셨죠. ‘작은 결혼식 연구단’에 소속되어 컨셉 기획과 운영을 도맡았죠."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성북구청과 시민청에서 열린 에코웨딩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친환경 부케와 부토니아

-드레스와 결혼식 비용은 어느 정도이고. 매출은 어떤가요.

"드레스 평균 가격은 90만~120만원입니다. 어떤 디자인을 하느냐에 따라서 가격은 달라집니다. 고가드레스는 200만~300만원 정도입니다. 결혼식 비용은 하객 수에 따라 다르지만 100명 기준 약 800만~900만원, 200명 기준 약 1200만~1400만원 정도이고요. 결혼식 평균 비용이 2500만원인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에요."


-수익과 상관없이 진행하고 있는 사회공헌 사업이 있나요.

"대지를위한바느질이 사회적기업인 만큼 지역에 보탬이 되는 일들을 틈틈이 하고 있어요.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마을에 있는 음식점과 제휴하는 것도 그 중 하나고요. 작년에 ‘성북동을 위한 바느질’이라는 프로젝트도 했습니다. ‘우리 마을 가게 사장님들이 앞치마 가 아닌 좀 더 세련되고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장사를 한다면 가게 이미지도 좋아지고 손님이 늘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해본 거에요. 프로젝트 이후 좋은 반응을 접하면서 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이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도 성동구 봉제사업단지와 연계해서 지속가능한 패션업계 생태계를 위한 일을 추진할겁니다."


-웨딩드레스 외에 친환경소재로 만드는 옷이 또 있다면.

"성북구 보건소, 경희 연 한의원 등 병원 환자복과 의정부시청, 롯데그룹 CSR팀(사회공헌팀)의 유니폼도 만들었어요."

출처: '대지를 위한 바느질' 제공
모두의 참여로 특별해지는 결혼식

-직장 그만두고,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창업을 꿈꾸더라도 현재 다니는 직장이 있다면, 한 두가지 이유로 쉽게 그만두기보다 최소 1년 이상은 경험하고, 3년 정도는 꾸준히 한 곳을 다녔으면 좋겠어요. 짧게 여러 곳을 다니면 경험은 다양하게 쌓을 수 있겠지만, 한 분야를 깊이 알기는 어렵거든요. 나중에 창업을 하면 사람을 채용하고 관리해야 할 일이 많은데 직장에서 관리자가 되어본 경험이 없으면 힘들거든요.


저도 첫 직장이었던 방송국에서 1년을 못 채우고 막내인 채 관두는 바람에, 아래 후배를 대해본 적이 없어서 사업할 때 어려움이 많았어요. 창업을 꿈꾸더라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겪는 매일의 크고 작은 일들이 내 사업의 밑천이 된다 생각하고 장기적 플랜은 갖고 버티는 게 좋은 길이 될 겁니다."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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