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레전드 권혁수의 '호박고구마' 아이디어 낸 시인?

조회수 2020. 9. 22. 15: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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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시(詩) 올려 인생 바뀐 남자
유명 'SNS 시인' 이환천氏
퇴사 후 떠난 호주에서 인생의 전환점
방송작가, 카피라이터로도 일하는 프리랜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SNS 시인 이환천(31)씨의 작품들이다.


이씨는 3년째 페이스북에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라는 페이지를 운영하며, 꾸준히 시(詩)를 올리고 있다. 줄 노트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다. 시상(詩想)만 떠오르면 써서 올리는 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패스트푸드와 비슷하다. 그런 의미서 그의 시는 ‘패스트(fast) 시’다.


시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가 올린 시에 ‘좋아요’를 누른다.


현재 이씨가 운영하는 소설미디어 계정을 통해 시를 받아보는 독자 수는 7만여명. 사람들은 그를 ‘SNS 시인’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에 올린 글을 모아 시집도 냈다. 2015년 5월에 출간된 시집은 2년간 7쇄를 찍었다. 1만권 가까이 팔렸다. 

출처: tvN 방송화면 캡처
SNS 시인 이환천씨

그의 직업은 다양하다. SNS 시인뿐 아니라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온라인 마케터로도 활동한다. 기발한 생각을 떠올려 먹고 사는 ‘아이디어 노동자’인 셈이다.


“주업(主業)은 방송작가입니다. tvN 프로그램인 ‘인생술집’ 팀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SNL 팀에서도 일했고요. 그밖에 기업체 온라인 마케팅을 위한 시를 써주거나, 광고 문구를 적어주고 돈을 법니다. 시는 틈나는 대로 쓰고 있어요.” 

퇴사 후 떠난 호주에서 詩올리며 유명세

부산이 고향인 이씨는 경성대 체육학과(06학번)를 나와, 2013년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남 잘 웃기고, 쾌활한 성격이 잘 맞을 것 같아서 선택한 일이었지만 오산이었다. 

출처: 이씨 제공
이환천 작가의 대학 시절 모습

약을 판매하는 것은 남을 웃기는 일이 아니었다. 철저한 비즈니스였다. 상대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는 고도의 협상술이 필요했다. 전문적인 지식도 필수였다. 일이 괴로웠고, 실적은 바닥이었다. 1년 조금 넘게 다니고 회사를 나왔다.


“아무 계획이 없었지만, 미래에 대해서 진중하게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남들 취직하니까 저도 휩쓸려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2014년 6월 호주로 떠났습니다. 호주에 정착한 친구가 현지 생활을 적극 추천하기도 했고요.”


호주에서는 오후 1~2시부터 일을 나갔다. 스포츠 마사지사와 호텔 청소부로 일하면서 월 300만원 정도를 벌었다. 오전 시간은 자유였다. 

호주에서의 이환천씨

이씨는 재미 삼아 위트 있는 내용의 글을 음률을 갖춰서 쓴 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비속어가 섞이는 등 20~30대가 생각 없이 읽고, 웃어 넘길만한 가벼운 글이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고전시가가 나오면 그 글을 조금씩 바꿔서 친구들을 웃긴 적이 많아요. 남을 웃기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고, 타국에서 외로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재미삼아 ‘시’라고 올려봤죠.”


일주일에 2~3수씩 꾸준히 시를 올리자, 얼마 가지 않아서 반응이 왔다. 자고 일어나면 ‘좋아요’ 수백~수천개가 눌러져 있었다. 하루 아침에 이씨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독(팔로우)하는 사람 수가 수천명씩 늘었다. 

sns시인 이환천씨

페이스북 댓글 알림 때문에 스마트폰이 계속 울려서 배터리가 3~4시간을 못 버틸 정도였다.


유명세를 타면서 출판사 10여곳에서 연락이 왔다. 시집을 내보자는 제안이었다. 2년 정도 살려고 온 호주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래도 계속 연락이 왔다. 이씨는 생각을 바꿨다. 호주에 온 지 8개월쯤 됐을 때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온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겠나’라는 생각에 일단 한국으로 들어가서 출판사와 만나 책 출간 계획을 잡았습니다.”

SNS시인, 방송작가,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씨는 ‘내가 만든 콘텐츠를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니, 계속 이 길을 가보자’고 생각했다.


2015년 3월쯤 한국으로 돌아와 두 달 뒤,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라는 시집을 냈다. SNS에 올린 시 160수가 실렸다. 시집 표지에는 ‘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순순히 인정하겠다’는 문구를 넣었다.


시집이 나오고, 활발히 SNS 활동을 하면서 일이 꾸준히 들어왔다. 주로 기업들의 광고 문구 작성, 이벤트 참여 요청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후기로 시를 써서 SNS에 올려달라고 부탁하는 제작사도 있었다. 유명 배달앱을 운영하는 한 업체는 ‘시 공모전’을 한다며 이씨에게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단발성 문구 작성 등은 건당 100만원 정도를 받았다. 기업과 3개월 정도 광고 문구 작성 계약을 맺고, 200만~3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기도 했다.


2016년 3월에는 tvN의 인기 프로그램인 ‘SNL 코리아’의 시즌 7 팀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 이후 그는 SNL팀의 작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코너 아이디어를 냈다.


‘더빙극장’은 그 중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더빙극장은 큰 인기를 얻었던 과거 영상을 선별해 오디오는 그대로 둔 채, 연기자가 그 모습을 재연하는 코너다. 

출처: MBC '라디오스타' 방송화면 캡처

특히 권혁수가 연기한 ‘호박 고구마’ 패러디는 레전드 영상으로 꼽힌다. 10년 전 방영된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나문희가 며느리 역을 맡은 박해미가 면박을 주자,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해 큰 화제가 됐다.


권혁수에게 이 장면을 패러디 하게끔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이씨다. 이씨는 SNL에 이어 최근에는 tvN ‘인생술집’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월요일에는 인생술집 팀이 다같이 모여서 게스트를 누구로 할지 정합니다. 월요일 구성 회의 후, 저녁에 집에 가서 대본을 쓰죠. 화요일에 대본을 갖고 회사로 와서 대본 수정을 합니다. 수요일에는 수정한 대본으로 녹화를 하는데, 목요일 새벽까지 이어질 때가 대부분이에요.


목요일은 쉬고, 금요일에는 다시 다음주 방송을 준비합니다.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가끔씩 있고요. 작가가 메인 직업이고, 남는 시간에 기업체 온라인용 광고 문구 작성 등의 일을 하거나 시를 씁니다.”


프리랜서인 이씨의 소득은 들쭉날쭉이다. 월 평균 소득으로 따지면, 입사 3~4년차 대기업 직장인 수준이라고 한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이 정도 버는 것에 만족합니다.”

“직장인이나 프리랜서나 불안하긴 마찬가지”

시를 쓰려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이씨는 스마트폰에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마디 던졌는데 모두가 박장대소한 일이 있다면, 이씨는 집에 돌아와서 그 날의 일을 스마트폰에 적는다. 시를 쓸 때는 웃음을 주려다가 남에게 상처되는 말을 쓰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부담 없이 SNS에 시를 올릴 때는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것이 재미있기만 했는데, 요즘은 심적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항상 이 자리에서 시 쓸만한 소재가 없었나를 생각하게 되죠. 시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로 먹고 사는 일을 하다보니 매사에 심리적 압박이 있는 편입니다. 스스로 조절을 잘해야죠.”


이씨는 앞으로 시로 쓴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방송작가로 꾸준히 활동하며 지금처럼 ‘프리랜서’로의 삶을 이어가려고 한다.


“이왕 시작한 김에 끝까지, 후회 없이 제가 해보고 싶은 활동은 다 해보려고 합니다. 불안하지 않냐고요? 물론 불안하죠. 당장 제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다음주 종영이라면 저는 주된 일자리 하나를 잃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제약회사 정규직일 때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어요. 정규직이면서도 앞으로 내 앞 날이 어떻게 될까,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프리랜서뿐 아니라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크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겠다’하는 다짐과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에게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작은 성공이 모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저도 시를 하나씩 꾸준히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만 하면 다 잘 될 겁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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