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동안 원룸 청소하고 200만원 '유품정리사'

조회수 2020. 9. 22. 11: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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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리'를 정리합니다.. 유품정리사가 말하는 고독사 이야기
유가족·건물주가 시신 발견 후 유품정리 의뢰
시신 악취 때문에 콘크리트 제거하기도
‘웰다잉’ 관심 높아져… ‘사명감’ 확실해야 오래 버텨
출처: jobsN
'스위퍼스' 길해용(33·왼쪽 사진) 대표는 7년째 활동하고 있는 유품정리사다. 오른쪽은 길 대표가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이다.

‘고독사’는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나 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자연사, 자살, 돌연사 등 사망 원인을 불문하고 임종 당시에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경우를 말한다.


유가족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홀로 있었던 경우 모두 고독사에 속한다.


고독사 한 자들이 떠난 자리를 수습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유품정리사들이다. 국내에는 2010년부터 유품정리 전문 업체가 생겨났다. 경력 7년 차에 접어든 ‘스위퍼스’ 길해용(33) 대표를 만나 홀로 떠난 이들의 외로운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모른다, 배째라”…유가족 아닌 건물주가 유품정리 의뢰  

길 대표에게 유품정리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고인(故人)의 유가족이거나, 고인이 세 들어 산 집의 건물주다. 건물주는 “왜 여기서 죽어서 고생을 시키냐”는 말을 한다. 유가족이 시신 인수 자체를 거부하거나 유품 처리를 건물주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겨울에 사망했는데 봄이나 여름이 돼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날씨가 풀리면 시신이 부패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봄·여름 유품정리 의뢰 건수는 겨울 의뢰 건수의 두 배에 달한다.

출처: 스위퍼스 제공
고독사 한 사람의 집. 소주병과 담뱃갑이 널브러져 있다.

-유품정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 요리를 공부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 고깃집을 운영했다. 하루는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고독사 관련 기사를 봤다. 그때 ‘유품정리’ 일에 대해 처음 알았다. 흥미로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날 밤새 인터넷으로 ‘유품정리’ ‘특수청소’란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그에 따른 고독사 증가 등을 살펴보니 ‘인간의 죽음’과 관련한 일이 비즈니스적으로 유망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2011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유품정리 전문 업체가 딱 한 군데 밖에 없었다. 빨리 뛰어들수록 선점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바로 ‘유품정리·특수청소’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부동산에 가서 가게도 바로 넘겨버렸다. 유품정리 전문 업체를 운영하던 사람을 찾아가 교육 비용을 내고 1년 동안 일을 배운 뒤 독립했다.”


-누가 유품정리 의뢰를 하나


“작업을 하다 보면 고인(故人)이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경우가 100%다. 1인 가구이다 보니 죽음을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가족이 먼저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건물주가 밀린 월세 때문에 세입자를 찾아갔다가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 사망한지 한참 뒤에 발견된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생긴 악취와 구더기 처리 등을 우리 같은 전문 업체에 맡긴다. 고인(故人)에게 가족이 있더라도 ‘나는 모른다, 배째라’ 할 때가 많다. 가족 관계가 끊어진 경우이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또 다른 세입자를 받아야 하니까 자기 돈을 내면서 고인이 살던 집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


가끔 건물주가 멘탈이 붕괴돼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세입자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당장 와서 정리를 해달라는 거다. 하지만 현장 정리 작업을 건물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찰과 경찰 쪽에서 사인을 정확히 밝히고 나서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작업 의뢰 요청이 늘어난다던데


여름에는 대략 6건, 많게는 10건까지 의뢰가 들어온다. 한 건당 4~6일 작업 기간을 잡는다.

고독사는 보통 사망 후 1주일에서 한 달 이내에 발견된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생기는 악취가 절정에 이르는 때가 이 기간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문을 열고 생활하니까 주변에서 시신 악취를 더 쉽게 알아챈다.

의뢰가 들어올 때 ‘파리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파리가 부패한 시신에 알을 낳는다. 한 마리의 파리가 수백개의 알을 낳는다. 현장에서는 수천마리의 구더기가 발견된다. 현관문 밖으로 기어 나온 구더기 때문에 시신이 발견되기도 한다.

겨울에 발견되는 경우는 고인이 전기장판 위에서 사망했을 경우이다. 시신이 고온에 계속 달궈지다 보니 현장 상황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출처: 스위퍼스 제공
길해용 대표가 고독사 현장의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를 진행하고 있다.

시신 악취 제거하기 위해 싱크대·신발장부터 콘크리트까지 제거해

고독사가 발생했을 때 주변 사람을 가장 괴롭게 하는 건 부패한 시신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다. 이 냄새는 청소를 한다고 가시지 않는다. 특수약품으로 처리를 하고 자외선·오존 살균기로 공기를 정화시켜야 한다. 심지어 집안의 모든 장판과 벽지, 콘크리트 바닥까지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 과정은 어떻게 되나


“먼저 시신이 부패한 자리를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가령 시신이 침대 위에서 발견이 됐다면 이불을 버리고 매트리스도 스프링 등을 분리 작업해서 처리한다. 대부분의 현장에는 시신에서 흘러나온 혈액과 부패하면서 생긴 액체가 바닥에 엉겨 붙어 있다. 이걸 약품 처리해서 다 닦아낸다.


그다음 단계로 유품정리를 한다. 정리 중에 발견된 귀금속이나 현금, 도장, 부동산 계약서 등은 유가족에게 전달한다. 사진이나 다이어리 같은 정서적 유품도 마찬가지이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은 의뢰인이 원하는대로 처리한다. 유품 종류와 상태에 따라 재활용 처리, 폐기물 처리, 중고 매입 등을 진행한다.


따로 직원을 두고 있지는 않다. 대신 현장 작업을 할 때 협력 업체로 두고 있는 고물상과 폐기물 업체 직원들이 함께 일한다. 대략 아침 9시 30분부터 6시까지 작업을 하는데, 보통 하루 작업해서 유품정리 단계까지 끝마친다.”


-그 과정이 끝인가


“아니다. 시신이 부패할 때 생긴 악취가 온 집안에 배기 때문에 악취 제거 작업을 반드시 따로 해야 한다. 우리 같은 전문 업체가 생기기 전부터 일반 포장 이삿짐 센터나 장례식장에서도 유품정리 일을 대행해줬다. 그들은 유품정리 단계까지만 작업을 한다. 시신 악취를 없애겠다고 방 안에 섬유 탈취제를 뿌린다고 하더라. 웃기는 소리다. 시신 악취는 그렇게 해서 제거되지 않는다.  

출처: 스위퍼스 제공
장판과 벽지에도 시신 부패 냄새가 배기 때문에 아예 다 뜯어내는 경우가 많다. 구조물 처리 작업이 끝나면 자외선·오존 살균기로 공기 정화를 시킨다.

유품정리를 마치고 나면 우선 인테리어 시설물을 처리한다. 싱크대나 신발장 외관이 코팅처리돼 있으면 그나마 낫다. 약품 처리를 해서 닦아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설치된 것일수록 코팅 처리가 안된 것들이 많다. 이 경우엔 시신 악취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뜯어내서 제거하지 않으면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집안에 숨어 있는 구더기도 이 단계에서 제거한다. 번데기가 되기 전 구더기들은 본능적으로 구석으로 숨어든다. 문틈, 싱크대 밑 등이 구더기가 숨어들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여기를 꼼꼼히 청소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장판과 벽지도 제거해야 한다. 인테리어 시설물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시신 악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사체에서 나온 부패액이 장판 틈새로 콘크리트에 스며들면 아예 콘크리트까지 제거하는 공사를 하기도 한다.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는 집안 전체 청소를 하면서 자외선·오존 살균을 한다.


5평(약 17㎡)~10평(약 33㎡) 규모의 원룸 작업 비용은 200만~400만원 수준이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장판과 벽지 처리 작업을 최소화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원하는 대로 작업을 해줘도 결국 시신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다시 연락이 온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면적의 부패액만 묻어 있어도 온 집안에 시신 악취가 풍긴다. 감안해서 이 모든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출처: 스위퍼스 제공
길해용 대표는 고독사 현장을 수습하면서 우리 사회에 붕괴된 가정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족 붕괴 현상을 많이 체감 한다던데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우리 사회의 가족 붕괴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주가 자기 돈을 부담하면서 유품정리를 의뢰하는 경우가 50%를 넘는다. 가족이 시신 인수 자체를 거부했거나, 남아 있는 보증금을 가지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떠넘기기 때문이다.


씁쓸한 사연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망한지 두 달 후에 발견된 고인이 있었다.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건물주가 알아서 처리하겠으니 마지막으로 아버지 살던 곳 정리하는 거라도 와서 보라고 조언했다. ‘왜 그래야 하죠?’ 아들은 이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유품정리를 한창 하고 있는데 서랍에서 통장과 도장이 나왔다. 통장에는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건물주에게 말해서 아들이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어휴, 세상이 말세야!’ 한참 후에 건물주가 아들 욕을 하면서 왔다. ‘택시를 타고 20분 만에 왔더라고. 아저씨가 정리해준 사진은 그냥 버려 달라고 하더구먼.’


기러기 아빠가 남긴 짐을 정리하는 날도 마음이 먹먹했다. 그는 고시원 화장실에서 심장이 멎어 그대로 숨졌다. 고시원장이 의뢰를 해오긴 했지만 비용 부담은 유가족이 맡기로 했다. 현장에 가 보니 가족들이 방에 올라와 보지도 않고 1층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들이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대화 내내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 거였다.


기러기 아빠가 남겨놓은 물건 중에 사치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손목시계 하나쯤은 남겨 놓는데 그분은 그런 것도 없었다. 치약, 비누 같은 단출한 세면도구와 옷 몇 벌, 라면 2봉지가 전부였다. 아내와 아들은 정리를 다 마치고도 끝내 방에 올라와 보지 않았다. ‘가족이 아니라 차라리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도전한다면 ‘사명감’ 가지고 뛰어들었으면

과거 고독사는 저소득층 독거노인에 집중됐다. 최근엔 1인 가구가 늘면서 노인 뿐만 아니라 청장년층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독사에 대해 제대로 정리된 통계가 없다. 비슷한 개념의 무연고 사망자로 고독사 통계를 유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693명이었던 우리나라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엔 1232명으로 증가했다. 5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거다.


-앞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국내에서 유품정리와 특수청소를 전문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업체는 10개 미만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일반 포장 이삿짐 센터나 고물상 등에서도 유품정리를 대행하고 있다. 그런 비전문 업체까지 포함하면 이미 업계는 레드오션이 됐다. 하지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고 확신한다.


이 분야에 뛰어들고 싶다면 꼭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일이 아니다. 고인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면서 남겨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서 살아갈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다. 특히 유품정리 작업은 악취나 오염 물질 등을 다뤄야 하는 일이어서 매우 고되다. 주변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맞냐’ ‘이보다 더한 극한직업이 있겠냐’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굳건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오랜 시간 이 업계에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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