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세계여행하고 2개월 쉬면서 돈버는 직업?

조회수 2020. 9. 22. 11: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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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면서 영어 배우고, 세계 여행하는 직업
세계 누비는 크루즈 승무원 홍자연氏
쉴 때는 통·번역 알바에 작가로도 활동
프리랜서처럼 자유로운 삶 누리는 '크루즈 승무원'

홍자연(30)씨는 ‘로얄 캐리비안’(Royal Caribbean)이라는 미국 크루즈 회사의 승무원이다. 10만톤 넘는 크루즈선(船)을 타고 전세계를 누빈다. 한 번 배를 타면 5~6개월 일한 뒤, 2개월 가량 쉬고 다시 배를 탄다. 사정이 있으면, 회사와의 협의를 통해 근무·휴가 기간을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다. 쉬는 기간에는 틈나는 대로 번역과 통역 일을 하고 책도 쓴다. 프리랜서에 가까운 삶이다. '직장있는 프리랜서'인 셈이다.


홍씨는 “크루즈 승무원은 한 번에 길게 쉴 수 있어서 다른 일 하기에 좋고, 돈 벌면서 세계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롭고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말한다.


항공기 승무원과 달리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크루즈 승무원의 세계에 대해 잡스엔(jobsN)이 홍씨에게 자세히 묻고 들었다. 2012년 4월 크루즈에 승선하며 첫 출근을 한 홍씨는 2016년 7월 하선(下船) 이후 1년 가까이 쉬면서 책을 쓰기도 했다.

크루즈 승무원 홍자연씨

-크루즈 승무원은 어떤 일을 하나요?

“크루즈는 대형 호텔과 온갖 편의 시설을 갖추고 다양한 쇼와 문화 행사가 열리는 바다 위의 작은 ‘타운’과 같습니다. 배에는 아이스링크와 암벽등반장도 있어요. 스타벅스, 쟈니로켓과 같은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있고요. 크루즈 승무원은 승객들의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크루즈의 호텔 파트에 속한 승무원입니다. ‘해상(海上)의 호텔리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크루즈에서 프론트 데스크와 컨시어지(concierge·교통·식당·쇼핑 등 손님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직원) 업무를 맡고 있어요.”


-크루즈 규모는 보통 어느 정도인가요?

“배의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보통 10만톤급 이상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처음 탄 ‘보이저(VOYGER)호’는 13만톤이었고 승객은 최대 3100명 가량 탈 수 있는 배였어요. 직원은 1180명까지 탈 수 있고요. 로얄 캐리비안에는 20만톤 넘는 배도 있어요.”

출처: 로열 캐리비언 홈페이지 갤러리
로열 캐리비언의 크루즈들

-근무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퇴근해도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배 안에 있으니까 직장인과는 생활이 다를 것 같은데요.

“일단 근무는 스케줄이 변동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하루 8시간은 일합니다. 바쁜 날은 10~11시간도 일하고요. 마지막으로 배를 탔을 때, 제 스케줄을 예로 들어 볼게요. 컨시어지 업무를 했는데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오전 11시30분까지 일했어요. 그리고 오후 5시까지 쉬었습니다. 오후 5시 다시 출근해서 8시30분까지 일했고요. 일이 끝나도 바다 위에 있으니까 당연히 집에 가진 못하고요. 배 안에서 자유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승무원들이 활동하는 공간(crew area)과 승객들이 이용하는 공간이 기본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승무원 공간에는 바(bar)도 있고,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편의 시설이 있습니다. 승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식당과 공연장에도 갈 수 있는데, 대신 직원 유니폼을 입고 가야해요. 기본적으로 일 안 할 때는 배 안에서 자유롭게 있을 수 있고, ‘승객 공간’으로 갈 때는 유니폼 입기’와 같은 약간의 룰만 따르면 됩니다.”


-몇 개월이나 배를 타는데 멀미가 심하진 않나요.

“약간의 진동은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이 심하면 배가 살짝 한 쪽으로 기우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심한 편은 아닙니다. 배가 워낙 크다 보니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땅 위에 있는 것과는 아무래도 다르죠. 작은 진동에도 예민하신 분이라면 힘들 수도 있어요.”

출처: 홍자연씨 제공
다양한 국적의 승무원들이 함께 일하는 크루즈

-크루즈 승무원의 급여는 얼마나 되나요?

“회사나 사람마다 차이가 있죠. 저희 회사 기준으로 말씀 드리면 신입사원의 월 급여는 1900~2000달러 정도에요. 팁을 받을 수 있는 일도 많아서 실질 소득은 직무마다 차이가 큰 편이고요. 크루즈 승무원도 직급이 있는데, 승급을 하면 월급은 조금씩 올라가고 의료비 혜택 등 다양한 복지 제도를 누릴 수 있어요.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성과를 내면 가능한 일이에요. 특정 직급 이상부터는 쉬는 기간에도 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급여를 받는 비율은 높은 직급일수록 올라갑니다. 우리나라 회사들처럼 오래 일했다고 저절로 승급되는 일은 없어요. 철저히 성과와 실력 위주에요.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일해야만 빨리 승급할 수 있어요.” 

출처: 홍씨 제공
크루즈 기항지에서의 여행(왼쪽), 대학시절 미국 디즈니랜드 인턴으로 일할 때의 홍씨(오른쪽)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있는 일이고, 배에서 하는 일임을 감안할 때 월급이 많지는 않은 것 같네요.

“월급만 놓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월급을 거의 다 모을 수 있어요. 주거비, 교통비, 식비가 하나도 안 드니까요. 그 외에도 돈 쓸 일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서 ‘세계 여행하면서 돈까지 번다’고 볼 수도 있어요. 배를 타면 세계 각국의 도시에 한나절 이상 정박하는데, 그때 근무자가 아니면 밖에 나가서 놀다가 배 떠나기 전까지만 돌아오면 됩니다. 오랜 시간 머물지는 못하지만 공짜로 세계 여행한다는 기분이 들고,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5년여간 일하는 동안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도 득이에요. 이제는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습니다.” 

출처: 홍자연씨 제공
크루즈를 타면서 잠시 기항지에 정박하면 짧게 여행을 할 수 있다.

-연중 근무 스케줄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크루즈 승무원은 회사로부터 LOE(Letter of emlpoyee·일종의 승·하선 확인서, 계약서)를 받아야만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LOE에는 내가 타는 배, 승선 장소와 일시, 대략적인 하선 날짜가 나와있죠. 하선은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인데, 아주 큰 변동이 있지는 않아요. 보통 LOE에 적시된 하선 날짜로부터 2주쯤 전에 정확한 하선일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하선일이 정해지면서 다음 LOE가 나와요. 즉 다음 승선 스케줄이 그때 나오는거죠.


친인척이나 가족 결혼식이라든지 급한 개인 사정이 있으면, 회사와 협의해 조금씩 스케줄을 조정할 수는 있어요. 즉 내가 올해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배를 타고, 정확히 어떤 기간에 쉬는지를 처음부터 알 수는 없어요. 대략적으로 ‘그 즈음에 쉬고 있을 것’ 정도는 알 수 있죠. 이런 식으로 긴 호흡으로 스케줄 관리를 합니다. LOE에 나와있는 승선 장소까지 오는 비행기 티켓 값은 당연히 회사에서 부담합니다.” 

출처: 홍자연씨 제공
크루즈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한 홍자연씨

-한 번 승선하면 같은 배를 타고 5~6개월씩 항해를 하나요.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회사 사정에 따라서 배를 옮겨 탈 수도 있어요. LOE를 받을 때부터 옮겨 타는 것으로 스케줄이 잡혀있을 수도 있고, 갑자기 배를 바꿔서 타라는 지시를 받을 수도 있어요. 저의 경우, 한 번은 미국 텍사스에서 갑자기 싱가포르에 있는 크루즈로 옮기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텍사스에서 하선 후, 싱가포르에서 승선하기까지 4일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그 시간은 일종의 ‘유급 휴가’였어요. 하지만 그때 그때 달라요.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야 할 수도 있어요.”


-배를 타면 전 세계를 도는 건가요?

“크루즈의 스케줄에 따라서 다릅니다. 보통 크루즈는 하나의 루트를 365일 똑같이 돌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날씨가 따뜻할 때는 중국·동남아 쪽을 도는 ‘아시아 투어’ 하는 배가 많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유럽과 호주 쪽으로 크루즈가 이동을 합니다. 아시아 투어라고 하면,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해서 대만, 홍콩, 일본을 찍는 1주일 코스 식으로 다양한 노선이 있어요. 크루즈가 아시아 투어를 끝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도 항상 여행 상품의 일환으로 이동을 합니다. 즉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배를 옮길 때에도 사람을 아무도 안 태우고 배만 가는 일은 없다는 거죠. 그것도 전부 비용이니까요. 전략적으로 배를 옮기는 시기에도 ‘아시아~유럽’ 코스식으로 상품화해서 승객을 태우고 이동합니다.


LOE에 적시된 근무 기간에는 승선한 배의 스케줄에 따라서 직원들도 같이 움직이는 거죠. 즉 어떤 사람은 아시아투어만 하다가 내릴 수도 있고, 크루즈가 지역을 옮기는 시기에 근무 기간이 속해 있으면 세계 여행을 하게 되는 거죠.”

출처: 홍자연씨 제공
승무원 동료와 함께

-쉬는 기간에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보통 크루즈 승무원들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그 동안 못 만났던 친구와 가족을 만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저 같은 경우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러다가 다른 직장인들과 달리 크루즈 승무원이라서 누릴 수 있는 2개월 가량의 긴 공백기를 알차게 활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1~2년 전부터는 번역이나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지난해부터는 크루즈 승무원의 경험을 글로 남기기 위해 책을 쓰기도 했고요. 길게 쉬는 기간을 활용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어떻게 크루즈 승무원이 되셨나요.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2006년 막연히 숙명여대 국문과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생각했던 공부 내용이 아니었죠. 우연히 영문과 수업을 듣게 됐고, 그러다 복수 전공까지 했어요. 예전부터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 세계 곳곳을 실컷 돌아다녀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영어에 관심이 생기면서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어요.


대학 때 6개월간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로 인턴을 다녀온 것도 해외 생활을 동경하게 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해외를 많이 다닐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 항공기 승무원 시험을 준비했어요. 국내 항공사를 비롯해 외항사도 몇 군데 시험을 쳤는데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는지 합격하지 못했어요. 특히 2011년 말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는 특히 좌절감이 컸습니다. 

출처: 홍자연씨 제공
크루즈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하는 세계 여행

그러다가 학교 채용 사이트에서 ‘크루즈 승무원’을 뽑는다는 글을 보고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지원해서 입사하게 됐어요. 총 3회의 면접을 봤는데, 첫 면접은 ‘로열 캐리비언’의 한국 에이전트 대표와의 면접이었고, 2·3차 면접은 미국 본사 직원과 ‘스카이프’와 전화 면접을 봤어요. 면접 후 합격 통보를 받는 데까지 한 달 정도 걸렸어요.


현지 직원과의 영어 면접은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졌어요. 좋은 서비스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디즈니월드 인턴 생활할 때 힘들었던 점을 묻기도 하고, 배 안에서 오래있어야 하는데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풀 수 있겠느냐 등의 편안한 질문들을 받았어요. 제 생각을 밝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영어 실력도 점검하는 것이었죠. 영어를 어느 정도 유창하게 하지 못하면, 합격하기 어려워요. 요즘에는 경쟁률이 높아져서 영어는 물론 중국어, 스페인어 등 제2외국어도 어느 정도 해야지만 합격하기 쉬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로얄 캐리비안은 외국 직원을 현지 채용 담당 에이전시를 통해서 뽑습니다. 한국 에이전시가 취업 포털사이트 등에 채용 공고를 내고, 지원자들을 1차적으로 선발합니다. 이후 면접은 본사가 진행합니다."


-크루즈 승무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집을 쉽게 그리워하는 분, 집밥 꼭 먹어야 하는 분, 아무데서나 쉽게 못 자는 분, 친구들 없으면 외로움 타는 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어색하고 많은 불편을 느끼는 분, 늦지 않게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분 등은 크루즈 승무원 안 하시는 게 좋아요.


그렇지만 반대로 나는 외로움도 잘 안타고, 어디서나 적응 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한 직장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남들과 같은 인생 경로를 걷지 않아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분이라면 정말 추천하고 싶은 직업이에요. 나중에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큰 도움이 되는 경력을 쌓을 수 있어요. 

출처: 홍씨 제공
크루즈에서의 홍씨. 오른쪽 사진은 크루 바(bar)에서 찍은 사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직장 동료로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기 때문에 쉽게 친해지고, 전세계에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죠. 길게 쉬는 기간에 전문적으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프리랜서와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삶입니다.


젊었을 때 한 번쯤은 해 볼만한 직업인 것 같아요. 제 직업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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