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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니 정여사' 정태호 KBS 나와 찾은 새 직장

조회수 2020. 9. 22. 11: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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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제작한 연극 무대 올리며 시작한 인생 2막
레크리에이션 강사 하다가 KBS 개그맨 공채 선발
SNS 라이브 방송 도전…홍대서 코미디 연극 선보여
다양한 플랫폼 등장…개그맨에게 ‘위기’이자 ‘기회’

‘정여사’ ‘감사합니다’ ‘용감한 녀석들’ 등 KBS 개그콘서트 간판 코너를 이끌었던 개그맨 정태호(39).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지난해 여름, 개콘에서 자진 하차를 했다. 현재 그는 홍대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며 자신이 직접 기획·제작한 코미디 연극 작품으로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다. 

출처: KBS 캡처
데뷔 10년 차 개그맨 정태호는 개콘에서 '정여사' '감사합니다' 등 히트작을 남겼다.

정태호처럼 자진해서 TV 프로그램을 떠나는 개그맨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5월 SBS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를 종영하기로 했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많던 개그맨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플랫폼에 도전한 정태호에게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봤다.   

개그맨도 출퇴근해… 오디션 통과 못하면 일주일 내내 기획 회의

정태호는 데뷔 10년 차 개그맨이다. 세 번의 도전 끝에 ‘KBS 공채 개그맨 선발 합격’이라는 기쁨을 맛봤다. 개콘에서 그는 히트작 제조기였다. ‘정여사’ 코너가 인기를 얻자 ‘브라우니’라고 불리는 개 인형이 도심에 쫙 깔렸다. 그는 어깨 춤을 추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불러댔다. 초등학생들도 흉내를 냈다.


‘용감한 녀석들’을 할 땐 음반도 내며 뮤직뱅크에서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열심히 짠 코너가 인기를 얻지 못했을 때도 힘들다. 하지만 코너가 ‘대박’이 났을 때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떻게 식을지 모르는 인기를 붙잡아야 한다는 고민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늦은 나이에 개그맨이 됐던데


“세 번의 도전 끝에 KBS 23기 공채 개그맨이 됐다. 당시에는 공채 지원하는 데 나이 제한이 있었다. 만 서른 살까지만 지원이 가능했다. 마지막 도전 때 딱 그 나이였다. 원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했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사람들과 말하고 소통하는 걸 좋아했다.


‘현대 생활 백수’라는 코너로 인기를 얻은 개그맨 고혜성 형님이 개그계로 진출해보라고 했다. 그때 KBS에선 ‘개그사냥’이란 아마추어 개그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KBS 개그맨 공채 21기부터 23기까지 거기 출신이 많은데, 저도 그중 한 명이다.”


-개콘 출연을 위해 개그맨들은 일주일 동안 어떻게 준비를 하나


“개콘에 출연하는 개그맨들도 일반 회사원처럼 출퇴근을 한다. 출근 시간은 오후 12시쯤으로 늦다.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 회의를 하다 보면 밤을 새울 때도 허다했다.


다른 프로그램에도 출연 할 수는 있다. 제작진이 많은 배려를 해준다. 하지만 개콘에 적을 두고 있는 개그맨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템 회의다. 아이디어가 회의를 통과한다면 걱정이 없다. 만약 회의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주말에 출근할까, 말까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아이템 회의가 제대로 안되면 다들 자진해서 출근한다.


개콘은 매주 수요일에 녹화를 한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서로 전날 녹화 내용을 가지고 피드백을 하면서 새로운 아이템 회의를 한다. 전날 녹화한 내용 중에서 뭘 더 부각해야 할지, 시기적으로 어떤 주제를 이어가야 할지 등을 논의한다. 개콘 무대에 서려면 제작진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오디션 통과가 안되면 녹화 전날까지도 매일 오디션을 본다. 끝내 통과가 안돼서 1년 내내 오디션만 보는 친구들도 있다.”

홍대 소극장서 직접 기획한 연극 선보이며 ‘제작자’로서 인생 2막 시작

출처: jobsN
지난해 10월 홍대에 본인의 이름을 딴 소극장 문을 열고, 직접 제작한 연극을 선보이고 있는 정태호.

지난해 10월, 정태호의 이름을 딴 소극장이 홍대에 문을 열었다. 60평 규모의 지하 1층에 121석을 마련했다. 직접 공연장 페인트칠부터 하수구 뚫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이 무대에 자신이 직접 기획·제작한 공연을 올렸다. ‘제작자’로서의 인생 2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개콘에서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게 됐는데


“개콘에서 보통 5분, 길게는 7-8분 되는 분량의 코너를 준비하는 데 일주일 동안 온 에너지를 쏟는다. 시청자들의 취향도 바뀌고 SNS,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2~3초짜리 ‘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라. 많이 속상했다. 분명 창의적인 일을 하곤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졌다. 과감하게 개콘을 정리하고 평소에 생각해오던 시나리오 제작에 몰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놈은 예뻤다’라는 코미디 연극을 기획·제작했던데 어렵진 않았나


“개콘에서 활동할 때부터 이미 계속 구상해오던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완성하는 데 2-3개월 정도 걸렸다. 방송작가 출신인 아내가 서브 작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가 키보드가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 아내가 타이핑을 전부 해줬다. ‘그놈은 예뻤다’는 서울에 상경한 가난한 남학생의 이야기다. 월세 낼 돈이 부족해 여장을 하고, 여자들만 사는 셰어 하우스에 들어가는 내용이다. 셰어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면서 ‘인간관계 안에서 서로 작은 것에도 감사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연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제작자의 마음을 잘 알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도 주인공역을 맡아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 하지만 개콘 시절과는 태도가 많이 다르다. 예전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혹여 공연 끝나고 관객들이 계단 내려오다 다치지는 않을까’부터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까지 신경을 쓴다. 제작진은 공연 시간 이외에도 전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배웠다.


개콘 시절부터 각별했던 개그맨 송병철과 김대성 등이 공연을 도왔다. 고맙다. 저와 이 친구들은 공연을 하고도 페이를 안 받고 있다. MBC 공채 출신 여성 개그맨들이 합류했는데, 그들에게 먼저 급여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주로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 재관람하시는 분들이 많다. ‘재미있으면 모두 알아서 찾아오겠지’하는 마음으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다. 하지만 신념과 사업 수완은 다르더라. 더 큰 웃음을 드리기 위해 시나리오도 조금씩 업그레이드해 나가고 있다. ‘정태호 소극장 PLAY’가 단순히 연극을 선보이는 공연장이 아니였으면 한다. 다양한 캐릭터의 개그맨들이 모여 일하는 콘텐츠 제작소였으면 좋겠다.”

출처: jobsN·타조엔터테인먼트 제공
개콘 시절부터 각별했던 개그맨 송병철과 김대성도 '그놈은 예뻤다'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간 개그맨들…위기인가, 기회인가

개그맨들이 이제 브라운관을 떠나 모바일로 이주를 시작했다. 기존 TV 개그 생태계를 스마트폰이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끼 많은 일반인들이 선점한 인터넷 BJ 분야에 개그맨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개그우먼 강유미는 유튜브에 ‘좋아서 하는 채널’을 개설했다. 성형수술, 화장법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시청자와 수다를 떤다. 현재 누적 조회 수가 378만을 넘겼다. 

출처: '개라방' 페이스북 캡처
개콘 주역들이 뭉쳐 SNS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소셜 미디어도 무대다. 유상무, 허안나, 장동민 등 개콘의 주축이던 개그맨들은 페이스북에서 뭉쳤다. 이들이 진행하는 ‘개그맨들의 라이브 방송(이하 개라방)’은 43만명이 넘는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다. 정태호는 여기서 ‘요정(요리하는 정태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SNS에서 ‘요정’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개라방’은 유상무 선배 제안으로 10개월 전부터 참여했다. 새로운 영역에서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을 했다. SNS 라이브 방송이란 게 처음에는 조회 수가 중요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나 공유됐느냐가 더 중요하더라. SNS는 확실히 방송보다 제약이 적어서 시청자를 허물없이 대하기 좋다.”


-TV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개그계의 위기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위기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설 자리를 잃은 개그맨들이 대거 SNS나 팟캐스트를 이용해 대중 앞에 서고 있다. 개인적 생각에는 지금이 개그맨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주체적으로 이슈를 선도하는 개그맨이 된다면 제약이 많은 기존 TV화면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젊은 친구들의 웃음 코드를 맞추는 데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들은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걸 선호하는 시청자 층이다. 그걸 선도하려면 개그맨 스스로가 먼저 각종 SNS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시청자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에 서수민 PD가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감사합니다’란 코너를 보고 아이들은 깔깔깔 웃지만 아빠들은 재미없어 한다는 거다. 반대로 ‘두 분 토론’이란 코너를 보고 아버지들은 배꼽 빠지게 웃는데 아이들은 ‘저게 뭐야’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서수민 PD는 개콘은 이 모두를 아우르는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자부했었다.


이 개념을 좀 더 넓게 확장시켜 보고 싶다. 개콘의 개그를 좋아하는 시청자이든 SNS의 자극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시청자이든, 각각의 플랫폼에 맞는 개그 스타일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팔짱 끼고 ‘그래 너 한 번 웃겨봐라’라는 태도가 아니라 웃음에 관대해지는 것 말이다. 개그맨들이 이런 아이템을 짜내기까지의 과정도 한 번 생각해줬으면 한다. 물론 개그맨들이 먼저 부단한 연습과 고민을 해야 한다.”


-개그맨을 꿈꾸고 있는 지망생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개그 말고 다른 무기를 꼭 하나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입담이 좋은 요리사들이 예능에 뛰어드는 시대다. 개그나 예능 영역은 누구나 쉽게 넘나들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반대로 개그맨이 연기나 노래에 도전하면, 아무리 잘 해도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외국에서는 유명한 개그맨이 연기 대상을 거머쥐는 경우도 많지 않나. 우리 후배들은 개그는 기본이고 그런 무기들을 장착해서 플랫폼뿐만 아니라 영역 자체를 넘나들며 인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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