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점심메뉴 맘대로 골라 퇴사" vs "철없다"

조회수 2020. 9. 22.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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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걸려온 상사의 전화는 번지점프보다 더한 공포.. 심리상담으로 살펴본 직장 생활
통제형 리더십은 더 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점심 식단 고르는 상사 때문에 이직 고려
‘집단주의 vs 개인주의’… 과도기 겪는 직장 생활
통제 아닌 동기부여 리더십 필요한 시대

“직장 3년 차 회사원입니다. 퇴근시간 다음으로 직장생활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건 점심시간이죠. 그런데 저희 부장님은 점심 약속이 없으면 모든 팀원들을 데리고 식사를 가려고 하십니다. 문제는 메뉴 선정입니다. 항상 뭘 먹고 싶으냐고 묻긴 하십니다. 하지만 언제나 부장님이 좋아하는 대구탕 집으로 향합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묻지를 마시든가. 밑에 사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부장님 때문에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윤대현(48)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실제로 받았던 사연이다. 부장의 독단적인 점심 메뉴 결정으로 이직을 고려한다는 젊은 사원. 이를 보고 철이 없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윤 교수는 존중받길 원하는 부하 직원들의 욕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통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입니다. 상사는 돈 쓰면서도 리더십이 안 생기는 기가 막힌 상황을 맞고, 부하 직원들은 먹는 것까지 통제받아 황당한 느낌을 갖는거죠.”

출처: 윤대현 교수 제공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5년 차 베테랑 정신과 의사 윤대현 교수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일 아침, 단 5분 동안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을 위로했다. 그가 미디어 심리 상담을 시작한 지도 언 15년. 윤 교수에게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젊은 직장인과 집단주의가 당연했던 상사 간의 아슬아슬한 직장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휴일에 걸려온 상사의 전화, 번지점프보다 더한 공포

회사 내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가치관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삶을 우선하는 젊은 직장인들과 ‘조직이 곧 나’라는 생각을 가진 상사들 간에 벌어지는 충돌이다. 윤 교수는 요새 직장 내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직급이 ‘중간 관리자’라고 설명했다.


“상담을 해보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층이 ‘중간 관리자’더라고요. 부장급들이 미치겠단 말을 많이 하세요. 임원들은 ‘개인보단 조직이 더 중요하다, 희생이 당연히 필요한 거다’ 이야기를 하죠. 그걸 전달해야 하는 게 중간 관리자들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젊은 친구들이 분노를 한대요.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느냐. 그러고도 리더의 자격이 있나”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거죠.”

출처: jobsN 육선정 디자이너
쉬는 날 상사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번지점프 수준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지난 6월 한 대기업은 휴가나 대체휴가 등 쉬는 날과 퇴근시간 이후에 SNS·이메일·전화·문자 등을 통한 업무 연락을 일절 금지했다. 직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고자 전 계열사에서 근무시간 이외에 업무지시를 금지한 것이다. 개인 시간과 업무 시간을 철저히 분리하려는 직장인들에게 쉬는 날 걸려온 상사의 전화는 극도의 공포를 낳는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가 영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어요. 최면을 걸어서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치 실제인 양 느끼도록 한 거죠. 심장 박동과 피부 저항 등 신체에 나타나는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사람들은 휴일에 스마트폰에 찍히는 상사 전화번호를 번지점프나 교통사고보다 더 두려워했습니다. 루이스 박사는 ‘상사가 별생각 없이 보낸 메시지에도 직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자유를 한껏 만끽하고 있는데 그 자유를 억압하는 뭔가가 들어올 때 스트레스는 더 커지죠. 일을 하고 있는 테두리 안에선 상사의 지시가 예측 가능해요.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시를 받으면 스트레스가 더 커지고,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집니다.”

‘통제’하는 리더십 효과 없어… ‘동기부여’형 리더십 돼야

일로부터 개인의 삶을 사수하려는 직장인들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리더십 자리에 있는 상사들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윤 교수는 서울 강남권에 사는 부유층과 기업 임원 등을 대상으로 우울증과 불안증,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한 정신과 상담을 자주 한다. ‘대한민국 상위 1%를 가장 많이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로도 알려져 있다.


“하루는 직장에서 임원까지 하신 분이 자기가 나름 회사에서는 ‘유재석’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항상 사람들을 웃겼다는 거죠. 그런데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에 가서 같은 조크(joke)를 날리면 아무도 안 웃더라는 거예요. 심지어 ‘그걸 지금 웃긴 소리라고 하냐’란 이야기도 들었대요. 사실은 밑에 직원들이 회식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든 다 웃어준 거죠. 직장에서는 분명한 상하관계가 존재하는데,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의 괴리를 극복한다는 게 쉽지는 않죠.


저는 그 간극을 좁히는 열쇠가 ‘리더’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행동 변화 일으키는 거잖아요. 그런데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강력한 통제형 리더십이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동기부여를 시키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해진 시대죠.


집단과 개인을 동일하게 여기는 상사들이 이런 통제형 리더십을 잘 못 버립니다. 하지만 그 가치관에 공감하지 못하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통제는 곧 폭력이자 자신에 대한 무시로 여겨집니다. 시대가 바뀌는 흐름과 속도를 바라볼 때 앞으로 개인주의는 더 거세질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독단적인 리더십을 오히려 강화하는 리더는 너무 어리석죠.


최근에 ‘이케아(IKEA)’에 입사하신 분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입사하고 나서 첫 질문이 ‘당신 휴가 언제 갈 거냐’였대요. 굉장히 상징성이 있죠. 이 회사는 개인이 살아야 전체 조직이 살 수 있다는 걸 아는 회사죠.”

일을 미루는 습관,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고 너무 많아서 생긴 일

출처: 출처 픽사베이
윤대현 교수는 직장인들이 일을 미루는 이유가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개개인 직원이 잘 되는 데에는 회사의 역할만 중요한 건 아니다. 개인 스스로 최상의 능률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직장인 L씨는 일반 회사 사무직 일을 하고 있다. 아침에 하루 일과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만 계속 일이 밀린다. 당장 부장님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지만 도통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L씨는 자신이 의욕도 없고 너무 무기력 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 교수의 진단은 정반대였다.


“일을 끝까지 미루는 습관, 즉 ‘벼락치기’를 하는 건 일을 너무 잘하려는 욕구 때문입니다. 완벽주의 때문에 그런 것이죠. 완벽주의는 ‘강박’을 만들어냅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하다 보니 몸이 얼어붙어서 머리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죠.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강박이 빚어내는 불안을 떨치는 것입니다. 어이없는 처방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효과가 뛰어난 방법 중 하나가 ‘멍 때리기’예요. ‘Task-negative’라고 말하는데 과업을 수행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멍 때릴 땐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불안이 잠시 수그러드는 거죠.


거창한 계획이 아닌 자잘한 계획들을 세워서 하나하나 성취하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도 중요해요. 불안이 증폭되면 뭔가를 성취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서 ‘혐오감’이 생기게 되거든요. 그걸 막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성취해 나가는 행동이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시켜 나가는 근간이 됩니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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