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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입 1000만원까지..때수건 하나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목욕관리사

조회수 2018. 11. 2. 13: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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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숭고함' 일깨우는 직업

목욕관리사 일일 체험기

타월 잡는 법·자세부터 제대로 배워야

최소 월급 250만~300만원 버는 직업


“어어, 잠깐만요. 허리 펴요, 허리.”


서울 대림동에 있는 한 목욕관리학원. 16년 경력의 ‘목욕관리사’ 조모(54)원장이 말하자 한 중년의 수강생이 동작을 멈췄다. “그렇게 허리를 굽힌 채로 때를 밀다간 손님 2~3명 받고 힘들어서 더 못해요. 자 이렇게 허리를 펴고 한 손은 이렇게 옆으로 받쳐야죠.”


과거 ‘때밀이’라 불리던 ‘목욕관리사’는 나름 ‘고수익 직종’ 중 하나다. '세신사'라고도 부른다. 30~40분 정도 때를 밀어주고 2만원을 받는다. 얼굴·전신 마사지 같은 ‘옵션’이 늘어날 수록 가격은 높아진다. 남녀 포함 전국에 5만명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최소 250만~300만원을 벌 수 있어요. 겨울에 여자 세신사는 600만~700만원을 벌기도 합니다. 수강생 중엔 1000만원 받는 분도 있어요.”


몸은 고되고 힘들어도 ‘일한 만큼 번다’는 인식 때문에 노후를 대비하는 중년들 사이에선 ‘제 2의 직업’으로 인기가 높다. 경기불황과 구직난 속에서 ‘목욕관리사’를 하겠다는 20~30대 청년들도 많다. 조 원장은 “수강생 10명 중 1~2명은 20~30대”라며 “대학을 졸업하고 배우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서울 대림동에 있는 ‘중앙목욕관리학원’에서 일일 목욕관리사 교육을 받아 봤다. 

출처: jobsN
이태리타월 잡는 법.

◇'박박' 밀지 말고 2박자 리듬타며 당기듯 밀어라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20평 짜리 공간에 5개 평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명은 손님으로, 다른 한명은 목욕관리사로 역할을 나눠 연습했다.


목욕관리학원의 한달 가격은 평균 130만~150만원. ‘때미는 법’이 기본이다. 때를 밀고 난 후 서비스로 피부관리나 마사지를 해주기도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마사지, 피부·발 관리법도 가르친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른 수강생들처럼 평상 앞에 섰다. 먼저 이태리타월 잡는 법부터 배웠다. “엄지는 왼쪽 모서리에, 나머지 손가락은 오른쪽 모서리에 낀 다음 팽팽히 펴요. 중지를 약간 앞으로 내밀어 굴곡진 부분도 꼼꼼히 닦을 수 있도록 합니다.” 

출처: jobsN

‘때밀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욕 문화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때를 밀기 시작한 역사는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영향을 받아 공중목욕탕이 생겼을 때는 수건을 돌돌 말아 썼다.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 ‘비스코스 레이온 섬유’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때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김필곤(1932~2001)사장이 섬유를 이용해 ‘이태리 타월’을 만들었다. 해외로도 수출하는 한국의 발명품이다.


“손님의 피부 상태에 따라 타월을 크게 3개로눠 써요. 바닷가에 살거나 불을 가까이 하는 분들은 피부가 두껍고 거칠어서 마찰이 큰 타월을 씁니다. 아이들이라면 마찰없는 부드러운 타월을 써야 해요.”


이태리타월을 낀 채 모델에게 달려들자 조 원장이 막아 섰다. “자, 타월은 일단 내려 놓으세요. 초보가 바로 이태리타월로 손님 때를 밀기 시작하면 피부 다 벗겨져요. 맨손으로 때미는 순서와 방법부터 배워 볼까요.”  

출처: 중앙목욕관리학원 제공

때를 미는 자세부터 달랐다. 허리는 곧게 펴고 발은 어깨 넓이로 벌렸다. 몸에 힘을 풀고 무릎을 약간 굽혀 기마자세로 섰다. 조 원장은 “바른 자세로 밀면 손님 20명을 받아도 끄덕없다”고 했다.


때를 미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하늘을 보고 누운 손님의 오른발 끝부터 시작해 정강이-허벅지-배 순으로 넘어간다. 오른 쪽 옆구리와 겨드랑이, 가슴, 팔, 목을 밀고 나면 반대쪽으로 넘어가 왼쪽 어깨부터 발끝까지 내려간다. 그 다음 손님을 옆으로 눕게 한 다음 밀고 엎드리게 한다음 등과 엉덩이를 비롯한 뒤쪽 신체를 민다.


오른발 뒤꿈치와 복숭아뼈 사이 움푹 패인 곳부터 슬슬 밀기 시작했다. “왼쪽 손은 손님 다리 옆에 두고 지탱하세요. 이렇게 해야 피로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 손끝으로만 밀지 말고 손바닥을 이용해야 합니다. 타월과 신체가 최대한 많이 닿을 수 있게요.”


때를 밀 때는 바깥으로 벅벅 밀기보다 내쪽으로 당기듯이 밀어야 했다. 특히 살이 많은 곳을 밀 때는 살을 퍼올리듯 부드럽게 밀어야 했다. 힘을 덜 들이면서 잘 미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지금 자세가 어설픈데 리듬을 안타서 그래요. 2박자로 몸의 반동을 이용해 가볍게 춤을 추듯 밀어 봐요. 억지로 손에 힘을 주지 말고 손님에게 기댔을 때 손의 압력을 이용하세요.” 

출처: 중앙목욕관리학원 제공
실습 중인 수강생들.

◇때밀이도 기술이다


얼마 배우지도 않았는데 후끈후끈 땀이 나기 시작했다. 허벅지를 지나 배를 향해 가는데 저지 당했다. “툭 튀어나온 치골 부분을 그렇게 밀면 벗겨져요. 스치듯 지나가세요.”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였다. 치골, 쇄골, 어깨처럼 도드라지는 돌출 부위는 다른 부위와 똑같은 힘을 주어 밀면 안된다. 쉽게 빨갛게 변해 피부가 벗겨지기 때문이다. “등을 밀 때도 조심해야 해요. 적당히 판판하고 때가 잘나와서, 한없이 밀면 나중에 빨갛게 변합니다.”


손은 번갈아가면서 사용해야 했다. 주로 사용하는 손만 쓰면 쉽게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아직 앞면만 밀었는데도 후끈후끈 얼굴이 뜨거워지고 땀이 났다. 자세는 자꾸 흐트러지고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밀었던 부위를 다시 미는 등 실수를 반복했다.


앞-옆-뒤를 밀고 난 후 ‘이제 끝났나’ 싶어 한숨을 돌렸다. 시계를 보니 30분이 지나 있었다. 하지만 모델은 다시 하늘을 보고 누웠다. “마무리가 남았어요. ‘시야기’라고 부르는데 앞부분만 빠르게 다시 미는 걸 말해요.”


시야기는 마감질을 뜻하는 일본어 시야게(仕上げ)에서 왔다. 한국에서 편한식으로 부르다 보니 '시야기'로 변했다. 

출처: 중앙목욕관리학원 제공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얼굴 마사지, 비누칠, 비누 마사지, 뒤꿈치 긁기, 스팀 서비스 까지 반 이상의 과정이 남아 있었다. ‘뒤꿈치 긁기’는 거친 돌로 각질을 제거하는 걸 말한다. ‘스팀 서비스’는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을 등에 올린 다음 마사지를 해주는 ‘마무리 서비스’다. 모두 하고 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온몸이 끈적거렸다. 온도가 높고 습한 목욕탕이었다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게 분명했다.


“어때요. 해보니 만만하지 않죠?”


이런 일을 하루에 열댓번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교육을 받기 전에는 ‘때 한번 밀어주고 2만원씩이나 받다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최소 3~4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4~5시간씩 연습해야만 현장에서 정식 목욕관리사로 일할 수 있다. ‘손맛’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반복연습은 필수다. 실력 있는 목욕관리사일수록 '손맛', 즉 '손 감각'이 예민하다.


"옷을 다 벗은 손님들이 머리에 물까지 묻히면 다 똑같아 보여요. 그런데 목욕관리사는 단골 손님 얼굴은 몰라도, 몸을 만져보면 알아채요.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듯, 체형이 다르니까요."


수업을 빼먹거나 연습을 게을리하면 감각을 잃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 기간이 늘어난다. 이날 수강생들은 30분만에 점심식사를 해치우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쉬는 시간도 아까운 듯 서로 모델, 목욕관리사 역할을 번갈아가며 연달아 연습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캡처
2015년 미국 개그맨 코난 오브라이언이 배우 스티븐 연과 함께 한국 목욕·사우나 문화를 체험했다.

◇예비·초보 목욕관리사를 위한 조언


'목욕관리사' 자격증은 없다. 학원에서 일할 목욕탕을 소개해 준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 버는 수입은 목욕관리사의 몫이다. 목욕탕 주인에게는 하루 1만~2만원을 ‘수도·전기·자리세’ 대가로 주는데, 이를 ‘일비’라 부른다. 일비가 없는 목욕탕도 있다. 10만~15만원씩 일당으로 받기도 한다. 이럴 땐 손님이 1명이든, 30명이든 하루에 버는 돈은 똑같다.


“목욕탕 주인은 입욕비로 돈을 벌어요. 목욕관리사에게 돈을 걷어서 버는 돈은 얼마 안됩니다. 잘하기로 소문난 목욕관리사가 있으면 주인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예요. 실제로 목욕관리사를 따라다니는 손님들이 많아요. 자칫 일비를 지나치게 걷어서 목욕관리사가 떠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때밀이 문화’는 관광상품이다. 중국와 일본에서는 단체로 ‘때밀이 관광’을 올 정도다. 목욕관리과정을 제대로 배운 전문가의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망직종’으로 꼽히는 탓인지 이 학원엔 유치원 선생님, 전기기사, 수기치료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강생들이 많았다. 

출처: 목욕의 신 일부 캡처
'목욕관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네이버 웹툰.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

조 원장은 학원을 알아볼 때 몇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고 했다.


“계속 추가요금을 내라는 곳은 피하세요. 또 때미는 법보다 스포츠마사지 같은 다른 부수적인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은 주의하세요.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고 학원과 연계된 목욕탕이나 마사지숍에서 싼값에 대충 일을 시작하게 하는 곳이 많습니다.”


일을 막 시작한 초보도 주의할 점이 있다. 목욕관리사는 목욕탕에 ‘보증금’을 내고 취업한다. ‘일정 기간 동안 이곳에서 일하겠다’는 약속이다.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초보라면 보증금없이 ‘스피아’를 뛰어보며 일할 곳을 찾아야 한다. ‘스피아’란 ‘spare’의 일본식 발음이다. ‘아르바이트’를 뜻하는 업계 은어다.


“무턱대고 보증금을 내고 취업했는데 손님도 별로 안오고 일하는 환경도 안 좋은 곳일 수 있어요. 환기가 잘 되는지도 빠짐없이 살펴보세요. 목욕관리사는 물 옆에서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세균에 감염되기 쉬워요. 환기가 잘되고 깨끗한 곳이어야 합니다. 한 목욕관리사 분은 비눗갑 밑에 때가 껴있으면 그 목욕탕엔 가지 않는다고 해요. 손님이 자주 오지 않고 청소도 제대로 안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죠. 또 세탁기 바로 옆에 있어서 락스물이 흐르진 않는지 따져봐야합니다. 자칫 발이 다 까질 수 있어요.”


아직도 목욕관리사를 '때밀이'라 낮잡아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목욕관리사만큼 정직한 직업도 드물어 보인다. "사회 인식 때문에 머뭇거리는 청년들이 많은데 도전해보세요. 절대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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