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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5백만원 들어오는' 카톡 이모티콘 만든 20대 여성 정체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화가 김현정 "미술 문턱 낮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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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중략)…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그 중에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 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베르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다. 김현정(29) 작가는 이 시처럼 사람이 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미국 포브스는 그녀를 “한국화 작품을 통해 기존 관습에 도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한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 최연소 화가”라고 평가했다.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으로 꼽힌 김현정 작가(왼쪽). 오른쪽은 인터뷰 중인 김 작가(오른쪽)

출처포브스 캡처·jobsN

지난 4월 ‘아시아에서 영향력있는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 2017 Asia)’에 그녀를 선정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였다. 30인 명단에는 가수 제시카, 리우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최미선과 축구선수 손흥민 등도 있었다. 또 국내 순수 미술작가로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김 작가는 ‘한국화계의 아이돌’로 불린다. 2014년 가나 아트센터에선 연 개인전 ‘내숭올림픽’에는 센터 개관 이후 최다관객(2만3887명)이 들었다. 2016년 ‘내숭놀이공원’은 일일 최다 관객 5026명을 기록하는 등 총 6만7402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신세대 화가답게 SNS를 활용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종류별로 SNS 계정만 10개가 넘는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통해서도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대학과 기업 강연도 꾸준히 이어가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김 작가를 만났다.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한국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는 ‘내숭 이야기’ 시리즈이다. 한복을 입고 있는 여인이 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한복하면 떠오르는 고상하고 단아한 이미지를 깨뜨리는 파격이다. ‘기존 관습에 도전했다’는 포브스의 평가는 바로 이런 그녀의 화풍과 연관이 있다.  

김현정 작가의 대표작인 '내숭이야기' 시리즈

출처김현정아트센터 제공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방바닥에 앉아 라면을 먹는다. 이 여성의 시선은 정작 명품 핸드백과 스타벅스 커피에 쏠려있다. 다리를 훤히 내놓고 햄버거 배달 스쿠터를 타기도 한다. 얼핏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른바 내숭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과 타인이 원하는 삶의 사이, 경계인의 모습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녹여낸 것이다. “동양화나 한국화 하면 흔히 산수화, 인물화가 떠오르잖아요. 소재가 한정적이었던거죠.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준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한국화가 김 작가의 지향점이다.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내숭 시리즈는 “그리는 것도 재밌고, 보는 사람도 재밌는 그림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어렵고 딱딱한 그림보다 이해하기 쉬운 그림으로 한국화의 ‘문턱’을 낮추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한 작품을 그리는데 두달 내지 여섯달까지 걸려요. 구도 계산 등 치밀한 계획과 연구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김현정 작가

출처김현정아트센터 제공

그림에 나오는 배경도 실제 장소를 기반으로 한다. 모델은 자기 자신이다. 원하는 색감을 발현하기 위해 말리기와 덧바르기를 20차례 이상 거친다. 누드로 밑그림을 그린다. 그 다음 상의 부분엔 직접 염색한 한지를 붙여 특유의 질감을 표현하고, 하의 부분인 치마는 먹을 이용해 반투명으로 표현한다. 몸의 라인을 비치게 드러내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서양의 콜라쥬와 동양의 수묵담채 기법의 독특한 만남이다. 

미대생이 경영학 전공 “화가는 왜 배고파야 하나”

김 작가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거쳐 동 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올해부터는 박사 과정을 다니고 있다. 학부 시절 미대생으로는 이례적으로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인기 전공인 경영학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복수전공을 하려면 학점이 제법 높아야한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미술계의 길을 걸었던 김 작가에게 낯선 분야였다. 그러나 그녀는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낯선 경영학 과목을 들으면서도 동양화과를 차석 졸업했다.  

김현정 작가 작품

출처김현정아트센터 제공

경영학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미술시장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화가는 왜 배가 고파야만하는지 궁금한데 아무도 알려주질 않았습니다. 조금이나마 의문을 풀어보려 경영학을 배웠습니다.” 색다른 분야를 배우며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 미술계가 아닌 다른 분야도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형 강의는 1시간은 일찍 가야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미술을 이렇게 치열하게 했나’ 돌아보는 계기도 됐어요.” 조금의 번짐이라도 있다면 그림을 아예 다시 그릴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았다.  


경영학의 ‘케이스 스터디(사례연구)’를 미술분야에 적용해 스스로 공부했다. 고흐, 샤갈, 모네 등 유명 작가의 삶을 돌아봤다. 뿐만 아니라 현직에서 일하는 큐레이터, 화가, 학교 선배, 교수들을 찾아갔다. 이를 통해 내린 결론은 이랬다. “배가 고픈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성실한 예술가는 회사원만큼은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회사원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아느냐’고. 미술가도 그 정도로 살면 궁색하게 살 지 않는다고요.”

1인 창업가 “새로운 길 열고 싶다”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 김현정 작가

출처김현정아트센터 제공

배움은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전시회를 열고, 그림을 팔아 먹고 산다. ‘내숭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그녀는 이런 일반적인 길을 따라 그림 파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길을 열고 싶었다. “재능 있는 친구들도 열정이 사라지는 걸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화가도 도전할만한 직업이라는 것,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나라 미술시장 규모가 2000억 수준밖에 안 됩니다. 이 작은 파이를 놓고 다투는 것보다 시장 자체를 키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는 자신을 ‘1인 창업가’로 표현했다. 스스로 없는 길을 만들어간다는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실제로 ‘김현정 아트센터’라는 회사를 꾸리고 있는 실체적인 의미 둘 다 담고 있는 표현이다. 단순히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강연도 하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기관, 대학 등에서다. 에세이집과 칼럼을 통해서도 대중과 만난다.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광고 이미지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24종을 내놨다. 기존엔 보기 힘들었던 한국화 이모티콘이 나오자 반응이 좋았다. 출시 8개월만에 4000만원어치 가까이 팔렸다. 이것과 작품판매, 강연료 등을 합친 연수입은 대기업 회사원 수준이라고 한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재탄생한 김현정 작가의 작품

출처김현정아트센터 제공

팔로어 10만이 넘는 SNS 활용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미술’이라는 김 작가의 지향점과 맥이 닿아있다. 대중과 거리를 두는 기존 화가의 이미지에서 탈피한 것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김 작가는 이를 ‘소셜 드로잉(social drawing)’이라고 표현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미술계의 격을 떨어뜨린다’며 튀어보이는 행동에 대한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작품을 드러내놓고 적극적으로 알리기보다는 항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제가 내놓은 작품은 자식이나 다름없어요. 부모라면 자식을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고 다니는게 맞는 것 아닌가요?” 

울림이 있는 그림 그리듯…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작가   

‘본업’인 그림을 향한 그녀의 열정과 고민도 끝이 없다. 일주일에 6~7일 동안 화실로 출근한다. 여기에 박사 과정도 병행하고 있다. 1년 동안 쉬는 날이 손에 꼽는다.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느껴질 때 쉽니다. 피카소는 그림 자체도 대단하지만 정말 치열하게 살았잖아요. 평생 1만3000여점의 그림을 그렸어요. 세상에 거저 되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사과정 신입생인 김현정 작가(왼쪽). 가운데는 후원활동을 했던 강남보육원, 맨 오른쪽은 모교에 장학금을 기탁했을 당시 모습

출처김현정아트센터 제공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는 일도 하고 있다. 특히 교육쪽에 관심이 많은 김 작가는 후배 양성을 위해 모교에 장학금을 기부한다. 또한 한달에 한번씩 보육원 봉사활동을 하고 금전적으로도 지원한다. “처음엔 분유, 기저귀 등 필요한 물건을 기부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더 중요한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정말 애정에 목마른 아이들이 많습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김 작가는 “꾸준히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SNS를 통해 감정이 메마른 사람들에게 행복이나 웃음을 안겨주는 것도 큰틀에서 보면 봉사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카멜레온 같은 그녀가 다음엔 어떻게 세상을 놀라게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글 jobsN 오유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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