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 이래도 돼?' 싶지만, 여기선 됩니다

조회수 2020. 9. 18. 13: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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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증명사진이야?" 나만의 개성 살려주는 증명사진관 '시현하다'
증명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
"증명사진 이상의 초상사진을 남겨주고 싶다"
최종목표는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사진

신논현역 근처에 위치한 건물의 계단을 따라 한 층 내려가면 한쪽엔 금속 공예품과 꽃이, 다른 쪽엔 타투(tattoo·문신) 도안들과 빨강, 노랑, 파란색 등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걸려있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가니 크고 작은 조명과 카메라, 작업용 컴퓨터가 옹기종기 놓여있다. 한쪽 벽엔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시현하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포토그래퍼 김시현(24)의 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다.


작업실 곳곳에 걸려있는 다양한 배경색의 사진은 증명사진이다. 이곳의 증명사진은 일반 사진관에서 찍는 것과는 다르다. 배경을 원하는 색으로 선택할 수 있다. 표정과 포즈도 다양하다. 익살스러운 얼굴, 활짝 웃어 치아 교정기가 드러난 얼굴 등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표정을 사진에 담는다.


개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증명사진으로 SNS에서 화제가 돼, 월말에 진행하는 촬영예약은 30초 만에 마감된다. 김시현은 어떤 사연으로 기존과는 차별된 증명사진을 찍게 됐을까.

출처: jobsN
김시현 포토그래퍼

첫 생일 선물로 받은 카메라가 직업으로

학창시절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김시현은 생일선물로 카메라를 받았다. 주로 친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친구들이 싫어할 정도로 항상 셔터를 눌렀다. "더 예쁜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보정 해서 싸이월드에 올렸습니다. 몇천 장을 가만히 앉아서 보정했는데 지겹지가 않았죠."

출처: 김시현 제공
고등학생 김시현과 직접 만든 졸업앨범

-고등학교 때는 졸업사진을 직접 찍었다고 했습니다.

"축제 때 사진부가 촬영한 사진을 파는데, 남는 사진들은 다 버렸습니다. 너무 아까웠어요. 그 사진들을 사용할 수 없을까 해서 직접 졸업앨범팀을 구성하고 학교 동의를 받아서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는 매년 학생들이 직접 졸업앨범을 만든다고 해요."


-사진을 좋아해서 진로를 포토그래퍼로 정했나요.

"좋아하기만 했다면 정할 수 없었을 거예요. 여행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기 때문이죠. 좋아하기도 하지만 잘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잘하는 일을 했을 때 상대방이 그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증명사진 1000명 프로젝트 시작

김시현은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 안 가는 게 아니라 못가는 거라는 엄마 말에 자극받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졸업 전, 학교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 증명사진 1000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출처: 시현하다 제공
시현하다에서 촬영한 증명사진

-왜 증명사진이었나요.

"TV에서 노홍철이 사원증 사진을 노홍철 특유의 표정으로 찍은 걸 봤어요. 그때 증명사진도 개성 있게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라는 제 좌우명과도 맞았어요. 틀이 정해져 있는 증명사진을 손님이 만족할 만큼 예쁘게 찍으면 정말 잘하는 게 아닐까 해서 시작했죠."


-프로젝트는 언제 시작했나요.

"작년 9월에 시작했습니다. 시작 전, 증명사진 규정 안에서 모든 걸 시도했습니다. 턱을 살짝 들어서 찍기도 하고, 조명도 바꿔보고, 배경색도 다양하게 넣어서 찍었어요. 그 사진으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신청했습니다. 사진을 인화해 주는 곳마다 ‘이 사진으로는 안된다’고 했지만, 촬영한 모든 사진으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이후, 주말마다 서울에 스튜디오를 빌려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촬영 장비를 들고 서울과 경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촬영을 했는데도 힘든 줄 몰랐죠."


-시현하다는 언제 오픈했나요.

“예약이 점점 많아져 올해 2월에 오픈했습니다. 혼자 스튜디오를 차리기엔 부담이 커서 금속공예가, 플로리스트, 타투이스트와 함께 공간을 나눠서 보증금과 월세 부담을 줄였습니다. 전 학기에 모은 돈으로 장비를 마련했고, 부모님의 지원도 조금 받아 시작했습니다.”

증명사진을 넘어 초상사진으로

다양한 각도와 조명, 배경색을 쓴 이유는 단 하나다. "증명사진 이상의 초상사진을 남겨드리고 싶었습니다. 얼굴 각도와 조명을 통해 가장 본인다운 모습을 끌어내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으로 배경을 선택합니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시현하다 표 증명사진이 나오는 거죠."


김시현은 지금까지 총 460명의 증명사진을 촬영했다. 그중 100개의 사진을 골라 지난 5월 ‘시현하다 과정전’을 열었다. 촬영했던 손님 한명 한명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특히 제주도와 진주에서 당일치기로 오셨던 분들과 제가 촬영한 사진을 이력서 사진으로 써서 디자인 회사에 합격했다는 손님이 기억에 남아요. 뿌듯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출처: 시현하다 공식 페이스북
지난 5월 열었던 시현하다 과정전

-어떤 의미로 전시회를 열었나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모작(模作)이 많아졌습니다. 그중 한곳에서 1000명을 찍으면 전시회를 열겠다고 공지를 띄우더군요. 예술 쪽에선 전시를 먼저 하면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독창성)가 생겨서 불안했습니다. 고민하다가 1000명이 모이기 전에 과정전을 열어보라는 교수님의 조언으로 열게 됐죠."


-시현하다의 작업을 따라 하는 곳도 많다고 합니다.

"손님들에게도 제보가 많이 옵니다. 저는 시현하다의 작업을 오마주(homage·존경하는 예술가 작품에 영향을 받아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는 것)했다는 것을 표시하면 상관없습니다. 또, 이런 작업을 통해 사진의 가치가 올라간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시현하다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슬로건과 마케팅 방식을 카피하는 것은 화가 나기도 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작품을 존중해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종 목표는 가족사진

시현하다의 증명사진 촬영 가격은 7만원이다. 증명사진 6장과, 풀사이즈 보정본을 제공한다. 한 달에 100명 촬영 예약이 30초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도 있다.

출처: 시현하다 홈페이지 캡처
김시현

"한 만화에서 이런 대화가 나와요.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캐리커처가 왜 이리 비싸냐’는 질문에 화가는 ‘15분 만에 그리기 위해 30년을 투자했단다’라고 답합니다. 저 또한 30분의 작업을 위해 지금까지 공부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좋은 결과물을 드리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요."


1000명의 증명사진을 모두 촬영한 후엔 전시회를 열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시현하다만의 사진관을 차리고 싶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포스터나 프로필 촬영을 쉽게 할 수 있는 사진관을 열고 싶어요. 특히 지금은 저와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진을 찍는데, 나중엔 여러 세대를 다 아우르는 가족사진을 누구보다도 잘 찍는 게 목표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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