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는 끝났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어요

조회수 2020. 9. 18. 11: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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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만원으로 5년 동안 세계일주한 청년이 알려주는 '해외에서 자급자족하기'
79만원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작
2011~2016년 38개국 자급자족 여행
무스펙 청년의 자아 찾기

"스펙이라곤 별게 없습니다. 자격증은 없고 토익은 420점입니다. 키도 170초반에 내세울 만한 외모도 아닙니다."


그는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6월 육군 중위로 제대한 후 대기업, 제약회사, 보험회사에 입사 지원서류를 냈지만 ‘광탈(빛처럼 빠르게 탈락한다)’하고 말았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취업준비를 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남의 눈치 보느라 하지 못했던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가 세계일주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그 나이에 절대 취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권용인(33)씨는 2011년 8월 22일 수중에 있던 단돈 79만원을 들고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이후 5년 동안 5개 대륙 38개국을 여행했다. 그의 직업은 ‘여행자’다.


길 위에서 자고, 히치하이킹을 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6개월 동안 현지에서 일하며 생활비와 경비를 마련했다. 자급자족하며 1억4000만원을 벌고 썼다. 농장, 접시 닦기, 공사장, 주방조리, 서빙, 떡공장, 이삿짐 나르기, 가구조립, 삼각김밥 판매, 사무직, 여행가이드, 민박, 사진 및 영상촬영 알바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는 지금 여행지에서 느낀 점과 자급자족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그에게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하며 세계일주하는 법을 들었다. 

출처: 권용인씨 제공

1. 주저하지 말고 이력서를 뿌려라


첫번째 여행지는 호주. 호주에 도착한 후 한달 동안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삿짐 나르기나 창고 정리 알바로 버텼다. 하루에 80~100호주달러를 받았다. 한화로 9만6000~12만원이었다. 당시 환율이 1호주달러에 1200원일 때였다.


한인 커뮤니티 홈페이지에 ‘일자리를 구한다’는 게시물을 올리고 회사에 메일을 보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가리지 않고 모두 보냈다.


두 달동안 구직활동을 하다 ‘망고 농장’에 취업했다. 망고를 선별하고 포장하는 일이었다. 시급은 20호주 달러. 지금은 1만7000원이지만 당시엔 2만4000원에 해당하는 높은 임금이었다. 권씨가 일했던 망고 농장은 호주 북부에 있는 다윈에서 꽤 알아주는 기업형 농장이었다.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곳에서 일하는 게 좋습니다. 또 솔직하게 말하는 곳에 가야 합니다. 제가 일했던 곳에서는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아주 힘들지만 돈은 확실히 주겠다’고 했어요. 반면 다른 곳에서는 면접을 보러 갔더니 처음 말했던 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곳은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면서 달콤한 말만 하더라구요.”  

2. 알바도 추천서가 중요하다


망고농장에서 한달 동안 일한 후 카지노호텔 주방에서 ‘접시닦이’를 시작했다. 한국사람이 없어 영어 실력을 쌓기 좋았다.


‘접시닦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권씨는 망고농장에서 추천서를 받아 ‘이직’을 했다. 시급은 22호주달러. 호주는 외국인도 차별없이 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일주일에 40시간만 일해도 한달에 400만원 이상 벌었다. 5개월 동안 일하며 2만호주달러(약 2000만원)를 모았다.


“외국에서는 다른 사람이 써준 추천서를 신뢰해요. 자칫 사람을 잘못 추천하면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에 추천서를 잘 써주지 않습니다. 접시닦이를 하는 곳에서 매니저에게 ‘나를 왜 뽑았냐’고 했더니 ‘망고농장이 힘들기로 유명한 곳인데 거기서 추천해서 뽑았다'고 하더라구요.” 

출처: 권용인씨 제공

3. 알바 경험 살려 작은 사업에도 도전


2013년 중반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장사를 했다. ‘삼각김밥’을 만들어 유학원과 대학 근처에서 팔았다.


"2012년에는 중국과 홍콩, 2013년 초에는 미국 뉴욕에 있었어요. 이곳에서는 계속 한인 음식점 웨이터로 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익숙한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음식 중에 뭘 소개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삼각김밥'을 떠올렸습니다."


2시간 만에 60개가 팔릴 만큼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허가받지 않고 장사를 하는 건 불법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장사를 하다 현지 경찰에게 붙잡혔다. 3주 만에 장사를 접었다.


공사장, 떡공장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했다. 공사장 시급은 15캐나다달러. 원래도 높은 시급이었지만 ‘열심히 한다’는 평을 듣자 한달 만에 시급이 20달러로 올랐다. 두 달 만에 1만1000캐나다달러(약 1000만원) 를 모을 수 있었다. 권씨는 이 돈으로 오로라를 구경하고 기차여행을 했다. 

출처: 권용인씨 제공

4. 오랜 여행 경험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도전


2015년 2월 스페인으로 갔다. 현지 여행사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했다. 가이드로 일한 경험은 없지만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했다. 당시 이미 36개국을 여행했을 때였다. 권씨는 틈틈이 여행 생활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것을 스펙으로 삼아 가이드로 일할 수 있었다.


“가이드는 월급뿐만 아니라 여행객에게 팁도 받습니다. 특히 부모님 뻘 되는 한국 여행객을 가족처럼 챙기면서 안내했어요. 초보 가이드라 잘 하지도 못했을 텐데 아들 같다면서 팁을 두둑이 챙겨주셨습니다.”


스페인은 6월부터 8월까지 여행 비수기다. 기온이 42도일 정도로 더운 날씨이기 때문이다. 여행사를 통해 오는 여행객이 아니라 자유여행을 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박집을 했다. 빌릴 수 있는 장소를 구해 2개월 동안 600만원을 내고 민박집을 운영했다. 

출처: 권용인씨 제공

5. 돈벌 곳과 여행할 곳 구분하기


2012년 동남아, 2014년 남미를 여행할 땐 일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경비를 마련할 만큼 괜찮은 일자리가 없었다. 동남아에선 호주에서 모은 돈으로, 남미에서는 캐나다에서 모은 돈으로 버텼다.


“동남아와 중남미는 다른 국가보다 물가와 임금이 낮아요. 짧은 기간 동안 큰 돈을 모으기 힘들었어요. ‘돈을 벌 수 있는 지역’과 ‘여행만 즐길 곳’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미는 특히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스페인어 혹은 포르투갈어를 주로 쓰기 때문에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경제와 정치 상황이 좋지 않고 임금도 낮다. 특별한 기술이 없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볼리비아에서 강도를 당해 무일푼 신세가 됐을 때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노숙을 했다. 

출처: 권용인씨 제공

6. 전 세계 만국 공통 인재상 ‘성실함’


2012년 갔던 홍콩에 2015년 다시 갔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남미에서 돈이 한푼도 없을 때 홍콩 음식점 사장님이 1000만원을 빌려주셨어요. ‘1년 동안 갚지 못하면 다시 가서 일하겠다’고 약속했죠. 스페인에서 가이드랑 민박을 하면서 900만원까지 모았지만 돈을 갚기엔 부족했습니다. 하루라도 날짜를 어기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권씨는 홍콩에 갔을 때 단순 알바가 아닌 ‘매니저’로 일했다. 서빙과 주방 보조 뿐만 아니라 홀 관리, 행정일을 맡았다. 사장에게 ‘계속 일해보자’는 제안도 받았다.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은 항상 받았다. 일용직으로 시작했다가 1개월, 3개월 동안 계속 했다. 권씨는 어떤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인정받는 이유를 ‘성실성’으로 꼽았다. 맥이 빠지는 답 같지만 권씨는 “영혼까지 팔아 노예처럼 일하라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은 어디서든 참 열심히 하고 책임감도 높아요. 한국에선 ‘당연하다’고 넘어갈 일을 외국에서는 인정해주고 칭찬합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출처: 권용인씨 제공

권씨는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이제 한국에서 취업하기엔 늦은 나이다. 책을 쓰고 있지만 백수나 나름 없다. 하지만 그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여행기를 요약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렇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봤어요. 제 삶이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걸로 만족합니다. 여건이 따르지 않는데 무작정 여행을 떠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남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해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런 걸 경계했으면 합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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