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국가대표 에이스→월급 200 바리스타 '후회없어요'

조회수 2020. 9. 17. 17: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억대연봉 프로배구 선수에서 신입 초보 바리스타로
이탈리아 휴게소에서 '인생 커피' 만나
제빵 배워 카페 창업 목표

“아침마다 출근이 기다려집니다.“


백목화(27)씨는 한국 여자 배구선수 국가대표 출신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데 활약했다. 2016년 5월까지 KGC인삼공사 배구단에서 프로선수로 활약하며 ‘서브의 퀸’ '미녀 배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2012~2013시즌에는 서브 득점만 55개를 기록했다. 국내 선수 중 최다 서브득점 기록이었다. 그 다음 시즌에도 서브 득점 53개를 기록해 서브상을 받았다.


지금 그의 직장은 배구코트가 아니라 카페다. 배구공 대신 주전자를 들고, 코트 대신 카페 테이블과 바닥을 누빈다. 아직은 경험도 능력도 부족해 커피 만드는 일보다 서빙과 청소를 더 열심히 한다는 2개월차 수습 바리스타다. 연봉 1억원을 넘게 받던 서브 여왕은 자신을 카페에서 일하는 ‘일개 사원’이라고 설명했다. 월급은 200만원이 채 안되지만 운동을 그만둔 것에 후회는 없다. 카페 일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4월 18일 오후 4시, 서울 북촌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커피가 좋아서인지, 카페에 있는 시간이 좋은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출처: jobsN
백목화씨

◇억대연봉 프로배구선수 카페 신입 초보 바리스타로

-언제 바리스타가 된 겁니까?


“바리스타라고 말하기 쑥스럽습니다. 카페에서 일하는 초보 사원이에요.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은 선수 생활하면서 땄습니다.”


그녀는 아직 여러 종류의 커피를 능숙하게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지금은 1급 자격증을 준비하는 중이다.


카페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서빙과 청소다. 커피콩을 가는 간단한 일도 하지만 주문을 받고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 더 많다. 핸드드립 커피를 만드는 건 아직 무리다. 혼자서 연습을 할 수는 있지만, 판매용으로는 내놓지 않는다. 핸드드립은 종이필터에 커피가루를 올려놓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주전자로 부으면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다. 그녀는 “적어도 몇 년은 해야 주전자를 잡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백씨는 배구선수로 활약하던 2010년 수요일마다 소속 구단이 있는 대전의 커피학원을 다녔다. “오전 훈련 마치고 잠깐 쉬었다가 5시부터 학원에서 2시간씩 공부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엔 훈련이 없었다고 한다.


-왜 커피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까?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 그냥 좋았습니다. 카페에서 책이나 영화도 보고, 휴대전화로 인터넷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언젠가 운동을 그만두면 카페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커피협회에서 주관하는 바리스타 2급 필기시험에는 커피학개론, 커피 로스팅과 향미 평가, 커피추출, 녹차에 관한 문제가 나온다. 50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100점 만점 중 60점 이상이면 합격한다.


실기시험에서는 10분 동안 에스프레소 4잔과 카푸치노 4잔을 뽑아야 한다. 카푸치노는 데운 우유로 거품을 만든 뒤 커피 위에 하얀 하트 모양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인터넷에 카푸치노 아트 하시는 전문가의 동영상이 많아요. 그렇게 하시는 분들은 정말 ‘프로’입니다. 저는 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입니다."

출처: jobsN
커피 그라인더 앞에 선 백목화씨의 뒷모습

◇이탈리아 휴게소에서 '인생 커피' 만나

-얼마나 공부했습니까.


“서너 달 정도 학원에 다녔습니다. 대충 공부해도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전 그렇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책상에 오래 앉아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인생에서 제가 가장 꾸준히, 열심히 공부한 과목은 ‘커피’인 것 같습니다.”


운동선수 시절 주위 사람들에게 커피에 관심을 보이자 함께 운동하던 외국인 용병 선수가 커피 머신을 선물하기도 했다. “콜롬비아 출신 선수였어요. 그 나라도 커피로 유명한데, 제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선물을 사주는 거에요. 보통 90만~100만원 하는데 제가 열심히 하는 게 좋아 보였나 봅니다.”


2017년 1월, 운동을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떠난 여행길에서 ‘인생 커피’를 마셨다. “남부 어느 동네 휴게소에서 카푸치노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처음 먹어본 부드러운 맛이었습니다.” 자신도 이런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제대로 배우려면 서울에 가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소속 구단이 있는 대전, 부모님 집이 있는 광주광역시를 오가다 서울 주민이 된 지 2달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카페 7곳에서 면접을 보고 지금의 카페에 들어왔다.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은 딸 생각이 없습니까?


“얼마 전 1급 필기시험은 봤습니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젠 실기 준비할 계획입니다.”


일주일에 6일을 근무한다고 했다. 원래 쉬는 날은 토요일인데 금요일에 쉬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실시하는 커피 교육이 매주 금요일에 있기 때문이다. 커피 역사를 비롯해 맛과 향, 로스팅 방법 등 이론교육을 받는다. 실기 교육도 있다. 4월 셋째 주까지는 오전 10시~오후 7시까지, 넷째 주부터는 오후 1시~오후 7시까지 교육을 받는다. 사실상 쉬는 날이 없다.


출퇴근 시간은 격주로 바뀐다. 격주로 오픈조와 마감조에 배치된다. 오픈조는 매장 문이 여는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마감조는 낮 12시에 출근해 카페 문을 닫는 밤 10시 30분에 퇴근한다.


쉬는 시간에는 서울에 유명하다는 커피집을 찾아다니고, 커피 맛을 음미한다. 분위기도 살펴본다고 했다. “오픈조일때 퇴근하면 시간이 많습니다. 아직 못 가본 곳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습니다.”

출처: 백목화씨 인스타그램 캡처
배구선수시절 백목화씨 모습

◇16년 배구인생, 초등학교 5학년때 시작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머리 하나쯤은 컸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배구를 처음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루 10시간 가까이 운동에 매달렸다. “아버지는 제가 더 많이 클 줄 아셨나 봐요.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그녀의 키는 176cm. 국내 고등학교 3학년 여자의 평균키(160.9cm)보다 15cm는 큰 편이지만, 배구선수로 큰 키는 아니다. “180cm는 넘어야 해요.”


학생시절 오전 6시50분에 기상했다. 아침을 먹고 9시~9시30분부터 정오까지 유산소·근력 운동을 한다. 점심을 먹고 2시 30분부터는 ‘볼 운동’을 한다. 그녀는 볼 운동이 본격적인 배구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전술 훈련부터 코트에서 시합 때 구사할 수 있는 모든 훈련을 이때 합니다.” 서너 시간 훈련을 한 뒤 저녁을 먹으면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훈련은 밤 9시30분까지 이어졌다.


-학교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학창시절에는 훈련이 힘들어 교실에서 수업 듣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부러워요. 그 친구들은 여러 분야에 대해 듣고 배우고 아는 것도 많으니까요. 요즘 운동하는 후배들은 일정 시간 수업을 듣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가끔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7년 프로 선수가 됐다. 현대 그린폭스 여자배구단, KT&G 아리엘즈, KGC인삼공사 배구단을 거치며 선수로 8년 가까이 활약했다.


-언제 가장 힘들었습니까


“공격이 계속 막힐 때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몸이 힘든 거야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던 거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공격이 안되면 답답해집니다. 공격 타이밍이나 습관을 상대 선수들이 다 분석을 합니다. 이걸 깨려면 저는 타이밍을 다르게 하는 방법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몸에 익은 습관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왜 나는 이 정도밖에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만족을 못했어요. 그런 채찍질이 스스로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출처: 백목화씨 인스타그램 캡처
백목화씨는 바리스타 1급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앞둔 남은 상태다.

◇제빵 배워 카페 창업하는 게 목표

-10년 넘게 해온 운동을 그만두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슬럼프를 경험하면서 소속 구단과 계약 연장에 실패했습니다. 이때까지 해본 게 배구 밖에 없잖아요. 커피는 가장 관심 있는 일이었습니다. 또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조금 자신 없지만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배웁니다. 카페에 출근하는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게 있나요.


“열심히 커피를 배우고 여유가 생기면 제빵도 배우고 싶습니다. 간단한 케이크 정도는 만들 수 있도록 배우려고 합니다. 몇 년 지나면 작은 카페를 하나 내고 싶습니다. 즐겁게 커피 만들고 그걸 맛있게 드셔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