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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 두배 번다' 한복 입고 TV 누비는 남자

조회수 2018. 11. 5. 10: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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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N은 전통 문화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직업인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잊혀져 가는 한국 고유 문화의 불씨를 되살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중에는 국가에서 인정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이수자도 있습니다. 첫 편으로는 최근 방송에서 화제가 된 젊은 국악인 남상일씨 이야기입니다. 

국악 대중화에 힘쓰는 소리꾼
라스·복면가왕·불후 출연하며 시청자에게 눈도장
한 달 수입 대기업 임원의 두 배 벌어
사명감 먼저 쫓았더니 돈이 따라왔다

"대기업 임원의 두 배, 중소기업 대표 정도법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가 수입을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한복입고 국악하는 사람들은 큰 돈을 벌지 못한다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주인공은 국악인이자 예능인인 남상일(39)씨.

 

그는 일찍이 '아침마당' '생생정보통'에 고정패널로 출연해 중장년층에겐 익숙한 얼굴이었다. 2015년 4월 11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을 시작으로 MBC '복면가왕' 등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젊은 층에게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국악인이 왜 이렇게 방송을 많이 하냐는 질문에 그는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가는 국악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출처: 네이버tv 캐스트 캡처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개인기를 뽐낸 소리꾼 남상일

2017년 2월 15일, MBC '라디오스타'에서 예능인 못지않은 입담을 뽐낸 그는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국악 버전으로 불러 전통 소리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한복 입은 문희준, 국악계의 싸이 등이다.

 

그는 국악 신동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 전주에서 판소리를 제대로 배운지 4개월 만에 전국어린이 판소리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후 각종 판소리 대회를 휩쓸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국악계의 싸이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그때그때 다릅니다. 월요일 불후의 명곡·가요무대 녹화, 화요일 대학교 수업, 수요일 국악방송·황금 연못 녹화를 합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주말엔 공연 일정이 많아요. 남는 시간엔 개인 레슨을 합니다."


-스케줄이 많은데 연습은 언제 하나요.

"제자들 가르칠 때 함께 연습하는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선생님들의 공연 영상도 많이 보고 듣고 있어요."


◇판소리 들려주니 울음 뚝, 타고난 국악 신동

그가 처음 판소리를 접한 건 2~3살쯤이었다. 꼬마 울보 남상일은 국악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고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밤새 TV를 보더니 다음날 화장지를 길게 풀어 살풀이춤을 따라 했다.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어린 남상일이 내는 모든 소리를 녹음해 명창에게 보내고 북과 꽹과리를 사주며 아들이 소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고 한다.

출처: 남씨 제공
어린 남상일

-언제 정식으로 판소리를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전주에 있는 모든 명창을 다 찾아다니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 찾아갔을 땐 울었는데, 조소녀 명창께 갔을 땐 울지 않고 배우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조소녀 선생님께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웠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전공 교수였던 안숙선 선생님께 적벽가, 수궁가, 창극을 배웠어요. 조소녀 선생님께는 판소리의 기초를 배웠다면, 안숙선 선생님께는 예술가가 갖춰야 할 인성, 자질을 배웠습니다."


-판소리를 배우며 힘들지 않았나요.

"판소리를 운명이라고 느껴서 힘든 적은 없었어요. 다만 소리꾼 남상일을 만들어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관객에게 웃음과 기쁨을 줘야 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소리하기가 힘들었죠. 공연 마치고 차 안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공연을 보러오셨는데, 무대에 선 제 모습을 보고 정말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35:1 경쟁률 뚫고 국립창극단 입단, 10년 후 판소리 알리고 싶어 나와

2003년 당시 25살의 나이로 국립창극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다. 국립창극단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연극을 하는 곳이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겐 꿈의 직장이라고 할 만큼 안정적이다. 남상일은 2013년, 국립창극단에서 나왔다. 입단한 지 꼭 10년 만이었다. 

출처: 남씨 제공
공연하는 소리꾼 남상일

-국립창극단에선 왜 나오셨나요.

"당시 창극단에서 외부활동도 함께하긴 했지만, 창극단 밖으로 나와 판소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창극단에서 공연을 하면 객석이 꽉 차는데, 정작 밖에 나와서 보니 그 사람들은 마니아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통에 관심이 없더군요. 제가 대중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쉽고 편한 방법으로 우리의 소리를 알리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나온 걸 후회하지 않나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났지만 얻는 것이 많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죠. 이로 인해 ‘국악이 좋아졌다. 국악이 재밌게 느껴졌다’는 관중이 늘어 뿌듯합니다."

출처: jobsN

-'판소리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질책도 많습니다.

"100명의 팬이 생기면 100명의 안티팬도 같이 생깁니다. 인기와 명성을 얻으면 시기와 질투, 악플은 당연히 따라 오는 것이죠. 가벼워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저는 전통을 알릴 수 있다면 솜털처럼 가벼워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전통은 어려워요. 소리를 하는 저도 어렵고 힘든데 관객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판소리를 하는 제가 재미있게 다가가면 한결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이 원하는 곳이면 예능이든 무대든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다만 꼭 ‘국악인 남상일입니다’하고 소개를 하죠. 그리고는 국악 한 소절을 맛보기로 들려드립니다. 이것이 제가 소리를 하는 이유니까요."


◇돈을 좇기보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할 직업

출처: jobsN

-직업으로써 소리꾼을 추천하나요.

"글쎄요. 소리꾼은 이 일로 먹고살겠다는 생각보다 전통예술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는 분들이 선택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특히 국악을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은 거의 없습니다. 그곳조차도 해마다 단원을 뽑는 것이 아닌 자리가 생기면 충원하는 형식이라 입단이 어렵죠. 또, 사람마다 공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심합니다.이런 현실에 직업으로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한번 시작했으니 죽을힘을 다해서 끝까지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미쳐야 해요. 한 분야에 미친다는 것은 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련과 실패는 분명히 있어요. 역경에 지지 않고 뛰어넘길 바랍니다. 그러면 인정받을 날이 꼭 올 것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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