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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만명 몰리는 경기도의 신흥 명소를 만든 남자

조회수 2018. 11. 5. 10: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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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문고 최영일 대표
30여년간 알짜 기업 CEO로만 일한 성공 원칙
사람들 관심없는 외국계 회사에서 커리어 시작
음식점, 악세사리 매장 줄이고 책 늘려

만 31살부터 ‘월급쟁이 CEO’로 31년 일한 남자가 있다. 미국 백화점 기업 AMC의 평사원으로 출발한 그는 ‘외국계 한국 법인장’ CEO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7곳의 이름 있는 국내외 기업 CEO를 지냈다. 글로벌 수집품 판매회사 프랭클린 민트(4년), 중국 유통업체 리앤풍(2년), 월트디즈니(7년), 워너 브라더스(6년) 한국 지사장, 캐릭터용품 기업 오로라월드·대원미디어 CEO…. 2015년 8월부터는 영풍문고를 경영하는 최영일(62) 대표 이야기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콘텐츠 전문가다. 매출 4억원 규모의 월트 디즈니 한국지사를 4년 만에 매출 250억원으로 키웠다. 글로벌 브랜드 디즈니 아이스 쇼를 한국에 처음 선보이니 것도 최 대표다. ‘국민 요정’ 김연아 선수가 이 쇼를 처음 보면서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키웠다. 오로라 월드 CEO시절에는 YG엔터테인먼트와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해 YG소속 아티스트 캐릭터 상품을 세계로 수출해 화제가 됐다.  


영풍문고 사장을 맡은 뒤로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자며 서점 공간의 각종 잡화 상점·음식점 등을 없앴다. 그 자리에 책을 늘리는 ‘역발상’으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9월 리모델링한 국내 최대 규모(1만 585㎡·45만권) 서울 종각점, 지난 2월 문 연 경기도 분당 서현점은 오픈과 동시 하루 1만명씩 고객이 방문(서현점은 주말 기준)하며 신흥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00억원(지난해 매출 1700억원). 월트디즈니 시절부터 두둑한 연봉(2~3억5000만원)을 받았다. 


“저는 대리,과장으로 일한 적이 없어요. 신입사원 다음은 CEO였습니다." 그가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개척한 비결 9가지는 무엇일까. 

출처: jobsN
영풍문고 최영일 대표

1. 간판보다 배움을 추구했다 

동국대 무역학과를 나와 1982년 효성그룹 무역부 특판지원팀에 입사했다. 원칙은 ‘배움이 최우선이다’이었다. 무역으로 최고가 되려면 영어로 최고가 되고 싶었다. 어학연수가 꿈이었다. 


그가 꿈을 이룬 비법은 ‘인사’였다. 선배와 상사, 임원을 복도, 화장실에서 볼 때마다 큰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를 외쳤다. 그리고  총무부를 졸라 사장실을 찾아가 "

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복도에서 인사 크게 하는 사원’을 알아 본 사장은 6개월 미국 캘리포니아 어학연수를 보냈다.


그런데 다녀와 보니 영어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다. 유학을 가고 싶었다. 월급 30만원 시절, GRE 점수 없이 오로지 토플 점수로 싸게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봤더니 이스트 미시건 대학(EMU)이라는 대학이 나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학교지만 스펙이 된다고 믿었다. 인생 목적은 사업이나 장사이기에 빨리 영어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토플 성적으로 진학해 경제학 석사 학위를 땄다. 

출처: 영풍문고 제공
'서점 다운 서점'을 표방하며 새롭게 리모델링한 영풍문고 종각점

2. 남들은 관심 없는 외국계 기업에서 시작 

미국에서 지내보니 꿈이 달라졌다. 국내 대기업보다 외국계 기업에 가기로 했다. 또 세계화 열풍 속에서 

매일 영어를 쓰는 직장에 가고 싶었다. 

 외국계 기업은 회사 이름이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인 경우가 많고 근로 조건과 임금이 좋았다. 이력서를 우편으로 보내지 않았다. 발로 뛰며 인사 담당자들을 직접 찾아 건네줬다. 당시 외국계 기업의 구인광고에 지원자가 80~100통이면 대략 5~7명의 면접 지원자를 골랐다. 학벌보다 전문성과 경력 중심의 자기소개서를 썼고, 면접 자리에서는 뭐든지 답변의 근거를 3가지로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했더니 AMC의 한국 지사에 붙었다. AMC는 대중들이 잘 모르는 회사지만 세계적인 백화점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로 성장 기회가 많았다.


AMC에서 일한 지 얼마 안된 1986년 신문에 프랭클린 민트의 한국 지사장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도전했다. 나는 지인 소개로 CEO가 된 적이 거의 없다. ‘나를 뽑는구나’는 느낌이 드는 신문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하거나 헤드헌터에게 제안을 받아 회사를 옮겼다. 


한국의 다양한 제품 공급업체들과 비즈니스 경험이 있고 영어를 쓸 줄 안다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아 31살에 프랭클린 민트 CEO가 됐다. 직원 2명에서 시작해 20명으로 키웠고 300만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30대 초반의 CEO는 힘들었다. 경영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흉내’를 냈다. 해외 출장 갈 때마다 글로벌 기업과 본사 CEO들의 화법, 말투를 배우고 기업문화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해외 선진 기업의 사장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벽은 유리로 만들어 직원들이 사장이 일하는 모습을 보도록 했다. 직원들은 사장실 문을 노크하지 않고 불쑥 들어오기도 한다. 이런 문화를 따라 했더니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프랭클린 민트, 월트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3. 성장 가능성 무한한 콘텐츠를 인생 직업으로 

1992년 월트 디즈니 초대 사장으로 2000년까지 일했다. 콘텐츠업은 당시만 해도 제조업, 자동차 기업에 비교하면 관심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해외에서는 콘텐츠 하나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드는 산업이 뜨고 있었다. 성장가능성이 무한했다.


월트 디즈니 사장 이후에는 한빛 소프트를 비롯한 여러 회사의 CEO로 일했다. 그러나 매번 오래 못 갔다. 막대한 자금을 끌어오는 영업임무를 회사가 기대했는데 그걸 잘 못했다. 그때 느낀 점은 ‘나는 건축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라 리모델링하고 연결해주는 마케팅하는 사람이다’는 것이다. 다시 본업인 콘텐츠업으로 돌아갔다. 


워너브라더스 시절엔 순수 한국 중소기업 캐릭터인 ‘뿌까’를 워너 브라더스에 소개해 남미와 아프리카에 진출하도록 도운 기억이 난다. 오로라월드 CEO 때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보고 양현석 YG사장을 접촉해 YG아티스트의 캐릭터 라이센싱 계약을 따냈다. 오로라월드는 이전까지 완구 제조업체였는데 이 계약으로 부가가치 높은 캐릭터 회사로 탈바꿈했다. 


어떤 직장인이든 자기 분야를 끊임없이 다른 산업과 아이템에 연결하는 습관을 갖는 것을 추천한다. 어마어마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 남들은 관심없는 분야라도 내가 끌린다면 적극 뛰어들라고 권한다.

출처: 오로라 쇼핑몰,유튜브 영상 캡처
오로라 월드 시절 인형으로 만든 싸이(왼쪽)과 디즈니 아이스쇼

4. 본질에 집중해라 

잘 나가는 콘텐츠 회사에서 일하다 어려움을 겪는 출판산업으로 왜 왔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출판도 콘텐츠업이다. 영풍문고는 오랫동안 서점다운 서점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다른 서점들이 하는 대로 쏠림현상에 휩쓸려 돈이 되면 이것저것 다 해왔다. 


내가 세운 목표는 서점의 본질인 ‘서점다운 서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종각점의 경우 음식점을 하나만 남기고 5개를 정리했고, 액세서리나 완구를 파는 매장도 줄이거나 없앴다. 그 자리에 소파를 넣고, 책을 대대적으로 추가했으며, 만화책 코너를 키웠다.


영풍은 오프라인 서점 매출이 70% 이상이고, 인터넷 매출 분야가 10%가 안 된다. 업계 1위의 교보문고의 경우 매출은 55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매출의 절반 정도가 각종 완구와 음반 등을 파는 핫트랙스에서 나온다. 온라인 매출도 꽤 크다. 어차피 온라인은 교보를 따라갈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신 오프라인은 1등을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실제 지난해 10월 종각점을 리모델링하고 난 뒤 탄핵 정국 기간에 하루 유동인구가 1만명을 유지했다. 같은 기간 이 일대의 경쟁 서점이 기존 고객 20%가 빠진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이다. 책에만 집중하는 매장 전략으로 위례신도시, 세종시를 비롯해 6곳 이상 매장을 늘린다. 일각에서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책밖에 없는 서점 전략이 실패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서점에 인공지능을 집어넣고 ‘첨단’ 흉내를 내면 실패할 것이다. 오히려 책을 편안하게 읽는 문화적인 공간을 만드는 차별화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출처: 영풍문고 제공
영풍문고 분당 서현점. 지난 2월 오픈 한 뒤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 곳곳에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가죽 쇼파가 있다

5. ‘칼퇴근’ ‘연봉’을 목적으로 한 이직, 오래 못 간다 

효성그룹 시절 첫 월급은 30만원이었다. 월트디즈니와 워너브라더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봉을 2~3억원 많게 3억원 이상 받았다. 그러나 연봉을 쫓아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다. 업무에 욕심이 나고 명분이 좋으면 연봉 삭감을 감수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전에 이룩한 성과와 경험으로 더 잘해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직장인은 이직하기 위해 2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첫째 ‘40살 전에 이직 결정을 내리라’는 것, 그리고 이른바 ‘워라벨’(work like balance)만 쫓는 이직은 지양하라는 것이다. ‘6시 정시퇴근 하느냐’ 또는 ‘연봉이 1년 안에 얼마 오르느냐’는 척도로 이직하는 것은 잘해야 두 번 성공한다.  그 이상은 힘들다. 장기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회사를 알아보라. 돈을 적게 받더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가라.  


연봉 8000만원을 받고 10년 다닐 회사를 가야 할까, 아니면 6000만원을 받고 15년 다닐 회사를 가야 할까. 나는 후자가 낫다고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봉에 관계없이 헤당 업계에서 더 오래 남아 커리어를 쌓고 존경과 인정을 받는 것이 30~40년 길게 보면 장기적으로 유리하더라. 처음부터 높은 연봉을 받는 이직조건은 그때는 좋다. 하지만 돈을 많이 준 회사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출처: 영풍문고 제공
전국 영풍문고 점장과 실무진이 매주 갖는 화상회의 모습

6. 직원을 자유롭게 하라 

외국계 기업에서 합리적인 기업문화를 접하다 한국 기업의 CEO가 되면 항상 먼저 하는 것이 조직문화를 바꾸는 거였다. 영풍문고에 출근하는 날 전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넙죽 인사를 했다. 깜짝 놀랐다. 물론 이제 직원들은 날 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일한다. 


또 대부분 임원이 자기 생각대로 모든 걸 결정했다. 그러나 잘 나가는 회사는 사장이나 임원이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직원 모두와 공유한다. 매주 전국 영풍문고 점장과 주요 실무진들이 같이 회의하도록 했다. 


또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부하 직원이 퇴근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었다. 나부터 오후 6시30분 정시퇴근해 직원들의 자율 퇴근을 유도하고 있다. 문서 보고는 없애고 구두 보고로 통일했다. 수평적인 문화가 회사 성장을 돕는다.

7. 한달에 한번 주위 인맥 관리하라 

주고받는 명함은 늘어나면 인맥 관리를 꼭 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전화하는 날’을 지켜왔다. 그날은 100통 이상씩 연락 못 한 분들에게  ‘찾아가 봐야 하는데 죄송하다’며 전화했다. 그런 전화를 상대가 3번 받으면 미안해하며 먼저 보자고 한다. 


사실 업무에서 파트너와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갑질 하면 안 된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업체에도 항상 전화했다. ‘그때 결정을 이렇게 밖에 못했다’ ‘죄송하다’고 전했다. 아무리 거래처라도 인간적으로는 항상 존중하는 자세가 나중에 자산이 된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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