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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변신 우주인 고산 '우주 진짜 갔다면 '박제'처럼 살았을 것'

조회수 2018. 11. 5. 13: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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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 후보'에서 3D프린터회사 대표로
올해 목표 매출은 50억 이상
"제조업 혁명 일으키겠다" 포부

지난 2006년 한국 최초의 1호 우주선 탑승자로 뽑혔다가 2008년 발사 한 달을 앞두고 탈락한 ‘비운의 우주인’ 고산(41)씨. 훈련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우주선에 타지 못한 그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2년간 일하다 2010년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유학길에 올랐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최근 서울 종로의 빌딩 사무실 지하1층. ‘에이팀 벤처스’(A-team ventures)라는 간판이 걸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무실엔 가정용 프린터보다 2배쯤은 큰 직사각형 모양의 기계 여러 대가 있었다. 요즘 화제인 3D 프린터다.


3D프린터는 플라스틱, 금속, ABS수지(열가소성 플라스틱) 같은 재료를 700도 이상의 온도에서 녹여 0.25~0.8㎜ 두께로 뿌리는 기계다. 재료를 얇게 계단처럼 층으로 쌓아 올려 물건을 출력한다. ‘제조업 혁명’을 출력하는 기계란 별명이 붙어 있다. “안녕하세요. 3D프린터를 만드는 고산입니다.” 고씨가 손을 내밀었다. 

출처: jobsN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우주인 도전에 실패한 그는 제2의 도전에 한창이다. 세계적 3D프린터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이다. “머릿속에 든 아이디어를 손 위 실물로 구현하는 메이커스(Makers)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을 다 현실로 만들 기계를 만들 생각입니다. 제 인생을 걸만한 도전입니다.”


그는 직원 20명을 둔 에이팀벤처스를 2014년 설립했다. 여러 벤처투자기관에서 1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매출은 2억 5000만원. 직원을 계속 뽑고 투자를 하고 있어서 아직 순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제품을 지난해 하반기에 출시했어요. 반응이 좋아 해외 8개국에서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목표인 매출 50억원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나는 3D프린터에 미쳤는가

왜 3D프린터입니까.

기존의 공장 위주 제조업은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조의 민주화’시대가 왔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소유하는 상황, 제조 혁명입니다. 인공지능(AI)나 사물인터넷(IoT)만큼 3D프린터의 전망도 밝습니다.

제품 가격은 얼마입니까. 

처음 만든 제품은 200만원이었는데 지난해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99만원까지 떨어트렸습니다. 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고, 졸업작품을 만드는 디자인·건축학도도, 기업들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30~40만원대 ‘교육용 3D프린터’는 단순한 제품만 만들 수 있고 쉽게 망가집니다. 반면 저희 제품은 정교한 열역학 기술을 이용해 철을 녹여 프린팅이 가능하고, 정교한 체결이 가능한 너트와 볼트도 뽑아 낼 수 있습니다.
출처: jobsN
에이팀벤처스의 3D프린터(맨 왼쪽)와 프린터로 출력한 제품들

3D프린터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3D프린터로 만든 물건을 사용자들이 돈을 내고 사고 파는 온라인 거래 장터 '쉐이프엔진(Shape engine)'을 만들었다. 온라인상에서 3D프린터로 특정 기능이나 모양의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 또는 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직접 제품을 제작해 배송한다.

성과가 어떻게 됩니까.

별다른 홍보도 안 했는데 지난 4개월간 거래액은 약 1억원 정도에요.세상에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3D프린터로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 수 있잖아요. 제품당 10만원이 넘기도 한데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요. 예를 들어 실물 크기와 똑같이 만든 바이올린 (위 사진 가운데)은 부피는 크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ABS 재료를 쓰기 때문에 5~10만원 정도 합니다. 반면 사람 피규어(위 사진 오른쪽)는 손바닥 만한 크기지만 다양한 컬러감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재료를 씁니다. 10만원이 넘습니다. 금속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제품은 20만원을 넘기기도 합니다. 또 어떤 3D프린터를 쓰느냐에 따라 정교함과 튼튼함이 달라집니다.

이처럼 다양한 제품을 이 플랫폼에서 일반 아마추어 3D프린터 사용자가 다른 일반인에게 물건을 찍어 팔 수 있습니다. 특정 과제나 졸업 프로젝트, 또는 기업의 시제품처럼 중요한 창작물은 직접 제작하거나 소정의 중개수수료를 받고 전문 3D프린터 제작업체를 연결해줍니다.

3D 프린터로 만든 화장품 핸드크림 용기 캡, 대기업의 신축 연구소 건축모형이 여기서 거래됐다.

출처: 에이팀벤처스 홈페이지 캡처
제품 제작을 의뢰하는 쉐이프엔진 온라인 화면(왼쪽)과 실제 고객의 의뢰를 받아 만든 제품

국내 3D프린터 시장 상황은 어떤가요. 

아시아가 3D프린터 세계 시장 규모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3D프린터 업체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쟁력을 가진 회사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회사 미래를 생각해보면 ‘살아남을 수 있겠다’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5년 뒤 모든 집에 3D프린터가 있을 것이냐? 그렇진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정말 많은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쉽게 만들어 팔고 유통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3D프린터 제품 도면도를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트렌드도 나타날 거구요.

"진짜 우주에 다녀왔다면 박제처럼 살았을 것"

회사에는 국내외 인재들이 몰려와 있었다. 카카오, 아모레퍼시픽, SK, 한샘 출신 엔지니어·디자이너들과 ‘테슬라’ 창업자 엘런 머스크가 운영한 솔라시티(태양광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도 있었다. 고씨는 “만약 내가 진짜 우주를 다녀왔다면 인생을 다이내믹하게 살지 못했을 것 같다. '박제'처럼 살았을 것 같다”고 했다.

무슨 말입니까.

남들이 '우주인’에게 기대하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정책을 연구하며 사는 것은 굉장히 안정적인 삶입니다. 실제 여러 기업,기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에 변화가 없었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우주를 안 간 것이 인생의 기회였습니다.
출처: 조선 DB
고산씨(왼쪽)와 2008년 4월 러시아에서 입국한 후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

서울대 수학과를 거쳐 동대학원 석사(인지과학)를 한 그는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으로 일해오다 지난 2006년 1만8000대 1이라는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뚫고 우주인 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우주인 자격 박탈 이후 항공연에서 2년 일하면서 ‘우주 연구원 또는 행정가’의 진로를 그렸다고 했다. 400회 이상 여러 단체에 꿈을 주제로 강연을 다녔다. “400억원에 이르는 국민 세금으로 러시아 우주 훈련을 다녀왔는데 사회에 환원해야 하잖아요. 꿈이 필요한 보육시설 같은 소외된 아이들을 만나러 많이 다녔습니다.”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전액 장학금 받는 조건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우연하게 수강한 미국 실리콘밸리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창업 프로그램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싱귤레러티 대학은 항공우주국과 구글이 공동으로 만든 창업기술 교육기관이다.


“30개국 출신 예비 창업가 80여명이 바이오·나노·컴퓨터 과학기술을 배우고, 2~3개의 창업 아이디어를 내면 벤처캐피탈 투자 받을 수 있는 과정이에요. 여기서 3D프린터를 목격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꼭 우주에 가야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학생들이 취업 때문에 목을 졸리고, 스스로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청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싱귤래러티같은 창업기관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출처: 싱귤래러티 대학 홈페이지 캡처

진학 1년만에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자퇴했다. “귀국하자마자 직후 예비창업자, 대학생들을 모아 무박 2일 동안 3D프린터로 제품을 만드는 ‘메이커톤’(Make-A-thon) 행사를 4차례 주최했습니다. 행사 후원금으로 3000만원 이상 받았습니다.”


이 후원금으로 3D프린터, 레이저커터, CNC머신 등 산업용 기계로 예비창업가들이 제품을 만드는 공간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타이드 인스티튜트(Tide institute)를 서울 세운상가에 열었다. “3000만원이면 1년 버틸 수 있더군요. 월세 150만원, 운영비와 생활비로 한달 100만원이면 살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면 와서 무료로 만들 수 있고 각종 창업 워크샵에 참여하는 공간인 팹랩(Fab lab)을 개설했다.  

“3D프린터 열풍이 불면서 연간 수천명씩 청년들이 몰려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창업해 대기업 투자를 받고 스타트업을 설립한 청년들도 많아요. 기업 후원금도 제법 들어오면서 서울 3곳을 비롯해 대전·제주·수원에도 팹랩을 설치했고 얼마 전에는 미얀마에도 열었어요.” 2014년 에이팀벤처스를 설립하면서 타이드 인슈티튜트 경영을 병행해왔다. 최근 타이드 인스티튜드 대표직을 그만두고 에이팀벤처스에만 집중하고 있다.

우주인 도전에 실패했다가 다시 실패위험이 있는 창업을 했는데.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는 성장하기 쉽지 않습니다. 평탄하게 살았는데 멋지게 성공한 사람이 더 적을 겁니다.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계속 도전하는 것이 제 인생입니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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