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쓸어담던 신림동 스타강사,돌연 술장사로 까먹은 돈이..

조회수 2017. 2. 11. 13: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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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안에 전통주 시장 자리 잡을 것
신림동 스타 강사→로스쿨 교수→전통주 빚는 '술쟁이'로
취미로 시작한 술 빚기가 사업으로
전통주 미래 유망…젊은이들 관심 가졌으면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 IC로 빠져나와 20분쯤을 더 달리면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이 나온다. 거기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20분쯤 더 들어가 동창마을 복골에 다다르면 양조장이 보인다.


양조장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누룩 익는 냄새. 개량한복에 꽁지머리, 거기에 긴 턱수염까지 기른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전통주조 ‘예술’ 정회철(55) 대표다.

출처: jobsN
전통주조 '예술' 정회철 대표

그는 2000년대 초반 신림동 고시촌에서 ‘헌법의 정석’으로 불리던 스타 강사였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 후 충남대 법학대학원이 스카우트해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교수도 했다. 안정적인 직장과 명예를 얻은 그가 지금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들어와 술을 빚는다. 왜 그는 ‘법’과 관계없어 보이는 술을 빚을까. 

출처: jobsN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있는 '예술'

◇ 신림동 ‘스타 강사’→로스쿨 교수→양조장 대표…그의 인생 유전(流轉)


1981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그는 소위 ‘운동권’이었다. 학생 운동에 몰두하다 보니 학점이 모자랐다. 결국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제적(除籍) 당했다. 이후 노동운동, 구속 등 우여곡절 끝에 1994년 학교로 돌아왔다. 시국 관련 제적 학생을 구제해주는 ‘특례 재입학 제도’ 덕분이었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3년 만인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잠깐 변호사 활동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방향을 바꿔 2000년쯤부터 신림동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사법시험 합격 후 먹고살기 위해 썼던 ‘논점 강의 헌법’ 등 수험서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가 강사로 활동하며 번 돈이 수십억원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2009년 로스쿨 제도 도입에 맞춰 충남대학교에서 그를 교수로 초빙했다. 하지만 교수 생활은 1년 반 만에 끝냈다. 이후 2012년부터 그는 직접 술을 빚고 있다.

 

-왜 강사가 됐나요?

판사 임용을 원했는데, 안됐어요. 성적은 충분했는데, 운동권 경력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연수원 수료 후 선배가 하는 법무법인에서 잠깐 일했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사법시험 준비하면서 아내가 바느질로 생계를 꾸렸어요. 아내에게 미안해서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틈틈이 수험서를 썼는데, 그게 수험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어요. 그래서 아예 신림동에서 강의를 했죠.

-당시 '헌법 하면 정회철'이란 말이 돌 정도였습니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딱히 어디가 나쁘거나 했던 건 아니지만, 몸에 과부하가 걸렸던 거 같아요. 머리가 복잡해서 5분 이상 책을 볼 수 없었고, 자려고 누워도 잘 수 없었어요. 낮엔 강의하고, 밤엔 수험서 개정판 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그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출처: 충남대 제공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정 대표

-교수로 가게 된 계기는요? 왜 1년 반 만에 그만뒀나요.

강의를 그만두고 조금 쉬고 있는데, 충남대에서 연락이 왔죠. 로스쿨 시작하니까 나름대로 이름 있는 사람을 학교로 데려오고 싶었나 봐요. 이미 교수로 자리 잡은 있는 선후배들도 오라고 설득했고요. 교수 임용 과정은 진행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내에게 ‘죄송하다, 교수로 가지 못할 것 같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그걸 안 보냈더라고요. ‘당신은 가르치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다’라더군요. 결국 교수로 갔죠.

학교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으니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헌법은 1학년 때 개념을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나중엔 볼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매 수업이 끝나면 ‘쪽지시험’을 보고 채점도 직접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몸이 안 좋아졌어요. 강사 생활을 끝낼 때와 비슷한 증상이 도졌습니다. 결국 1년 반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충남대 로스쿨 가기 전 쉴 때였어요. 어느 신문에서 양조장 시리즈를 봤어요. 그걸 보고 아내와 함께 전국 양조장 여행을 다녔어요. 술 만드는 게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인터넷 보면서 직접 빚어보니, 신기하게 술이 되는 겁니다. 항아리 속에서 달달한 향기를 내며 맛있게 익는 술을 보곤 술 빚기에 빠졌죠. 주위에 나눠줬더니 ‘정말 맛있다’고 했어요.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한국전통주연구소를 찾아가 1년을 배웠습니다. 교수 시절에도 취미로 술을 만들어 학생들과 나눠 마셨어요. 학교 축제 때 제가 빚은 술로 주점을 열기도 했고요. 교수 그만두고는 2년 정도 전통주 빚는 걸 더 배웠어요. 아예 이걸로 사업을 해도 되겠다 싶었죠.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전통주 아닌 우리 입맛에 맞는 전통주


정 대표는 수험서를 내고 받은 인세(印稅)를 몽땅 털어 넣어 2008년 현재 ‘예술’이 있는 복골리에 땅 1만5000㎡(약 5000평)을 샀다. 앞엔 계곡이 뒤엔 백암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한 겨울에도 따스하게 볕이 든다.


처음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귀촌(歸村) 하려고 이 땅을 샀지만, 마음을 바꿔 양조장을 만들었다. 2012년의 일이다. 그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누룩이 아니라 자연상태에서 숙성·발효시킨 누룩을 이용한다”면서 “여기에 홍천에서 재배한 햅쌀·단호박과 뒷산인 백암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100미터 깊이의 지하수로 술을 빚었다”고 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찹쌀로 빚은 청주인 ‘동몽’과 탁주인 ‘만강에 비친 달’, 찹쌀과 맵쌀을 섞어 빚은 ‘홍천강 탁주’ 등을 내놨다. 최근엔 약주를 증류한 전통 소주 ‘무작 53’도 출시했다. 도수가 53도나 되는 독주(毒酒)지만, 입에 머금었을 땐 달달한 향이 배어 나오고, 넘길 때도 저항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출처: 예술 제공
정 대표가 직접 빚는 ‘동몽’, ‘만강에 비친 달’, ‘홍천강 탁주’(왼쪽), 53도짜리 증류식 소주 '무작 53'

-왜 전통주인가요.

전통을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전통주를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전 전통주라는 표현보단 ‘우리 술’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와인이나 브랜디, 위스키 같은 외국 술이 요즘 인기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한텐 잘 안 맞아요. 그래서 ‘폭탄주’를 만들어 먹거나 특별한 날에만 가끔씩 먹는 거죠. 이걸 대체할 수 있는 맛있는 술, 그걸 찾다 보니 전통주까지 왔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같은 데 가면 한복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 많잖아요? 그들이 전통을 잇기 위해서 한복을 입을까요? 입어보니 예쁘니까 입는거죠. 게다가 요즘 유행에 맞게 색깔이나 형태도 조금씩 바꿨죠. 제가 만드는 술도 전통주에서 원류를 찾았지만,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씩 바꿨습니다. 만드는 방법, 예를 들면 증류 기술 같은 건 서양이 훨씬 발달해 있으니 그들의 기술을 갖다 쓰기도 하죠.
출처: jobsN
포르투갈에서 들여온 증류기. 정 대표는 서양의 발달된 증류 기술을 우리 술과 접목시켜 전통주를 만든다,

-다른 전통주 업체들과 예술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술맛의 차이는 누룩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통주 업체들이 누룩을 사다가 술을 빚어요. 맛이 다 비슷하죠. 자연 누룩은 그 지방 교유의 균이 묻는 건데, 강원도에서 술 빚는 사람이 다른 지방 누룩을 갖다 쓰면 그건 강원도 술이 아니잖아요.

외부에 사다 쓴 누룩에 문제가 있으면 다루기도 힘들고요. 직접 누룩을 띄우자고 결심하고, 2년쯤 누룩을 연구했어요. 개발한 누룩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에서 지난해 5개월 동안 술을 빚지 못하기도 했어요. 사서 쓴 누룩으로 만든 술에 비해 맛과 향이 깊고 풍부합니다.
출처: jobsN
정 대표가 직접 만든 자연 누룩이 숙성되는 모습

-술은 잘 하시나요?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 합니다. 어느 정도 마시면 속이 울렁거려요. 다만 술자리 분위기는 좋아해요. 술자리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거든요. 제가 술을 열심히 빚는 것도 술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아무 술이나 많이 마시잖아요. 하지만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은 몇 잔 밖에 못 마시니까 확실히 맛있는 술이 필요합니다.

-예술의 술이 비교적 비싼데 잘 팔리나요?

저희 ‘홍천강 탁주’는 1병에 만원입니다.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 가격의 10배죠. 최소 5개월은 걸려야 술이 만들어지니 비쌀 수밖에요. 비싸다 보니 전통주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사업 경험이 없어 가능성만 보고 들어왔다가 생각보다 수익이 안 나서 힘들어요. 2012년부터 현재까지 까먹은 돈이 2억원쯤 될 겁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문화적인 욕구가 커질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이든 고급화, 다양화 되는거죠.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서민은 소주와 막걸리, 돈 있는 사람들은 양주에 맥주,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획일화된 게 얼마 안 됩니다. 일제시대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이렇게 된 거죠. 그전만 해도 각 집마다 조금씩 맛이 다른 고유의 술이 있었어요. 옛 문헌을 봐도 수백 가지 술이 있잖아요. 방향 자체는 고급화, 다양화로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jobsN
온도, 습도가 유지된 시설에서 숙성되고 있는 술

-언제쯤 전통주 시장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10년 안에는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까요? 젊은이들이 관심이 많아요. 전국적으로 전통주 교육을 한 지 10년 정도 됐는데, 전통주 교육기관이 서울에만 서너 개, 지방에도 한두 개씩 있습니다. 교육생들이 차고 넘쳐요.

20~30대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고, 소비력이 생기면 전통주 시장이 완전히 자리잡을 겁니다. 그때까지 저도 좋은 술 빚으면서 버티려고요. 지금 젊은이들도 전통주 쪽에 관심을 가지면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 jobsN 홍천=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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