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의 화려한 부활, 사양산업 아닌 '틈새시장'으로

조회수 2018. 11. 5. 14: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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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밝히는 성냥 불빛
2010년 사라진 유엔 팔각성냥 부활시킨 부부
잊혀가는 물건,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
난생처음 성냥 켜보는 10대 학생 즐거워하면 뿌듯

“뭐, 성냥? 그걸로 뭘 어쩌려고?” 신소현(31)씨가 성냥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설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두고 창업을 하겠다니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신씨가 동업자를 찾고 있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전민성(33)씨였다. 전씨도 보험회사에서 상품개발을 하는 회사원이었다. 두 사람은 ‘성냥을 되살리겠다’며 2014년 말 ‘오이뮤(OIMU, Oneday I Met You)’를 창업했다. 


2015년 3월 제품을 내놓자마자 홍대, 가로수길, 연남동 편집숍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유명 기업에서 ‘콜라보 요청’이 쏟아졌다. 교보문고와 민음사, 고급 향수 브랜드 딥티크, 화장품 회사 헉슬리, 기획사 파스텔 뮤직, 영화 ‘스윗 프랑세즈’의 배급사와 협업했다. 1000, 4000개씩만 만든 한정판 성냥이 금세 동났다. 


45개비 성냥 한갑에 4500원. 기존 성냥에 10배 가격이지만 한번에 10만원씩 성냥을 구입하는 소비자도 생겼다. 사라지는 물건을 재해석에 새로운 아이템으로 탄생시켜 대박을 터트렸다. 30대 부부 사업가와 직원 1명이 이룬 작년 매출은 1억5000만원. 창업 2년만에 회사 다닐 때 받던 월급만큼 번다. 올해 유럽으로 해외 수출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전시회에 참가해 오이뮤를 알릴 생각이다. 목표를 달성하면 2배 이상 매출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jobsN
(왼쪽부터) 신소현, 전민성 공동대표.

’필수품’을 ‘기호품’으로 만드는 역발상 

오이뮤가 만드는 성냥은 기존의 성냥과 3가지가 다르다. 


첫째, 예쁘다. 성냥갑만 봐서는 성냥인지 모를 정도로 예쁘다. 더 이상 실용적이지 않은 성냥을 되살리기 위해 ‘한눈에 봐도 갖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을 했다. 가격보다 디자인이 먼저 보인다.


성냥갑에는 일러스트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성냥갑 종이는 디자인에 따라 재질이 다르다. 정갈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도화지를, 나무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에는 목재같이 거친 종이를 썼다. 크리스마스용 디자인에는 트리에 눈이 내려앉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졌을 때 촉촉한 종이를 선택했다. 


‘성냥은 빨갛다’는 고정관념도 깼다. 성냥 머리를 검정, 파랑, 초록, 노랑, 흰색, 회색으로 다양하게 바꾸었다. 길이는 표준인 5cm보다 긴 8cm가 기본이다.


둘째, 튼튼하고 안전하다. 적린(赤燐)을 특수 제작해 물이 묻어도 불이 붙는다. 적린은 문지르면 발화하는 성냥의 머리 부분이다. 또 불씨가 은은하게 타올라 쉽게 꺼지지 않는다. 17cm 성냥은 불이 오래 남아 야외 캠핑할 때 쓰기 좋다. 

출처: 오이뮤 제공
(왼쪽) 2010년 생산을 중단한 유엔 팔각성냥과 오이뮤가 디자인한 팔각성냥. 현재 시중에서 파는 유엔성냥은 중국에서 제조한 가짜다.

셋째, 이야기가 있다. 콘셉트에 따라 성냥을 만든다. 소녀상 성냥, 크리스마스 성냥, 여름 성냥이 대표적이다. 2010년 단종됐던 팔각성냥을 부활시킬 땐 ‘유엔성냥’의 추억을 살렸다. 


상징성을 위해 UN 마크는 그대로 두었다. 대신 팔각 형태를 살리면서 기존 것보다 폭은 좁고 높게 만들었다. 한가지 색상만 써 장식을 최소화했다. 성냥에 깃든 이야기 덕분에 향수 브랜드, 음반 기획사, 영화 배급사까지 다양한 기업에서 오이뮤 성냥을 찾는다. 


디자인과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오이뮤 성냥은 한번 쓰고 버리는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기호품’으로 다시 태어나 불티나게 팔린다.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곳은 40~50곳. 매출의 3분의 1을 오이뮤 홈페이지에서, 나머지는 텐바이텐이나 1300K 같은 디자인 문구 회사, 편집숍에서 나간다. 

출처: 오이뮤 제
신소현, 전민성 공동 대표

“왜 우리나라에서만 옛것이 사라질까” 

신씨는 경원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취업 걱정 없이 졸업 후 현대카드에 입사했다. 현대카드는 ‘디자인’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카드뿐만 아니라 사보, 팸플릿, 포스터, 도서관까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3년 차에 회사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났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을 했는데 회사생활에 묻혀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연히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신씨의 방황을 끝냈다. 의성에 있는 성광성냥공장이 폐업 위기에 처해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성냥을 사라지게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성냥의 몰락이 마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유럽과 미국에서는 여전히 성냥을 쓴다. 미국은 산악 구조나 재난에 대비한 특수 성냥을 개발했고 유럽에서는 관광지나 박물관에서 파는 기념품 성냥의 인기가 좋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옛것을 유지하는 문화가 잡혀있어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특산물이나 옛날 물건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우리나라 성냥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면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오이뮤 제공
(왼쪽) 기본 성냥과 여름 성냥

2014년부터 국내 성냥공장을 찾아다녔다. 성광성냥을 제외하고 국내에 남아있는 성냥공장은 2군데. 한 군데는 성냥을 수입해 판촉물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나마 아산에 있는 유엔상사가 케이크용 성냥을 생산해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엔상사는 회사를 상징하던 상품인 유엔성냥을 2010년 단종했다. 


신씨는 경영 부분을 책임질 동업자를 찾다 친구 소개로 전씨를 만났다. 전씨도 마침 회사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시간과 재능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이템은 생각나지 않아 망설였어요. 소현씨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소현씨가 디자인을 하고 제가 홍보·기획을 맡기로 했습니다.”


신씨와 전씨는 성광성냥 손진국 사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손 사장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했다. “멈췄던 공장 가동을 다시 할 만큼 사업성이 있어 보이질 않는다”며 거절했다. 두 사람은 반나절 동안 손 사장을 따라다니며 “요즘 젊은 사람들도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며 “성냥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되살려보고 싶다”고 설득했다. 재고로 남아있던 케이크용 성냥 60갑을 구입해 서울로 올라왔다.

출처: 오이뮤 제공
왼쪽) 민음사와 협업해 만든 '작가 성냥', (오른쪽) 명동성당과 협업해 만든 '크리스마스 성냥'

성냥갑은 손으로 만들었다. 선뜻 계약하기에는 물량이 많지 않았다. 사각 성냥 도면을 직접 그리고, 오리고, 접어 만들었다. 무늬를 판화 방식으로 그렸다. 동판에 레이저로 형태를 새긴 뒤 잉크를 바르고 종이 위에 도장처럼 찍었다. 이렇게 만든 사각성냥을 쇼핑 가방에 눌러 담아 무작정 홍대, 가로수길, 연남동, 서촌 같은 ‘핫플레이스’의 편집숍을 찾아갔다.  


“사장님들이 황당해했죠. 미리 전화를 한 것도 아니고 물품을 싸 들고 와서 입점 의뢰를 한 경우는 없으니까요. 소품·편집숍에 가보면 테이블 위에 물건이 가득 차있어요. 남는 자리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저희가 막무가내로 찾아간 거죠.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맺은 계약은 0건이었습니다.”


기획서를 만들기로 했다. 두 사람은 제품을 소개하기 보다 ‘성냥 이야기’를 담았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엔 300개가 넘는 성냥공장이 있었다. 집들이 선물로 성냥이 으뜸인 시절이었다. 하지만 1980년 휴대용 라이터가 등장한 뒤 성냥 산업은 빠르게 쇠퇴했다. 성냥 공장을 찍은 사진을 싣고 ‘이 공장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출처: 오이뮤 제
오이뮤에서 만든 향(香).

2주 동안 전국에 있는 편집숍, 디자인 문구 회사에 기획서를 보냈다. 한두 군데에서 계약을 맺자는 답장이 돌아왔다. 납품하는 개수가 500갑, 1000갑씩 늘어났다. 더 이상 성광성냥에서 성냥을 공급받기 힘들었다. 성광성냥 손 사장은 유엔상사 황기석 사장을 소개했다. 유엔상사 황기석 사장은 “젊은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후 새벽 2~3시까지 일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두 사람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오이뮤 성냥은 편집숍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났다. 2015년 여름, 교보문고에서 연락이 왔다. “민음사랑 18주년 기념 아이템을 생각 중인데 저희 성냥이 책이랑 잘 맞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프랑수아즈 사강, 잭 케루악까지 작가 5명을 모델로 성냥갑을 디자인했다. 한정판 4000개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출처: 오이뮤 제공
2015년 봄 결혼한 신소현, 전민성 대표

“10대 학생들, ‘성냥 처음 켜본다. 신기하다’ 꺄르르 웃어”

“한번은 10대 학생 두 세명이 와서 성냥을 사더니 ‘성냥을 태어나서 처음 사보고, 켜본다’며 까르르 웃더라구요. ‘우리가 처음 생각대로 잘하고 있구나’하고 뿌듯했어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성냥은 신씨와 전씨도 이어주었다. 두 사람은 작년 봄 화촉을 밝혔다. 신씨는 “하는 일 열의 아홉은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운다”며 “서로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치열하게 의견 대립을 하는 게 사업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성냥이 죽어가는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저희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틈새시장을 파고든 거죠.”  


잊히던 물건에 다른 옷을 입혔을 뿐이다. 그런데 새 시장이 열렸다. 작은 발상의 전환이 시장을 만들어냈다. 


옛것으로 틈새시장을 만드는 역발상을 계속했다. 작년 11월에는 ‘향(香)’도 내놨다. 디자인을 다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향기도 개발했다. ‘향’하면 떠오르는 매캐하고 텁텁한 느낌이 없는 제품이다. 오이뮤가 만든 향은 백단나무향, 무화과향, 귤피향 세 가지. 요즘 흔히 사용하는 디퓨저가 경쟁상대다. “'사라져가는 것들' 목록을 만들었어요. 30개나 있습니다. 이 중에서 무엇이든, 언제든지 오이뮤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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