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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차 탄 손님들이 줄 서는 팥빵집의 대박비결

조회수 2018. 11. 5. 14: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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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억 빚쟁이에서 팥빵으로 성공하다
팥고당 박준현 대표
은행, 삼성 근무 후 '연쇄 창업 실패'
국산 팥 쓰는 팥빵으로 인생역전

얼마 전 문을 연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 쇼핑몰엔 수십명씩 줄을 서는 빵집이 있다. ‘녹차 팥빵’ ‘크림 팥빵’ 등 메뉴 30여가지를 판다. 가격은 개당 2000~3000원. 개당 1000~1500원에 팥빵을 파는 시중 빵집과 비교하면 가격이 비싸지만 손님이 넘친다. 스타필드 매장 하루 판매량만 3000개(주말 기준). 고객들이 10분~20분 줄 서는 것은 일상이다. 창업 3년차 팥빵전문점 ‘팥고당’ 이야기다.


팥고당은 요즘 뜨는 인기 빵집 브랜드 중 하나다. 2014년 서울 역삼동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국회의원과 관료, 기업 CEO 등 강남 부자들이 줄을 서 먹는 빵집으로 유명세를 탔다. 최근까지 신세계 강남점ㆍ영등포점ㆍ갤러리아 백화점 등 국내 주요 핫플레이스 14곳에 매장을 열었다. 창업 첫해 매출 30억원. 지난해에는 매출이 60억원(순이익률 25%)으로 올랐다. 중국에 진출한 올해 매출 목표는 100억원이다.


창업자인 박준현(52) 대표는 “팥고당은 인생 최초의 성공”이라고 했다. 주택은행(KB국민은행의 전신)과 삼성전자를 다니다 창업에 도전했지만 여러차례 실패했다.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17억원의 빚을 떠안은 ‘실패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본점 50여명, 공장 생산직 등을 포함해 130여명의 직원을 둔 사장님이다. 팥빵 하나로 일군 인생역전기를 들어보자. 

출처: jobsN
박준현 대표

◇ 죽어가던 팥빵을 살렸다

팥빵으로 매출 60억을 내는 비결이 뭡니까.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국산 팥으로 만든 팥빵이에요. 시중 대형 제빵 프랜차이즈는 중국산 팥을 썼습니다. 중국산 팥은 1kg당 3500원이면 구합니다. 그러나 맛과 빛깔이 좋은 국산 팥은 시중에서 1kg당 1만6000원에 팔리거든요. 저는 좋은 국내 파트너를 구해 1kg당 5000~7000원에 팥을 사들입니다.

둘째 안 달아요. 시중 팥빵은 팥과 설탕의 비율이 일대일입니다. 설탕을 많이 넣으면 방부효과도 있지만 너무 달아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거든요. 설탕 맛이 많이 나면 20~30대 고객은 좋아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40대 이상 중장년 고객은 다릅니다. 담백하고 은은한 팥 맛이 설탕 맛에 죽는 걸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팥고당은 팥과 설탕의 비율을 1대 0.48의 비율로 섞습니다.

셋째 팥을 한번 삶고 물을 다 버립니다. 팥을 삶을 때 한 번에 40㎏ 정도만 삶습니다. 그러나 공장에서 빵을 만드는 제빵 프랜차이즈는 수백kg 상당의 팥을 한 번에 삶고 물을 버리지 않아요.

워낙 양이 많아서 물을 버리는 작업 자체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을 안 버리고 계속 팥을 끓이면 결국 떨떠름한 쓴맛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빵의 두께를 얇게 해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대신 팥 앙금을 최대한 많이 씁니다.
출처: 팥고당 제공
팥고당의 녹차크림 팥빵을 비롯한 다양한 빵 제품들

왜 팥빵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예전 명동에 설탕을 넣지 않은 팥 도넛 집이 인기였습니다. 뜨거운 팥에 계피 향이 나는 앙금을 재료로 이용했습니다. 도넛인데도 설탕을 안 쳤어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빵집에서 팥빵을 사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빵집이 대형화하면서 인건비에 초점을 맞추니까 재료비를 아끼는 거에요. 자극적인 맛에 사람들이 질려서 팥빵이 죽어갔습니다. 담백한 과거 팥의 맛을 좋아하는 중장년층 이상 세대들은 떠났습니다.

그래서 잠재 시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팥빵에만 집중해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팥고당 서촌점에서 그를 만났을 때 인천국제공항에 팥고당 입점 제의를 하려는 대기업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의 입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백화점에서 ‘빵이 동났다. 더 보내라’고 할 때가 잦아요.

거절합니다. 백화점 입장보다 우리 생산 스케줄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아야 하루에 7000여개 정도만 만들고 하루에 100개 이상 안 남기는 게 원칙입니다. 남은 빵은 사회복지기관 등 어려운 곳에 기부합니다.” 

출처: 팥고당 제공
하남 스타필드 팥고당 매장에 줄 서는 손님들

◇ 창업 3차례 실패, 17억 빚을 10년 갚다

한성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주택은행. “6개월간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해 합격했다”고 했다. 은행 홍보부에서 브랜드 전문가로 유명세를 타다 2000년 삼성전자에 계약금 1억원을 받고 스카우트됐다. 삼성전자 1호 사내벤처 기업인 매직아이의 브랜드 팀장으로 잠시 일하다 2001년 창업했다.  

아이템이 무엇이었습니까. 

지인에게 투자를 받고 직장생활에서 모은 돈을 합쳐 17억원으로 창업했습니다. 사진과 음악을 편집해 콘텐츠를 만들고 이메일로 전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였어요.

그런데 사업 도중 동료 직원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스카우트한 직원들이 핵심기술자들을 데리고 별도의 회사를 만들어 나간 겁니다. 직원 40명 가운데 4명 남았습니다. 바로 폐업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 LG전자에 다니던 지인과 동업해 휴대폰 액정기술을 이용한 IT회사를 차렸다. 투자유치에 실패해 문을 닫았다. 2003년에는 1인 영화기획사를 차렸다.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블랙 코미디 시나리오를 직접 썼고 배우 섭외를 시도했다. 영화화를 하지 못해 또 폐업했다. “돈을 갚으라”는 지인들의 연락이 쇄도했다.  

출처: jobsN
그는 "삼성을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해 수차례 실패했다"며 "팥고당은 인생 최초의 성공"이라고 했다

어떻게 했습니까. 

가족 얼굴을 볼 수 없더군요. 집을 나와 성남에 원룸을 얻어 살았습니다. 빌린 돈이라도 갚자는 생각에 그나마 전문성을 쌓은 브랜드 컨설팅에 손을 댔습니다. 외식업체들 간판부터 디자인, 홍보와 기획전략을 무기로 70여개 매장을 컨설팅했습니다. 매년 수억원 정도 매출을 냈습니다.”

그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매달 2000만원 이상 빚을 갚아 나갔다고 했다. 지금은 빚을 대부분 갚았다. “징그러웠습니다. ‘이래서 자살 하는 거구나’ 느꼈습니다. 목숨 끊자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하지만 가족들에게 손은 안 벌렸습니다. 자존심까지 버리진 말자는 게 제 신조입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아이템은 매일 아침 먹는 팥빵이었다”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창업을 계획했다. 팥빵이었다. “30년 이상 매일 아침 팥빵을 먹었거든요. 밥보다 팥빵을 좋아하는 ‘팥 덕후’입니다. 언젠가 먹다 만 팥빵을 빤히 쳐다보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만큼 팥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어린 시절에 먹어본 담백하고 설탕 없는 팥빵 한번 팔아보자’

수차례 실패했는데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바닥을 하도 오래 기어서 떨어질 때도 없지 않습니까. 죽기도 각오했는데 뭘 못할까요. 제가 깨달은 것은 돈만 보고 창업하면 망한다는 겁니다. 욕심을 채우려고 달려가면 빈털터리가 돼요.

IT를 전혀 모르는데 쏠림현상을 쫓아 돈이 된다 싶어 쫓아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영화기획사? 영화인 인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이걸 첫 창업하고 10년 지나서 깨달았습니다.
출처: 팥고당 제

자본금은 없었다. 브랜드를 컨설팅해준 한 고깃집을 찾아갔고 기획서를 내밀었다. “3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강남 역삼지점을 차렸다. 국산 팥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충주의 한 영농법인과 계약해 팥을 사들였다. 수개월간 직접 팥을 삶고 불리며 레시피를 개발했다.   

가게를 열고 반응이 어땠습니까. 

그동안 빵은 선물용으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빵의 형태가 달라 이걸 담을 만한 선물박스가 나오지 않거든요. 그런데 팥빵은 모양이 똑같으니까 선물용으로 만들 수 있더군요.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오픈하자마자 부자들이 벤츠 차량을 가게 앞에 대고 몇 박스씩 사가는 겁니다.

그때 든 생각은. 

주택은행이나 삼성전자 동료가 최고로 잘 나갈 때 저는 혼자 빌빌거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요즘 명예퇴직할 때 제 인생이 폈습니다. 아직 살아계신 부모님이 처음으로 저에게 웃음을 보이십니다. 아내에게 월급도 꼬박꼬박 주고 있습니다. 나이 50이면 어떻고, 60이면 어떻습니까. 사람은 태어나서 한번 성공하지 않습니까. 전 그 시기가 조금 늦은 50세에 찾아왔을 뿐입니다.

많은 직장인이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데 조언하자면. 

실패가 창업에 꼭 필요하더군요. 물론 누가 내 재산을 말아먹으면서 실패하겠어요. 그런데 실패를 피해가려고 하면 악화가 앙화를 구축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언젠가 실패가 오거든요.

성공사례를 공부하지 마세요. 환상만 생깁니다. 대개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처음과 끝만 등장합니다. 실패사례를 더 공부하세요. 트렌드를 쫓지 마세요. ‘아이템이 트렌디하다’는 소리가 나오면 이미 성숙시장이고 시장이 꺼진다는 소리입니다.

잠을 줄여야 합니다. 저는 하루에 3시간 잡니다. 밤 11시쯤에 퇴근하면 뉴스와 책을 보며 사업에 도움이 될 지식을 연구하고 새벽 3~4시에나 잠에 듭니다. 선천적으로 잠이 많은 사람은 창업이 어렵습니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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