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서 장사하다 탈북->100대1뚫고 신한은행원으로 '제2인생'

조회수 2018. 11. 5. 14: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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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에서 신한은행 대졸 공채 합격
북한서 장사로 생계 유지
탈북후 대학 입학, 신한은행 합격까지
"북한엔 없는 은행 근무, 떨려요"

함경북도에서 해령에서 자란 최태희(가명·26)씨. 2008년 탈북, 중국에 2년간 숨어 지내다 2010년 한국 땅을 밟았다. 독학으로 검정고시 보고 2012년 성신여대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생소한 경제용어, 영어 단어와 싸우길 4년. “북한에 없는 은행에 취업하고 싶다”는 꿈을 마침내 이뤘다. 200명 뽑는데 2만명이 몰린 신한은행 2016년 하반기 대졸 공채에 합격한 것이다. 신한은행 대졸자 공채 역사상 새터민이 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밤잠을 설쳤습니다. 짜릿한 기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신한은행의 평균초봉은 4900만원, 직원 평균연봉은 8200만원. 신한은행 취업 장벽은 이른바 ‘스카이’(SKY)대를 나온 청년들도 넘기 어렵다. 하물며 최씨는 금융 관련 자격증이나 토익 점수 같은 스펙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번에 그 높고 두터운 벽을 넘었다. 


신한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다른 지원자들이 흔히 가진 스펙은 없었지만 어린 나이에 위기를 극복한 경험과 밝은 성격, 순발력을 높이 샀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신한은행 합격기를 들어보자.

출처: 신한은행 제공
최태희씨

◇ “북한 장마당(시장)에서 마늘, 양파 팔아 생계 유지”

북한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살(고2)때 부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생계 수단이던 약초 장사를 접었다. 3살 많은 언니와 둘이 생계를 꾸려야 했다. “제 손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학교를 못 다닐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했나요. 

시장에서 노점 장사를 했습니다. 처음엔 버스를 타고 해령에서 1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농촌에서 양파랑, 마늘을 가진 돈으로 샀습니다. 한 자루 무게가 50~100kg인데, 갈 때마다 2자루씩 물건을 떼어왔습니다. 마늘과 양파 1kg을 300원에 사와 해령에서 500~600원에 팔았습니다. 마늘, 양파 장사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힘들었습니다.

나중엔 다양한 물건을 파는 잡화상들로부터 국수나 담배 등을 떼다가 닥치는대로 팔았습니다. 처음엔 어리다고 거래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다른 사람보다 마진을 더 주겠다'고 설득해 외상으로 물건을 떼다 팔았습니다. 힘들었지만 돈 버는 게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북한에서는 장래가 어둡다는 판단을 내리고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2008년 무렵이었다. 중국에서 숨어 지내며 중국어를 배웠다.  

성신여대는 어떻게 입학했나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대학은 재외국민 수시전형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제학을 선택한 이유는 '거래'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물건을 떼다 팔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 힘들지 않았나요. 

처음에 경제학 용어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전공 수업 따라가기도 벅찼습니다. 대학교 2학년 들어 은행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북한에는 한국 같은 민간 시중은행이 없습니다. 그런데 은행은 경제활동의 기본인 돈을 거래하는 곳이라 매력적이었습니다. 은행 입사를 꿈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토익을 10번 이상 봤는데 점수가 700점을 넘지 못했다. 노력했지만, 학점이 3.5점 이하였다. 은행 취업준비생들이 많이 따는 금융 관련 자격증 따기에도 실패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 1%만 들어가는 곳이 은행이라던데, 포기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졸업 시점은 다가오는데 다른 친구들처럼 스펙을 쌓지 못했거든요.” 새터민을 여름방학 특별 인턴으로 채용한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에서 2개월간 일한 경력이 스펙의 전부였다.  

출처: 신한은행 제공
최대희씨

◇ 숨기고 싶은 나만의 경험을 보여줬더니 한번에 합격했다

그래도 2016년 여러 은행 공채에 지원했다. 처음엔 자기소개서에 북한 경험은 쓰지 않았다. 숨기고 싶었다.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한국 친구들과 경쟁해 대학을 갔다는 식으로 썼다. “대학에서 학회활동을 했고, 끈기와 인내가 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썼습니다. 그러나 서류에서 모두 떨어졌습니다. 저만의 경험과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신한은행 공채에선 전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바꿨나요.

북한에서의 경험과 위기극복 사례를 강조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에서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극복방법을 구체적으로 썼어요. 저처럼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은 어떤 힘든 상황도 쉽게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펙은 부족하지만, 정신력은 제가 가장 강합니다. 무조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는 문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서류에 덜컥 붙었다. 신한은행 입사원서엔 외국어·자격증 같은 스펙을 적을 필요가 없다. 요즘 유행인 이른바 무스펙 전형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무스펙 전형의 수혜자다.


서류를 통과하면 인성과 창의성 면접·1대9 찬반토론(10명이 한명씩 돌아가며 특정 주제에 대해 찬성하고, 남은 9명은 반대하는 토론방식)·인적성 테스트를 봐야 한다. 인적성 시험도 있지만 점수 비중이 낮다. 면접은 면접관들이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만 보고 질문하는 블라인드 면접이다.  

출처: jobsN
2016년 하반기 신한은행 공채 면접 현장

토론 면접 주제로 ‘삼겹살과 소주냐, 치킨과 맥주냐’가 나왔다. 최씨는 삼겹살과 소주가 낫다고 했다. “삼겹살은 일석삼조입니다. 맛도 있지만, 마늘과 상추 같은 건강식품을 곁들여 먹을 수 있습니다. 소주까지 한잔 먹어 기분도 좋지 않습니까. 삼겹살은 또 집에서 쉽게 구워먹잖아요? 치킨은 집에서 해먹기 불편하지 않나요?”


남은 지원자 9명이 “치킨이 더 낫다”며 반박했다. 신한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보통 공격받는 지원자들은 한명씩 질문을 차근차근 받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지만 최씨는 미소를 잃지 않고 손을 먼저 든 사람 순서로 질문을 받고 차분하게 대답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창의성 면접에서도 돋보였다. ‘사각형, 삼각형, 동그라미가 있다. 이걸로 신한을 표현하라’는 질문이 나왔다. 커다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  

어떻게 표현했나요. 

사각형을 땅으로 그리고, 삼각형을 민들레씨로 표현했습니다. 동그라미는 신한은행입니다. 동그라미에서 여러 개의 민들레씨를 전 세계로 뿌리고, 땅에 씨앗이 내려앉아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전 세계로 민들레씨를 뿌리면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글로벌 진출이 가장 큰 고민인 신한은행의 비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좋은 점수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신한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최씨는 본인이 면접을 치른 당일 지원자 1000여명 가운데 점수로 1등을 해 은행 내부에서 화제였다”고 했다. 그녀는 2월부터 영업점 창구에서 일을 시작한다.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훌륭한 은행원이 되겠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겠습니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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