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꿈의 직장' 뚫은 22세 그녀들 "대학도 다녀요"

조회수 2018. 11. 5. 14: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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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도 진학도 한번에 잡았죠
만 18세에 '꿈의 직장' 한국거래소 입사
'선 취업 후 진학'제도로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주경야독'
특성화고 진학 좋지만, 그 만큼 각오와 노력 뒤따라야 성공

직원 평균 연봉 1억 870만원, 평균 근속 연수 18년…. 신입사원 초봉이 400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진 ‘꿈의 직장’ 한국거래소. 만 18세에 이곳에 입사한 ‘고졸’ 청년들이 있다. 

출처: 한국거래소 제공
2013년 7월 한국거래소 고졸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5명

한국거래소는 지난 2013년 “학력 중시 풍토를 개선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열린 고용 확대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며 고졸 일반직 신입직원을 채용했다. 서류심사, 논술·영어 필기시험, 인성·직무적성검사와 두 번의 면접평가까지 거쳐 총 5명을 최종 채용했다. 36.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꿈의 직장’에 입성한 이들은 오는 20일이면 한국거래소에서 일한 지 1300일이 된다. 이른바 ‘스카이’ 출신들도 들어가기 어려운 한국거래소. 어느덧 한국거래소 4년차 직원이 된 문소영·신다혜(22) 사원을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어봤다.

◇ ‘고졸’ 우려 딛고 안착 성공


두 사람이 입사할 때만 해도 ‘고졸’이라는 이유로 거래소 안팎에선 ‘맡은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하는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1300일이 지난 지금, 거래소 직원들은 이들에 대해 ‘자기가 맡은 일에 헌신적이다’ ‘팀장이 놓친 부분까지 지시 이상으로 업무를 챙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리더십을 보이기도 한다’ 등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출처: 한국거래소 제공
한국거래소 입사 4년차 신다혜(왼쪽)·문소영 사원

맡은 일에 대해 알려주세요.

(문소영, 이하 문) 유가증권시장본부 증권상품시장부 ETN 시장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TN은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데, 우리 말로는 상장지수채권이라고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ETF, 상장지수펀드의 사촌벌입니다. 증권사가 운용을 맡으면 ETN,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면 ETF 정도로 구별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ETN 상장에서부터 폐지까지 모든 일을 맡고 있습니다.
(신다혜, 이하 신) 코스닥시장본부 코넥스시장 운영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코넥스시장은 중소기업전용 신(新)시장이에요. 중소기업이 자금조달을 대부분 은행 대출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자비용도 크고, 은행의 대출 정책에 따라 회사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거든요. 이 때문에 주식 발행을 통해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저는 코넥스 상장사에 재무적인 이벤트가 발생하면 매매거래 정지 조치를 입력해하기도 하고, 관련 통계를 모아 보도자료를 만듭니다. 코넥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에 저희 팀이 관여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입사 후 업무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문)용어가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ELW 있잖아요? 학교 다닐 때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증 공부하면서 ‘주식 워런트 증권’이라고 외우죠. 단어 옆에 개념도 상세히 적혀 있어요. 특정 기초자산을 사전에 정한 미래의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유가증권. 그런데 개념을 아는 것과 실제 업무에서 이 상품을 심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ETN은 원유·가스·콩 가격 등 기초자산으로 삼는 게 정말 다양해요. 상품의 특성도 공부해야 하고, 해외시장 동향도 파악해야 하죠. 쉽지 않았죠.
(신)유가증권시장은 1956년, 코스닥 시장은 1996년에 개장했습니다. 그런데 코넥스 시장은 아직 개장한 지 채 4년이 안됐기 때문에, 어떤 이벤트가 생겨도 다 처음이에요.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을 참고하긴 하지만, 저희가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 코넥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선례가 될 것이라 신경이 많이 쓰여요. 여전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혹시 동료가 ‘고졸’이라는 데 편견을 갖고 대하진 않나요?

(신)선배들이 편견을 갖고 대하는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자격지심이 문제였죠. 스스로 ‘고졸이라고 무시하지 않을까’ ‘대학을 나왔으면 맡은 업무를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데 말이죠. 이제 4년차에 접어드니 자격지심도 많이 없어졌어요.
(문)저도 스스로 눈치를 자주 봤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졸 혹은 박사라도 처음 들어와선 모르는 일이 많았을 텐데 혼자서 ‘내가 너무 모르는구나’ 자책하고, 부족함을 탓하기도 했죠. 선배들 쫓아다니며 묻고, 또 물었어요. 많이 괴롭혔죠. 입사 이후 2년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되더라고요. 물론 업무는 늘 새롭고 배워야 할 것이 많아요.

◇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움켜쥔다”


문소영 사원은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신다혜 사원은 서울 도봉구의 문화고등학교(옛 도봉정보산업고)를 졸업했다. 이들 입사 당시 거래소는 전국 300여개의 상업계 특성화 고등학교에 추천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추천 조건은 내신 2등급 이상. 꽤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당연히 각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추천을 받았고, 그들 중에서도 합격의 영광을 차지한 게 이들이다.


출처: jobsN
신다혜 사원

어떻게 거래소에 입사하게 됐나요?

(문)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회계라는 걸 접했어요. 회계가 어디에 쓰는 건지도 몰랐지만, 선생님이 칠판 왼쪽 끝에서부터 오른쪽 끝까지 쭉 써내려가는데 나중에 딱 숫자가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 쾌감이 느껴졌어요.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하고, 거기에 맞춰 관련 자격증을 많이 모았어요. 컴퓨터 자격증은 물론이고 펀드투자상담사, 전산회계·세무회계 등 자격증도 땄어요. 하도 많이 따서 정확한 숫자는 기억 안 나는데, 10개는 넘을 정도예요.

‘자격증 컬렉터(collector·수집가)’라는 별명도 붙었어요. 그런데 거래소 채용 공고가 뜬 거예요. 고등학교 때 교내 홍보 동아리 활동을 해서 낯선 사람에게 의견을 밝히는 데 자신이 있었고, 또 운동을 좋아해 학생회 체육부장을 맡았던 경험 등을 자기소개서에 녹여냈죠. 거기에 수능 외국어 능력과 비즈니스 영어로 영어 시험을 준비했고, 평소 읽었던 경제신문을 보면서 논술도 준비했습니다.
전 소영이랑은 반대였습니다. 취업보단 대학 진학을 목표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친구들이 자격증 딸 때 공부만 했죠. 그런데 막상 거래소 채용 공고가 나오니 흔들리더라고요. 냉정하게 생각했죠. 진학을 선택했을때 어느 정도의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설사 원하는 대학을 간다 해도 취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일단 입사 원서 내고, 그때 접수기간이었던 자격증 시험은 모두 신청했어요. 분명히 자격증이 없다는 게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면접 당일까지 자격증 4개를 땄어요. 역시 면접에서 ‘자격증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더군요. 전 당당히 자격증을 내밀었죠. 면접관들이 제 노력을 인정해주셨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처: jobsN
문소영 사원

왜 특성화고에 진학하게 됐나요?

(문)‘언니’들의 설득에 넘어갔죠. 광주여상에는 홍보부가 있어요. 출신 중학교에 가서 특성화고의 장점을 알리는 일이죠. 한날은 언니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취업 잘된다’는 주제로 특성화고의 장점에 대해 얘기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런지 집에 와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죠. 특성화고에서 자격증 따면 금융권으로 취업이 가능하겠구나 싶었고, 혹시 중간에 마음이 바뀌더라도 진학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자료를 찾고 또 찾으면서 확신 같은 게 생겼어요.

(신)제 입으로 이런 말씀 드리긴 좀 쑥스럽지만,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어요. 특목고 가려고 준비했을 정도니까요. 중학교 3학년 때 하루는 너무 공부에 지쳐서 학원을 안 갔어요. 그리고 부모님께 편지를 썼죠.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요. 방황의 시기를 지나면서 성적도 많이 나빠졌어요.

그러면서 때 되면 가는 인문계, 따라가는 인문계는 가기 싫다. 남들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마침 집 근처에 문화산업 쪽으로 특화된 학교가 눈에 띄더라고요. 집도 가깝고 해서 특성화고를 선택했죠.

주위의 반대는 없었나요?

(문)중학교 한때 290등까지 성적이 떨어졌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중 3때 전교 50등까지 성적을 올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특성화고를 가겠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단번에 자르시더라고요. ‘왜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거죠. 전 이미 특성화고에 대한 확신이 생긴 터라 계속 부모님을 설득했죠. ‘특성화고 취업 잘된다’ ‘특성화고 출신 금융권 입사’ 등등 수많은 기사를 뽑아서 보여 드렸죠. 결국 ‘맘대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신)저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특성화고로 가서 일찍 배워서 공연기획자가 될 거라고 버텼죠.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처럼 결국은 허락해주시더라고요.

◇올해 나란히 명문대 입학… ‘고졸’ 딱지 떼다

두 사람은 올해 나란히 서울 시내 사립대에 입학했다. 신씨는 경희대 국제통상학과, 문씨는 홍익대 디자인경영학과 ‘17학번’이 된다.


 ‘선(先) 취업 후(後) 진학’ 제도 중 '재직자 특별전형'을 이용했다. 취업 3년 후 대학생을 꿈꾸는 특성화고 출신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제도로 고려대·경희대·중앙대·홍익대 등 여러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다.

 

두 사람은 거래소 3년 경력을 채우자마자 재직자 특별전형에 도전, 오는 3월부터 낮엔 거래소에서 일하고 주 2~3회 정도 저녁에 학교에서 공부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인 셈이다. 

대학 진학 소감은?

(문)사실 전 특성화고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 제도를 알고 있었어요. 취업 후 진학하는 것도 제 계획에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진 제가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가고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있어요.
(신)제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었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취업도 했고, 대학까지 가게 됐으니 행복하죠. 비슷한 또래 친구들이 모여 학교생활을 하게 되는데 설레기도 하고요.

남들보다 빨리 취업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문)2013년 수능시험날 마침 부서 회식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생활의 꽃은 수능이잖아요. 마침 그날이 제 생일이기도 했어요. 수능시험 본 친구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자신을 보니 기분이 서러워지더라고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신)저도 울었어요. 수능시험일에도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직 스물 셋이에요. 대학 다니는 친구들 보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놀아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그런데 저는 그게 아니잖아요. 직장인으로서 매일 해야 할 일도 있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신)코넥스시장 개장일과 제 입사일이 똑같습니다. 코넥스가 성장하는 것처럼,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또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며칠 지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적어도 내가 무슨 일을 했다 정도는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게 목표입니다. 허투루 세월 보내지 않고, 대학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게 목표입니다.
(문)제 특기가 계획 세우기입니다. 다이어리에 ‘죽기 전 4개국어를 하고 죽겠다’는 목표를 썼어요. 꼭 이뤄야죠. 금융전문가가 돼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더욱 발전하는 데 한 몫 하고 싶습니다.

특성화고 진학을 계획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요.

(신)특성화고도 좋고, 선취업 후진학 제도도 좋아요. 좋은 건 많이들 얘기하죠. 그런데 무조건 권하고 싶진 않아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잖아요. 평범하지 않은 삶은 힘들잖아요. 저는 다행히 일이 잘 풀렸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만약 특성화고를 선택한다면, 그만큼의 각오와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문)아무 생각 없이 취업이 잘된다는 홍보만 보고 특성화고를 가선 안 돼요. 스스로 꼭 질문하세요. 하고 싶은 게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계획도 세우고요. 남들 자격증 딴다고 따라가고, 남들 대학 간다고 공부한다고 따라 하고. 그러다 보면 취업도, 진학도 모두 못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지 말고 스스로 확신을 가져야 해요.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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