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기름밥 먹었더니 임원 됐네요"..그 남자의 승진기

조회수 2018. 11. 5. 14: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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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술직 사원들의 롤모델
두산인프라코어 80년 역사 첫 기술직 출신 임원
회사 부활 이끌 G2 엔진 안정화, 젊은 직원과 소통이 승진 비결
임금 높아지고 자부심 더해진 현장직 도전해야
출처: jobsN
올해 1월 1일자로 공장(工長)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이희연 두산인프라코어 기술상무

쇠를 깎아 부품을 만들었다. 그 부품을 모아 엔진을 만들었다. 38년을 엔진 ‘한 우물’만 팠다. 나이 쉰 여덟살. 남들은 은퇴를 준비하지만, 그는 올해 대기업 임원 자리에 올랐다. 이희연 두산인프라코어 기술상무 얘기다. 회사 80년 역사상 첫 기술직 임원이다. 두산인프로코어의 모태는 1937년 생긴 조선기계공작소다.


지난 11일 오후 이 기술상무를 만나기 위해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을 찾았다. 작업복을 입고 안전화를 신은 남자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냈다.


임원이 된 게 실감이 나느냐고 물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차가 나오니 ‘아, 내가 임원이 됐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아직 연봉계약서를 보지 못해 연봉을 얼마 받을지 모른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40년 가까이 현장에서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회사가 인정했다고 생각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기술상무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도입한 새로운 기술직 인사제도다. 기존엔 사무직 임원이 기술직 사원들을 통솔했지만, 이젠 기술직 사원들은 이 기술상무의 지휘를 받게 된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기술직 사원은 이 기술상무처럼 생산 현장의 리더로 성장하는 ‘현장매니지먼트 트랙’과 최고의 기술 장인으로 성장하는 ‘기술전문가 트랙’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게시판에 붙은 국비 장학생 포스터 때문에 기술 배워

이 기술상무는 1977년 경기도 평택 안중고를 졸업했다. 이후 지역 농협의 사환(使喚)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잔심부름이나 청소 등을 도맡았던 그는 회사 게시판에 붙은 한국폴리텍대학 모집 포스터를 봤다. 사환 생활을 정리하고 1977년 폴리텍대학 기계가공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대학을 졸업하고선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前身) 대우중공업에 입사했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참 어려웠죠.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평택은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이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쯤 전기가 들어왔으니까요. 아버지가 농사를 지어서 자식들을 먹여 살렸지만, 늘 쌀이 모자랐어요.

장리쌀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보릿고개 때 부잣집에서 쌀을 빌려다 먹고, 가을에 추수하면 이자를 5할쯤 붙여 갚습니다. 쌀이 떨어졌으니 빌리긴 했는데, 가을에 이자 쳐서 갚고 나면 또 봄에 먹을게 모자라고…. 악순환이었죠. 그래도 부모님께서 열심히 일한 덕분에 고등학교는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이희연 기술상무 제공
대학시절 이 기술상무(왼쪽 둘째)가 공부하고 있는 모습.

어떻게 기술을 배울 생각을 하셨나요.

고등학교 졸업 후 농협에서 사환 생활을 했어요. 청소도 하고 잔심부름도 했습니다. 청소하다 우연히 회사 게시판에 국비 장학생 뽑는다는 포스터를 봤어요. 사환 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살아선 비전이 없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죠. 기술이라도 배우면 굶어 죽진 않겠다 싶어 무작정 지원했죠. 기계가공, 기계조립, 밀링(milling) 세 분야로 뽑았는데, 뭐가 뭔지 그때 알았겠어요? 제일 많이 뽑는 기계가공에 지원했죠.

왜 두산인프라코어를 선택했나요.

대학 때 참 많이 맞았어요. 요즘은 그런 게 없죠? 그땐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어요. 자격증 시험 합격선이 60점인데, 매달 모의고사를 보고 점수가 모자라면 그만큼 맞았죠. 제 전공인 기계가공 쪽 자격증은 물론이고, 기계조립 쪽 자격증도 하나 따서 졸업했죠.

제가 입사한 1978년엔 대우중공업이었어요. 1976년 국영기업이었던 한국기계공업을 인수한 대우중공업은 ‘대우맨’을 키우려고 젊은 사람을 많이 뽑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중공업이 막 태동하는 단계여서 전망도 밝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대한민국 산업용 디젤 엔진의 산증인… G2로 두산인프라코어 부활의 신호탄 쏘다

이 기술상무는 국내 산업용 디젤 엔진의 산증인이다. 그가 입사했을 무렵 두산인프라코어(당시 대우중공업)는 독일 만(MAN)사의 기술을 도입해 엔진을 생산하고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1985년 국내 최초의 독자 개발 디젤 엔진 ‘스톰(Storm)’을 내놨다. 이 엔진은 현대차·대우차·쌍용차 버스·트럭의 심장 역할을 하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다.


회사는 2007년과 2010년엔 강화되는 환경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Euro-4, Euro-5 엔진을 각각 개발했고, 2013년엔 저비용·고효율 소형 디젤엔진 ‘G2’를 양산한다. 이 기술상무는 현장에서 이 엔진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출처: 이희연 기술상무 제공
사내 체육대회(좌), 사내 연극(우)에 참여한 이 기술상무

첫 국산 디젤 엔진 ‘스톰’ 생산 때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요.

1985년 이전엔 독일과 기술 제휴로 엔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1985년 스톰이 출시되자마자 아주 난리가 났어요. 동급의 외산 엔진보다 훨씬 저렴했거든요. 국산품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버스·트럭 만드는 회사들이 현금을 가져와서 회사 앞에 줄 서서 기다리곤 했어요. 그때 자동차 회사 영업 담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자기 회사에 가져갈 물량 챙기기였습니다. 스톰이 나오지 않았다면 수입품을 썼겠죠. 국내 기술로 만든 엔진이 생기면서 대중교통과 산업발전에 나름대로 이바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 기술상무의 임원 승진 이유 중 하나로 “G2 개발·생산 시스템을 안정화해 누적 생산 10만대 달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굴착기, 지게차, 농기계 등 다양한 산업용 장비에 탑재되는 G2 엔진은 2013년 한국기계기술단체총연합회가 뽑은 ‘올해의 10대 기계기술’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또 2014년 영국지게차협회(FLTA)로부터 혁신 부문 ‘올해의 우수상’을 수상했다.

출처: 희연 기술상무 제공
이희연 기술상무(왼쪽 둘째)와 직원들

G2 엔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세계 각국의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디젤 엔진엔 매연저감장치(DPF)가 달리는 게 일반적이에요. DPF는 비싼데다 내구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유지보수가 쉽지 않죠.

이 때문에 DPF가 달린 엔진은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어요. G2는 새 연소기술(ULPC·Ultra Low PM Combustion)을 적용해 DPF없이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Tier 4 Final) 기준을 통과한 제품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G2의 설계자가 낳아준 어머니라면, 이 기술상무는 길러준 어머니인 셈”이라고 말했다. 엔진 개발과 양산, 대량생산은 모두 다른 문제다. 이 기술상무가 G2 생산팀에 합류하기 전 하루 엔진 생산량은 50대가량이었다.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현장을 개선하고,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주·야 교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기술상무는 생산 기술 뿐 아니라 직원들의 애로사항 해결도 맡았다. 이 기술상무의 노력 덕택에 G2 엔진은 하루에 200대, 연간 10만대까지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출처: 두산인프라코어 제공
두산인프라코어의 신기술이 적용된 소형 디젤 엔진 'G2'

호평을 받은 G2 엔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G2 엔진을 세계 지게차 시장 1~2위를 다투는 독일 키온 그룹에도 납품합니다. 독일에서 기술을 들여와서 제품을 만들다가 이제 독일로 엔진을 수출하게 된거죠. 소형 건설 기계 장비는 얀마·구보다 등 주로 일본산 엔진을 썼습니다. 우리가 만든 엔진이 이 시장을 뚫은 거죠. 엔진 개발부터 양산, 판매까지 많은 이들이 노력했습니다. 우리 현장 기술직도 한몫했죠.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15년 859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에 빠졌다. 이후 공작기계 사업을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조만간 내 놓을 감사보고서에는 '흑자 전환'이란 내용이 담겨 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매출에서 엔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다. 회사는 미래성장동력 가운데 하나로 엔진 사업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의 출발이 G2. G2의 성공 뒤에는 이 기술상무를 비롯한 기술직 직원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회사 측은 “이 기술상무가 두산인프라코어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이라고 했다.

◇함께 일하는 젊은이는 모두 ‘아들’이라는 소통의 달인

그가 임원으로 승진한 또 다른 이유로는 ‘소통활성화와 노사문화 장착에 기여’가 꼽힌다. 대우그룹이 휘청거리면서 두산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 신입사원을 뽑지 못했다. 2005년 두산 인수 이후 기술직 사원을 대거 뽑았지만, ‘허리’가 부실한 인적구조가 회사의 고민이었다.


이 기술상무가 59년생, 두산 인수이후 새로 뽑은직원들이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생이니 20살가량 차이 난다. 삼촌뻘, 아버지뻘이지만, 이 기술상무는 젊은 직원들을 다독이고 가르쳐 현장을 안정시켰다. 

이 기술상무의 승진 소식이 전해진 사내 게시판 축하 글

젊은 직원들과 소통 잘하는 비결은 뭔가요.

저는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합니다. 현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업무 시작 시각인 8시까지 인터넷 서핑을 해요. 스포츠·연예·영화 등 다방면의 뉴스를 봐요. 이걸 모르면 요즘 젊은이들하고 대화가 안 되거든요. 그리고 회사 관련 얘기는 ‘본론만 간단하게’, ‘옛날 얘기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습니다.

회사 얘기 많이 해봐야 잔소리입니다. 업무에 딱 필요한 말만 하면 잘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랑 옛날은 시대가 달라요. 옛날에 ‘우린 이렇게 했는데 요즘 애들은…’식의 얘기는 통하지 않아요.

직원들을 아들이라고 부른다면서요.

저는 딸만 둘입니다. 아들이 없어서 그런지 후배들이 아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아들이라 생각하니 내가 가진 기술을 잘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이라 생각하면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가르칠 수 있더군요.

직원들과 함께 목욕탕도 자주 가요. 다 벗고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속 얘기를 모두 할 수 있잖아요. 목욕탕에서 직원들의 어려운 점을 듣고, 제가 바라는 점을 얘기하면 서로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IT·게임에만 몰두하지 말고 제조업에도 관심 가져야”

이 기술상무가 입사했을 당시 월급은 7만원. 당시 사무직 월급의 절반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젠 기술직 임금이 많이 올라 사무직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사오정’(45세가 넘으면 정리해고 대상), ‘오륙도’(50대, 60대에도 퇴직하지 않으면 도둑놈)라는 자조 섞인 말도 기술직에는 해당이 없다는 게 이 기술상무의 얘기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IT나 게임 쪽으로만 관심을 갖는 게 안타깝다”면서 “젊은이들이 제조업 기술직으로 많이 진출하는 게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현장은 많이 달라졌나요.

예전에는 정밀 기계가 없어서 모두 손으로 했어요. 예를 들어 볼트를 조일 때 얼마만큼의 힘을 들여야 하는지 ‘감’으로 알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비숙련자가 세게 조이다 부러뜨리는 경우도 많았죠. 그러면 선배들이 욕하기도 하고요. 좀 심한 선배들은 공구를 집어던지기도 했죠.

지금은 원하는 수준을 설정해놓고 기계를 조작하면 딱 그만큼 조여져요. 생산라인도 깨끗하고 친환경적으로 꾸며놔서 작업환경도 좋습니다.
출처: jobsN
이 기술상무의 손. 거칠 것이란 기자의 편견과는 달리 매끈했다. 그는 "요즘엔 장비가 좋아서 손 거칠어질 일이 없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말은요.

“우리나라는 일본·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계 강국이에요. 젊은이들이 제조업에 뛰어들지 않으면 기계 강국의 위치를 뺏길지 모릅니다. 제조업은 기본이 현장이에요. 사무직이 거름을 뿌리고 물을 줘서 벼가 더 잘 자라게 할 순 있지만, 벼를 심고 수확하는 건 현장의 몫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현장에 뛰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후배들 나이 때보다 환경은 훨씬 좋아졌어요. 기술 전문가, 현장 전문가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리고 있고요. 일반 사무직들 요즘 불안하다고 하잖아요. 40~50대 되면 명예퇴직 얘기 나오죠. 기술직은 성실하게 자기 할일 제대로 하면서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면 얼마든지 정년까지 산업현장의 주역으로 일할 수 있어요.

그리고 중소기업들도 기술직 처우를 높여줘야 해요. 대기업이야 사정이 좀 낫지만, 중소기업 현장직은 사람이 많이 모자라요. 젊은이들을 탓할 순 없죠. 복지도 부족하고 임금도 열악하니까요. 또 다른 회사에서도 기술직 출신 임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그림을 그릴 기회가 될테니까요.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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