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에 감성 입혀요" 타짜, 해품달 글씨 주인공 캘리그라피스트 이상현

조회수 2018. 11. 5. 14: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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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요? 글자에 감성을 더하는 디자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상현(43) 작가는 국내 대표 캘리그라피스트 중 한명이다. 캘리그라피는 서예로 번역하지만 '글자 디자인'에 가까운 뜻으로 통한다. 관련 작업을 하는 작가를 캘리그라피스트라 부른다.


2016년 10월 9일, 최대 인터넷 검색 서비스업체 구글(Google)이 그의 글씨로 디자인 한 '구글' 로고를 발표했다. 한글날을 기념한 서비스였다. 드라마 ‘해를품은달’(해품달), 영화 ‘타짜’의 포스터 글씨도 그의 작품이다. 

출처: jobsN
이상현 캘리그라피스트

주무기는 먹과 붓. 때로는 두껍게, 그러다 얇게 획을 긋기도 한다. “같은 글자라도 붓에 물이 많으면 촉촉하고, 없으면 또 거친 느낌이 나요.” 그렇게 감성을 담는다고 한다. 유명 게임업체의 게임 로고에 대해 "작품 한 점에 1000만원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캘리그라피란 어떤 의미일까. 서울시 서교동에 있는 이상현캘리그라피연구소를 찾았다.

 

◇ 악동 초등학생, 성격 고치려 서예 시작

처음 서예를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하도 말썽을 피웠더니 좀 차분해지라고 부모님이 서예 학원에 보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건반을 발로 밟아 고장내고, 주산학원에선 주판을 롤러스케이트 삼아 타고 다니던 악동이었다.

 

서예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흰 벽에 붓으로 까만 선을 쓱 그었다.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에 ‘또 쫒겨나려나보다’ 생각했다. 예상외 대답이 돌아왔다. “너 참 잘한다. 흰 벽이 지겹던 참인데 먹으로 까맣게 칠해줄래?” 한 달 간 신나게 먹을 갈았다. 검은색 자동차처럼 매끈하게 벽을 칠하는 게 목표였다. 생각처럼 안됐다. “얼룩덜룩하더라고요." 먹 농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는 걸 그때 알았다. "선생님 배려였죠." 서예가 좋아졌다. 2년만에 전국학생서예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원광대 미술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했다. 부모님 반대가 심했다. “왜 멀리 지방대를 가느냐, 서예해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서예가 좋았다.

 

취업걱정은 안 했나요

서예를 할때는 그저 좋았는데, 졸업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막막했습니다.
출처: 이상현 작가 제공
캘리그라피를 하는 이상현 작가의 모습

◇ '서예는 고루하다' 평가에 문전박대

졸업 뒤 군을 제대하고 1999년 사회에 나왔다. 스물여섯이었다. 서예를 계속 하고 싶었다. 대학선배와 의기투합해 캘리그라피 전문업체 '필묵’을 만들었다. "이런 회사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1세대 캘리그라피스트라고 소개한다.


고생의 시작이었다. 서예로 글자를 디자인 한다고 하면 고루하다며 문전박대 당했다. ‘고려인삼공사에 가야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실적은 어땠습니까

4~5개월동안은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변변한 사무실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마린’이란 디자인 회사 사장님이 잘 봐주셨어요. 디자인 기본부터 배우라며 사무실에 책상 두개를 내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회의에 들어가며 관련 용어부터 프리젠테이션 하는법까지 어깨너머로 배웠죠.

2000년 봄. 첫 매출을 올렸다. 농심 ‘춘면’ 로고를 디자인하고 80만원을 받았다. 2002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것’ 포스터의 글씨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바람과 구름과 비’라는 책 표지 작업을 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필묵’과 ‘이상현’이란 이름도 유명해졌다. 썼다하면 돈이었다. “탁 쓰면 한 자에 100만원부터 했으니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페이지, MBC 홈페이지 캡처
이상현 작가가 작업한 타짜·해를 품은 달 캘리그라피

2003년 11월, 잘나가던 때 공동 창업한 회사를 나왔다. 글쓰는 게 좋은 작가인데, 비즈니스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회사를 나와선 괜찮았나요

한 달에 100만원을 집에 줬어요. 새벽에 우유배달하고, 인사동에서 포스터 나눠주는 알바도 했습니다. 처음엔 회사가 어렵다고 거짓말 했는데 나중엔 아내한테 들켰어요. 그래도 응원해주더라고요. 디자이너였던 아내와 3평짜리 사무실을 얻어서 프리로 일했습니다.

2006년 개봉한 타짜는 이상현이란 이름을 다시 유명하게 했다. “포스터 글씨 의뢰를 받고, 도박장까지 가봤습니다. ‘타짜’의 느낌을 글씨에 담고 싶었어요.”

사무실에 간판을 단게 최근이라던데요

2015년에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었죠.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가르치는 입장도 아니었으니까요. 글이 좋아서 글을 쓰고, 서체 연구하고 하던 작업실 같은 곳입니다.

지금은 주말마다 12명의 제자를 가르친다고 했다. 그동안 CJ 패키지 전용서체, 하림 전용서체, 예산군 추사 사랑체, 송침체, 만월체, 국향체를 개발했다. 이상현체 6종과 정선 아리랑 폰트도 개발 중이다. 

출처: 이상현 작가 제공
맨발로 캘리그라피를 하고 있는 이상현 작가 모습

◇ 계산하기 전에 도전…악필도 자기글씨 간직해야

언제 작업하십니까

주로 아침 10시쯤 나와서 새벽 3~4시쯤 퇴근합니다. 새벽에 일이 잘돼요, 전화 올 일도 없고, 문 잠그고, 블라인드 내리고, 음악 틀고 속옷 바람에 글씨 쓰죠. 밤 새도 시간가는줄 모릅니다. 전용 붓이 있느냐 묻는 사람도 있는데 인사동에서 만원짜리 붓을 사서 씁니다. 닳으면 또 같은 걸 사서 써요. 붓글씨 연습할 때 많이 쓰는 그런 붓입니다.

글씨를 쓰면서 가장 중요한게 뭡니까

교감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붓글씨도 가장 현대적인 부분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선 아리랑체를 개발하면, 정선의 색깔에 대한민국, 전통과 현재를 담아야 합니다. 작가가 글자와 해당 문화를 이해하고 교감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글씨를 잘 쓰는 비결이 있나요

악필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수십년간 쌓여온 자기 디자인이에요. 그건 못 바꿉니다. 대신 상황에 따라서 예쁘거나 힘있는 글자체로 ‘연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글씨는 간직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입은 어느정도나 되나요 

의뢰가 많은 달에는 남들 연봉만큼 벌때도 있어요. 연 수입은 수억원 정도라고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캘리그라피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글씨를 써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힘들겁니다. 저는 33년을 썼어요.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노력하고 도전해야합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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